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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으로 본 강진정치사]제3대 국회(1954.5.31~1958.5.30)민주주의 골격 갖춘 3대국회, 처음으로 ‘후보 정당공천제’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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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2.15  11: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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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이선웅, 양병일, 조덕훈, 차종채후보등 출마
‘남도의 호랑이’ 차종채 후보 중도 사퇴 
김성호 양병일 치열한 접전... 김성호 압승
김성호 의원 이승만 대통령 ‘4사5입 개헌’ 적극 협조
지금도 ‘헌법파괴 의원’으로 회자

전남에서 자유당 15석 무소속 12석 민국당 3석

   
김성호 의원
1954년 5월 20일 제3대 국회의원(민의원) 선거가 실시됐다. 3대 국회는 지난 52년 7월 ‘발췌개헌’(1차 개헌)으로 ‘양원제’가 도입됨에 따라 민의원(소선거구제)과 참의원(중선거구제)을 구성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참의원 구성에 필요한 입법조치 미비로 민의원만을 선출했다.

의원정수는 2대 국회 때의 210명에서 7명이 줄어 203명. 이는 휴전협정 결과, 7개의 선거구가 휴전선 이북에 속해 있어 선거를 치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당인 자유당과 원내 제1야당인 민주국민당(민국당)이 각각 후보를 공천해 우리 선거사상 처음으로 ‘후보 정당공천제’를 도입, 정당정치의 기틀을 마련했다.

전국 투표율 91.3%를 보인 3대 총선 결과, 여당인 자유당이 공천자 99명과 당 소속 비공천자 15명 등 모두 114명(56.1%)을 당선시켜 원내 다수당을 차지했다. 그 뒤를 이어 무소속이 68석(33.5%), 민주국민당이 15석(7.4%), 국민회와 대한국민당이 각각 3석을 차지했다.

전남은 2대 선거 때 획정된 선거구대로 선거구 변경 없이 3대 총선을 치렀다. 모두 30개 선거구. 선거 결과, 전남에서는 자유당이 15석, 무소속이 12석, 민국당이 3석 등을 차지했다. 

3대 국회는 민법을 제정(1958.2)하는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자유당은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위해 해괴한 수학논리를 내세운 ‘4사5입 개헌’(2차 개헌)을 주도해 헌정사에 오점을 남겼다.

 
차종채 후보 등록취소 후보박탈

강진군선거구(제18선거구)에서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입후보한 후보는 모두 5명이었다.

선거전은 재선에 도전하는 변호사 출신 양병일 후보와 첫 정당공천제 실시로 집권여당의 공천을 받아 목포에서 강진으로 온 김성호 후보, 그리고 강진에서 손꼽히는 재력가이자 일제시대 전남도평의회 의원(현 도의원)을 지냈던 차종채 후보 등 3명의 접전이 예상됐었다.

그러나, 차종채 후보가 등록 취소로 후보자격이 박탈되는 바람에 김성호 후보와 양병일 후보의 치열한 맞대결로 펼쳐졌다.  

이들과 함께, 이선웅 후보와 조덕훈 후보도 틈새를 공략하면서 선거운동을 전개했다. 이선웅 후보는 김성호 후보가 ‘낙하산 공천’을 받아 강진 선거전에 뛰어든 바람에, 자유당 강진군당 위원장이면서도 공천을 받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성전면 출신인 조덕훈 후보는 젊은 나이(34세)에도 불구하고 신문사 사장 등의 경력을 내세우며 무소속으로 출마, 표밭을 다졌다.
 
선거 결과, 김성호 후보의 여유있는 승리. 유효 투표수 4만27표 가운데 49.9%인 2만11표를 득표해 금배지의 영광을 차지했다. 차점자는 26.0%인 1만410표를 얻은 양병일 후보. 양 후보는 재선에 실패했고, 두 후보 간 표 차이는 9천601표였다.

3위는 5천614표(14%)를 득표한 조덕훈 후보가 기록했고, 4위는 3천992표(9.9%)를 얻은 이선웅 후보가 차지했다.       

 <강진선거구 제3대 총선 입후보자 명단>

이름

(나이)

주소

직업

학력 및 경력

소속정당 단체명

득표수

(득표율)

김성호

(54)

목포시 죽교동 26

변호사

고시 사법과 합격, 전 도의원

자유당

20,011

(49.9%)

이선웅

(42)

강진군․읍 동성리 459

농업

소학교 졸, 자유당 강진군당위원장

무소속

3,992

(9.97%)

양병일

(44)

광주시 금남로4가 23

변호사

고시 사법과 합격,

변호사, 2대 의원

민국당

10,410

(26.0%)

조덕훈

(34)

강진군 성전면 영풍리 605

공업

고교 졸, 신문사장

무소속

5,614

(14.0%)

차종채

(64)

강진군 군동면 호계리 872

농업

한문 수학,

일정시 전 도의원

무소속

취소

※명단의 내용은 입후보 당시 선거관리위원회 기록임


강진에 생활기반없던 김성호의원
의정활동 여러가지 오점
야당 저격수 나서 '곡학아세' 비난받기도

강진에서 3대 국회의원이 된 김성호 의원(1899년생)은 일본대 법대를 졸업하고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해 목포에서 변호사 생활을 했다. 광주지법 목포지청 수석판사도 역임했다.

