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달 휘영청한 대보름 저녁 섬을 태웠다

대구면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찻집  분홍나루쪽에서 본 비래도의 모습이다. 비래도 주변은 여전한 어민들의 삶의 터전이다. 지금도 어족자원이 풍부하다. 왼쪽 뒷쪽으로 보이는곳이 신전면 벌정리 일대다.
대구면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찻집 분홍나루쪽에서 본 비래도의 모습이다. 비래도 주변은 여전한 어민들의 삶의 터전이다. 지금도 어족자원이 풍부하다. 왼쪽 뒷쪽으로 보이는곳이 신전면 벌정리 일대다.

정초다. 음력으로 모든게 시작하는 때이다. 오래전 주민들은 이때가 되면 1년 농사를 준비하며 잔치를 벌이고 흥을 돋우었다. 이 정초에 뺄수 없는 놀이가 불지르기다. 불지르기는 매우 과학적인 놀이다.

논둑에 불을 피우면 농사를 방해하는 각종 병충해를 죽일 수 있다. 불피우기만 하면 심심해 하는 아이들에게 은근히 싸움을 부추기며 불놀이를 하게 했다. 그게 불싸움이다.

이 정초에 불피우기에 대한 한 전설을 소개하고자 한다. 애뜻한 사랑이 있는 전설이다. 예쁜 처녀가 등장하고, 우직하고 효심 가득한 청년이 나온다. 그 안에 풍년과 만선을 기원하는 강진사람들의 소망이 깃들어 있다.

애뜻한 사랑이 있는 비래도

대구면 미산마을에 있는 알산이다. 모두 다섯개의 알산중에 네번째 알산이다. 다섯번째가 비래도다.
대구면 미산마을에 있는 알산이다. 모두 다섯개의 알산중에 네번째 알산이다. 다섯번째가 비래도다.

전설은 우리곁에서 오래전에 사라졌다고 한다.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시대아닌가. 그러나 비래도 만큼은 다르다. 비래도는 과학과 현실, 전설이 오묘하게 오늘날까지 공존하는 신비의 무인도다. 강진에 그런 전설이 스며있는 곳이 있다.

비래도. 네이버 지도에서 행정구역을 찾아 보면 강진군 신전면 벌정리 산 260다. 면적은 3,519㎡의 국유지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중절모자를 바다에 띄워 놓은 듯한 섬이다. 사람들의 눈에 많이 띠는 지점이 대구면 쪽이기 때문에 대구면에 속한 섬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신전면 벌정리가 행정구역이다.

이 섬의 지리적 위치가 특이하다. 동쪽 건너편 대구면 사당리 뒤쪽에는 여계산(如鷄山)이 우뚝 솟아 있다. 청자박물관 바로 뒷산이 바로 닭을 닮았다는 여계산이다. 그런데 여계산 건너편 들녘에는 마치 닭의 알처럼 둥그런 산이 줄지어 네 개가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여계산이 낳은 알이라고 한다. 주민들은 이곳을 난산(卵山)이라고 부른다. 난산은 계율리 앞 뜰에서부터 시작해 띄엄띄엄 있다가 마지막 한 개가 바다에 빠져 있다. 그곳이 바로 비래도다.

여계산 아래에 닭알 처럼 생긴 산이 네개가 있고, 지금도 사당리 일대에서 마치 닭알 처럼 생긴 청자들이 구워져 나온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여계산이 지금도 알을 낳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알산들이 지금까지 오랜 세월 그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바다에 빠져 있는 비래도는 바다 한가운데 있는 무인도니까 사람들의 손을 타지 않았다고 하지만 나머지 들판 가운데 있는 세 곳은 새삼 신기한 일이다.

여계산이 낳은 5개의 알산

난산은 그야말로 작은 분단지 같은 주먹산이다. 크기가 20~30평 정도된다. 이런 작은 봉우리들은 산업화 과정에서 불도저나 포크레인이 한순간에 파괴시켜 버렸다. 70·80년대 객토나 경지정리 사업이 대표적이다.

논을 바둑판 처럼 정비하느라 쓸데없이 돌출돼 있는 언덕 같은 것들은 모두 쓸어버렸다. 당시 파괴된 문화재들이 엄청나다는게 문화재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1970년대 초반 청자촌 모습이다. 뒷쪽으로 여계산의 모습이 보인다. 닭의 모양을 하고 있다.
1970년대 초반 청자촌 모습이다. 뒷쪽으로 여계산의 모습이 보인다. 닭의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런데 알산은 하나도 파괴되지 않고 살아 남았다. 알산에 가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알산에는 하나같이 무덤이 있다. 이 좁은 공간에 무덤이 터를 잡은 것이다. 우선 계치마을 앞 들판 한가운데 있는 첫 번째 알산에는 비석과 상석이 잘 갖춰진 고풍스런 묘가 있다.

비석의 씻김으로 봐서 수백년은 됐을 묘다. 아마도 이 묘 때문에 알산을 건드리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농로가 직선으로 오다가 알산 주변으로 휘돌아 나갔다.

