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운/언론인

최근 중앙지에 실린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의 인터뷰 기사에 시선이 멈춰섰다. 4‧15총선 출마 채비중인 그녀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세 사람을 꼽았다. 첫째는 문재인 대통령이고 다음은 신영복 전 성공회대 교수 그리고 자신의 남편 순이었다.

그 기사의 제목만 보았는데도 공정과 공화, 법치의 가치 파괴를 걱정하는 여론이 떠올랐다. 그리고 특정인에 쏠린 콘크리트 심리는 이렇듯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구나 하는 엉뚱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와 유사한 속성을 지닌 호남 표심일지라도 기표소에서만큼은 달라질 거라고 기대해왔지만 요즘에는 접었다. 호남선거판은 기울어진 운동장이 돼버렸다는 결론이 굳건해진 탓이다.

대통령 업무수행 긍정 평가가 70%대에 고정되어있는 게 호남민심의 현주소 아닌가.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지역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는 광주, 전남 현역의원들이 우위였다. 그로부터 한 달도 채 안 된 1월 중순께는 천지가 뒤바뀐 양상으로 역전됐다.

정치 이슈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촌평을 내놓는 정치고수는 민주당 예상 후보는 물론 정의당 의원에게도 밀렸다. 전남도의원, 군수, 시장으로 다진 탄탄한 조직력을 갖춘 인물도 민주당 예상 후보들의 뒷자리에 서게 됐다. 광주시내쪽도 마찬가지다.

예산통이라는 의원은 민주당 후보들에게 추월당해 끝쪽에 더 가깝다. 그래도 1위를 유지할 것이라는 무소속의원도 2위로 쳐졌다. 현장 민심은 다르다고 강변해온 의원은 신인에게도 추월당한채 제3지대 비례대표 1번 설이 나돈다.

민주당 광주·전남조직을 지휘하고 있는 의원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민주당이 승리해야 하고 전남에서는 싹쓸이가 목표라고 말했다. 집권당을 견제하고 민의가 실린 대안을 제시해야 할 야당 의원이, 더구나 그들만이 불러야할 용비어천가를 앞장서 대신하는듯한 모습이 측은하다.

평소에도 문재인 대통령을 찬양하고 민주당을 이따금 꼬집어 왔으므로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완패공포감에 휩싸인 호남선거판을 눈 앞에 두고 제3지대 창당 당위성을 외치고 있는 절박한 상황이다.

그런 때에 야당 지도자로서 정권실정을 지적하지는 못할망정 공동 전선을 통한 정권 재창출론까지 방송전파에 실어 날리는 걸 보면 야당지도자 맞나싶다. 선거 전략인줄 누가 모를까마는 호남 민심을 앝잡아 보는 것 같아 찜찜하다.

때맞춰 도로 호남당이라도 좋으니 야권 통합신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려온다. 기울어진 운동장이지만 경쟁 구도를 복원시켜 선량다운 선량이 선출되어야 한다는 애국 시민 정신의 발로일 것이다. 참다운 선량을 갈망하는 애국시민의 염원과 달리 현실 분위기는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민주당 팬들은 그래 보았자 민주당이 될테니 들러리 서주는 것도 괜찮다고 한다. 어느 쪽에서는 야당이 당선되어도 민주당 편들 것이 뻔한데 누가 되면 어쩌냐는 방관자적 반응을 보인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을 어찌할 수 없다는 패배의식을 드러내는 이도 적지 않다. 종합하면 제3지대 창당이든, 합당이든, 선거연대든, 소용없는 짓이라며 선거 무용론과 무관심에 빠져든 반응이 대세다.

제3지대 창당의 주역은 2년동안 강진산에서 칩거했던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다. 화려한 학력과 정치경력을 쌓은 그가 야망의 터를 닦을 것으로 기대하는 국민이 꽤 많았다. 현재는 그런 여망은 멀어지고 초라한 이미지가 분칠된듯한 느낌이 앞선다.

그렇지만 굴욕적 공격을 받고도 굴하지 않고 새로운 야당 건설에 나선 그의 뚝심과 지략에 대해 일말의 기대심리를 드러낸 사람도 더러 있다. 신당이 창당되면 바른미래당 안철수계 의원 7명을 제외하더라도 민주평화당 4명, 대안신당 7명을 합쳐 20석 이상의 원내 교섭단체 구성은 가능하다. 기호 3번을 달고 거대양당을 상대로 경쟁 구도를 형성할 수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도로 호남당̓보다 부담스런 ‘도로 국민의당’이라는 일반의 인식을 극복해야 하는 난제가 재생의 길을 막는다. 싹 쓸어 모아준 호남민심을 짓밟고 흩어져버린데 대한 배신의 골은 깊어져 적개심 수준이다.

안철수와 호남 당권파들이 검은 정장 차림으로 5.18 국민묘지를 참배한 장면을 본 지인들은 한결같이 뻔뻔스럽다며 증오심을 드러냈다. 다시 한 표를 호소한다면 언감생심이며 염치없는 짓이라는 면박을 각오해야 할 만큼 분위기가 좋지 않다.

호남 분위기는 이러한데 국민의당 출신 호남의원들은 야권통합신당이 출범하면 민주당 호남 대세 판세가 바뀔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생각은 자유다. 그런 멋대로의 주관적 기대와 일반의 객관적 평가는 비밀장소 선택지에 기표하는 순간, 실체를 드러낸다. 현 정권 심판이라는 프레임이 짜인다면 호남에서도 대안의 선택지로 통합신당에 눈을 돌리려는 분위기가 생겨날 수도 있다.

사람의 속내는 알 수 없는 것이어서 완전히 배격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펼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전망하는 전문가의 견해도 존재한다. 그와 달리 터치한 곳의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쓰나미와 같은 싹쓸이 바람이 호남의 선거판을 비켜 가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도 귓전을 때린다.

4+1의 동질성을 자원해서 입증하고 친문 지역정서 압박까지 겹친 상황에서 통합야당후보 뽑아달라는 말을 입 밖에 낼 수 있는 의원이 몇이나 될까.

60일쯤 남은 총선일이 하루하루 줄어들 때마다 싹쓸이 전선의 기세는 더 강해진다. 오랜시간 가꾸고 다듬어 온 지역 동량지재(棟梁之材)의 운명을 싹쓸이 바람에 날려버리는 결과는 인재상실로 끝나지 않는다.

고립의 골은 깊어지고 상생의 길은 멀어지며 지역 퇴행의 막장은 가까워진다. 맹목적이고 폐쇄적 의식이 싹틔운 결과라면 관성적인 기표소의 싹쓸이 표심은 멈추어야 옳다.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