김 의원의 생활 근거지는 목포시였다. 그가 강진에서 출생을 한 후 목포로 갔었는지, 아니면 선조 때부터 강진과 인연이 있었는지는 정확한 자료를 찾지 못해 더 이상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김 의원이 후보정당공천제가 처음 실시된 3대 총선에서 자유당 공천을 받고 강진에서 출마하기 전까지는, 강진에 생활 기반을 두지도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3대 총선 입후보 당시에도 김 의원의 주소가 목포시 죽교동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4대 총선 때는 강진읍 남성리로 주소가 바뀌었다.

김 의원은 목포 동광중 교장과 목포시 체육회장, 국민회 목포시지부장, 대한국민당 목포시당위원장, 동광학원(동광고- 홍일고 전신)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아울러, 일제 때 지금의 시의회격인 목포부회 의원과 초대 전남도의원을 목포시선거구에서 선출돼 지냈다.

김 의원은 기초(목포부회)와 광역(전남도의회) 지방의원을 거쳐 국회의원(3대 국회)까지 각급 의정활동을 경험했다. 그는 전남도의원을 지내다 의원직을 사퇴하고 3대 총선에 출마한 것 같다.

의원직 사퇴 관련 자료를 찾지 못했지만, 초대 도의원의 임기(1952.5~1956. 7)와 3대 총선일(1954.5.20)을 감안하면, 도의원을 사퇴하지 않고는 총선에 출마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40년 3월 목포부의원 시절 회의 때 김 의원은 중앙정부의 영암 용당-완도 간 철도 신설 계획의 실현 여부를 질문한 기사가 보도돼, 당시 영암 용당-완도간 철도 신설계획을 확인할 수도 있었다.

김 의원의 의정활동은 법률 전문가로서 활약이 두드러졌다. 각종 법률안 제·개정에는 자유당 소속으로 약방의 감초처럼 참여했다. 그만큼 자유당 내에서는 대표적인 율사 출신 의원으로 인정을 받은 듯하다.

그러나, 의정활동을 하면서 큰 오점도 남겼다. 김 의원은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위한 2차 헌법 개정(4사5입 개헌)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4사5입을 하더라도 개헌안을 통과시켜야 하고, 위헌을 해도 무방하다”고 발언, 오늘날까지 대표적인 ‘헌법파괴 의원’으로 회자되고 있다.

변호사 출신인 김 의원의 비법률가적인 언행 사례 하나. 의정활동 4개월째인 1954년 9월 본회의가 열렸다.

야당의원들이 정부의 법률안 공포 지연을 항의하자, 김 의원은 단상에 나가 “법률가로서 말하는데 정부가 공포하지 않은 것은 혼란을 우려하기 때문이다.다소 위헌성이 있더라도 정부 요청대로 하자”고 말했다가, 야당의원들로부터 “네가 변호사냐?” “돌았어?” “×새끼, 내려와라.” 등등 거센 항의를 받으며 아수라장이 됐다고 보도했다.(54.9.28,경향)

김 의원은 자유당정권의 강경파이자 적극적인 옹호자이기도 했다. 그는 본회의시 야당 의원들이 정부여당의 억지주장이나 실정을 비판하면, 일부 강경파 동료 의원들과 함께 언성을 높이고 명패를 두드리면서 야당의원들과 대적했다고 당시 신문은 보도했다.

때문에 김 의원은 자유당 내 ‘소란파 의원’ 3명 중 한명으로 신문에 소개되기도 했고, 야당의원들은 ‘곡학아세’란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또 다른 신문은, 김 의원이 1956년 3월초 목포에서 태극호 열차를 타고 상경중 수원역 근처에 도착할 무렵, 갑자기 돌멩이가 날아와 열차 유리창을 깨뜨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마침 식당차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김 의원은, 이 문제를 난데없이 야당의원들과 연계시켜 국회에서 문제를 삼겠다고 횡설수설했다면서 ‘유치한 정치광’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임영상 객원기자(정치칼럼니스트)

 
※ 강진에서 치러진 역대 총선과 관련해 선거운동 일화·후보자 관련 자료 등을 제보해주시면 글에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제보/ 061)434-8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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