두 번째 알산인 민간요 인근 알산에는 작은 묘가 세 개 정도 있다. 규모는 적고 비석도 없는 묘들이다. 그러나 세월에 많이 씻겨 내린게 아주 오래된 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곳 역시 논 중간에 있어서 쉽게 중장비 바가지가 긁어버릴 곳이였지만 이 묘들 때문에 온전한 모양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비래도가 마지막 알산

세 번째 알산은 미산마을쪽 바닷가에 있다. 이 알산 역시 위쪽에 큰 비석이 세워진 묘가 있다. 묘는 바닷쪽을 바라보고 있다. 조성 당시 방호를 감안해서 묫자리를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세 번째 알산은 1998년 해안도로가 생길때 귀퉁이를 조금 상처받은 적이 있지만 그 후로 지금까지 아무런 해 없이 잘 버티고 있다. 묘지들이 절묘하게 알산을 지켜주고 있는 셈이다.

비래도는 여계산쪽에서 내려 오는 마지막 알산이다. 이곳은 완도쪽에서 강진만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길목이다. 산란을 하러 찾아오는 회귀성 어류들이 모두 비래도 주변으로 모여든다.

비래도 주변은 예부터 농어와 돔, 숭어, 개불, 굴, 바다새우등이 집중 서식하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강진만의 특산품인 황가오리를 잡는 사람들이 바다를 가로질로 주낙을 놓은 곳이 바로 이 비래도 주변이다.

이같은 비래도의 천혜의 어장성격을 살리기 위해 강진군은 매년 이곳에 인공어초를 투하하고 있다. 이곳을 바다목장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인공어초가 모양을 잡으면 고기는 더 많아질 것이다.

비래도에는 풍부한 물고기와 관련해 전설을 두가지나 가지고 있다. 한가지는 한 총각에 관한 이야기다. 칠량에 최씨성을 가진 노총각이 살았다. 한번은 비래도 주변에 고기를 잡으로 나갔다가 예쁜 처녀의 시신을 발견하고 건져 올렸다.

처녀의 시신을 묻어준 총각

총각은 처녀의 시신을 정성스럽게 비래도에 묻어 주었다. 며칠 후 그 여자가 총각의 꿈에 나타났다. “서방님, 어서 일어나 비래도에 가보세요. 고기가 많이 있으니 얼른 가서 잡으세요”하는 것이었다. 최 총각은 벌떡 일어나 새벽 물결을 헤치며 노를 저어 바다로 나갔다.

최 총각이 비래도에 이르러 그물을 건저 올리자 상상하지 못할 만큼의 고기가 잡혀 올라왔다. 그 뒤에도 처녀는 총각의 꿈에 나타나 그물 올릴 시간을 말해주곤 했는데 그때마다 총각은 풍어로 재미를 보았다. 바다에 있는 네 번째 알산인 비래도도 묘지와 전혀 인연이 없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이 전설은 오래전부터 비래도 주변에 얼마나 많은 고기가 살고 있었는지를 상징적으로 알려주고 있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이 전설은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는 살아 있는 전설이다.

비래도에는 또 음력 정월 보름날 저녁에 불을 지르면 그사람은 일년 내내 고기를 많이 잡는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비래도는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음력정월 보름이면 자주 불에 탔다. 누군가 그 전설을 믿고 불을 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 역시 지나간 전설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주민들의 삶속에 내려오고 있는 살아 있는 전설이다. 이처럼 여계산이란 육지와 비래도란 바다의 전설이 교차해서 존재하는 곳은 없다. 이런 경우는 비래도가 유일한 것 같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전설들이 오늘날에도 주민들의 삶속에 생생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주민들의 삶속에 전해오는 전설

여계산 아래에서는 끊임없이 청자가 구워져 나오고 있고, 비래도 주변은 바다목장이 조성될 정도로 많은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 그 곳을 의지해서 살아가는 주민들이 끊이질 않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 전설이 미래에도 강진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이다. 청자는 누가 뭐래도 강진의 전략산업이고, 해양산업은 상대적으로 땅이 부족한 강진사람들이 반드시 관심을 가지고 발전시켜야 할 부분이다.

그럼 비래도는 요즘 대보름에도 불타고 있을까. 필자는 2013년 정월대보름이 지난 후 비래도가 시커멓게 불타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누군가 불을 지른 것이었다. 그러나 그 후로는 비래도가 불타는 것을 보지 못했다. 7년전 이야기다. 전설은 이제 사라진 것일까.

비래도가 불타지 않은 것에 대해 섭섭해 하는 주민들도 있다. 대구의 한 주민은 “정월대보름 저녁에 비래도가 불타는 것은 수백년 전통인데 주변에서 지나친 관심을 보이면서 누가 불지르기를 포기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어민은 “불지르기는 단순히 경관상 이유때문이라도 계속되어야 한다고 본다”며 “육지와 가까운 무인도가 매년 풀만 무성하게 자라있는 것도 보기좋은 모습은 아니다”고 의견을 내 놓았다.

강진군이나 수협 등에서 보름날 저녁에 공개적으로 이곳에 불을 피우면 어떻겠느냐는 의견도 있다. 주민들은 전설이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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