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포 봉수대에는 선조들의 호국정신이 깃들어 있다

2002년 강진군에서 강진군향토문화유산보호 관리조례를 제정하고 제1호로 남원포 봉수대를 지정했지만 복원 사업은 쉽게 이뤄지지 못했다.

조례 제정과 향토문화재로 지정은 내가 문화관광 분야에서 근무할 때 시작했으나 실제 복원공사는 퇴직후 공로연수 기간에 이뤄졌다. 실제 공사가 이뤄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야말로 어렵게 이루어진 복원이라 할 수 있다.

강진군 향토문화유산 제1호 남원포봉수대 복원사업의 기간은 2017년 11월 13일 시작돼 2018년 9월 25일까지 11개월간이었다. 복원 사업비는 군비로 8천850만원을 책정해 사업을 진행했다. 이 예산도 사업 진행을 독려하기 위해 내가 기획홍보실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세워놓았던 것이다.

남원포 봉수대 복원 사업은 크게 불을 지피는 아궁이인 연조와 연조의 바닥을 받치는 연대, 방호벽 등을 복원하는 데에 집중됐다.

연조는 하부직경이 2.6m, 상부직경 2m, 높이 3m 정도였다. 아궁이는 사람이 출입할 수 있는 크기이며 동쪽에 설치했다.

또 연기가 연소실 외벽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내벽에 석회 등을 발라 공사를 마무리했다.

연조를 아래에서 받치는 연대(煙臺)는 가로 4.5m, 세로6m, 높이 70cm 규모로 복원했으며 방호벽은 8~10m 타원형으로 약 1.4m 높이로 만들어졌다.

봉수대 복원은 철저한 역사적 고증이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원포 봉수대 복원사업을 위해 참고했던 자료는 2006년에 이루어진 종합학술 조사의 결과물인 ‘강진 원포 봉수’를 바탕으로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할 수 있었다.

처음 설계가 나왔을 때에는 연조의 입구가 반대방향이었다. 이를 보고 내가 조언을 했고 현재 모습으로 수정될 수 있었다.

남원포 봉수가 있었던 마량면 산동마을의 진산인 봉대산 일대는 예전에는 늦여름부터 초가을까지 땔감마련을 위해 철나무를 하던 곳으로 벌거벗은 민둥산이었다. 산에 나무가 없고 민둥산이었기 때문에 산동마을 어린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고향 마을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1960대년대부터 오르내렸던 나는 봉대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마량면장으로 재직하던 2001년 가을 당시 윤흥오 군의원과 당시 강영오 마량파출소장, 김철환 선배 등과 봉대산에 등산로를 개설하기도 했다.

향토문화유산을 최초로 지정하는 시기인 2004년 무렵에는 문화관광과장으로 재직하였다.

실제 복원공사가 이뤄진 공로연수 기간 중에는 명예 감독관을 자청하고 남원포 봉수대 복원사업의 성공을 위해 새로운 등산로를 개설하는데 힘을 보탰고 봉수대의 연대와 연조의 정확한 위치에 대한 자문 등으로 작은 힘을 보탤 수 있었다. 이때문인지 항상 봉대산을 오를때면 복원공사를 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조선시대 수군 주둔지였던 마량 만호진과 남원포 봉수대가 있었던 점에 비춰볼 때 마량 일대가 국가의 안위를 담당했던 관방유적(關防遺蹟)으로, 그 상징성을 부여하는 차원에서 강진군에서는 향토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 관리해 오고 있다.

외적들의 침입 등 나라가 위난에 처했을 때 긴박한 상황을 조정에 알리는 주요한 국방시설임을 감안하여 선조들의 호국정신을 이어가도록 국가문화재 지정을 서둘러 추진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또 한가지 개선됐으면 하는 점은 등산로 부분이다. 남원포 봉수대를 찾아가려면 마량면 영동리 영현사 뒤편에서 숙마로 연결되는 등산로를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이 곳의 등산로 정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일반 주민들과 관광객들의 접근이 어려운 실정이다.

국방의 한 축을 담당했던 장소라는 상징성과 강진군의 제1호 향토문화유산이라는 점을 감안해 하루빨리 등산로가 깨끗하게 정비돼 많은 사람들이 봉수대를 찾을 수 있게 되길 바래본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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