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들 사이에서 최고로 치는 붓은 쥐수염으로 만든 붓이다. 쥐서(鼠)에 수염수(鬚)를 써서 서수필(鼠鬚筆)이라고 한다. 왕희지와 추사가 애용한 붓이이라고 한다,

서수필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쥐를 잡아서 수염을 뽑아야 하니 귀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붓 하나를 만드는데 수십에서 수백마리의 쥐가 필요하니 가격은 둘째치고 제작 자체가 어렵다. 지역의 한 서예가는 “말은 들어봤지만 지금까지 구경도 못해 봤다”고 서수필의 귀함을 설명했다.

그런데 서수필을 만드는 쥐수염도 다 똑같은게 아니다. 오래전 명필들은 쥐 수염 중에도 배 갑판 마루 아래에 사는 쥐에게서 가장 상품의 붓이 나온다고 믿었다. 배가 삐걱거릴 때마다 수염을 쫑긋거리고, 파도가 치는 대로 머루알 같은 눈망울을 반짝이며, 먼지 한 점 떨어지는 소리도 놓치지 않고 쭈뼛 일어설 줄 아는 수염이 최상의 붓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배가 침몰할 때 미리알고 가장 먼저 피신한다는게 쥐다. 실제로 쥐의 수염은 민감한 감각기관이다. 유난히 작은 눈을 가진 쥐는 의외로 시력이 나쁘다. 쥐는 자신의 몸이 빠져 나갈 수 있는 구명의 크기를 정확히 감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수염이 그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배의 갑판에 사는 쥐의 수염중에서도 서열이 있다고 한다. 되도록 주둥이 윗쪽에 있는 털만 뽑아 써야 가장 좋은 서수필 자격을 갖는다는 것이다.

주둥이 위로 갈수록 털이 가늘면서도 끝으로 갈수록 굵어지기 때문이란다. 이런 쥐수염으로 만들어진 붓은 탄력성이 좋아서 붓을 눌러 쓴 다음 다시 거두어들일 때 휘었던 붓털이 완전히 원래 모습으로 돌아 온다고 한다.

국보 240호인 윤두서 자화상의 수염을 표현한 그 셈세한 필치는 상급 서수필이 아니면 나오지 못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2009년 강진군의 의뢰를 받아 다산 정약용 선생의 초상화를 그린 수묵화가 김호석이 자화상 속의 수염을 재현한적이 있다.

그는 20여 종류의 붓을 가지고 실험을 했는데, 자화상 수염처럼 길면서도 먹물이 끊기지 않고 탄력적으로 표현할수 있는 것은 서수필뿐이라고 결론 내렸다.

쥐띠의 해 새해가 밟았다. 따지고 보면 언론도 낡은 간판속에 사는 쥐의 수염을 가져야 온전한 언론이 아닌가 새삼 생각해 본다. 세상의 변화에 민감하게 수염을 쫑긋거리고, 사회 현상에 머루알 같은 눈망울을 반짝이며, 한사람의 목소리도 놓치지 않으려고 쭈볏 일어설 줄 아는 쥐수염 같은 감각 말이다.

그래서 한필의 서수필이 되어 윤두서 자화상의 수염처럼 길면서도 먹물이 끊기지 않은 글을 써야 하는게 언론의 사명이 아닐까 싶다. 쥐띠 새해 첫날 다짐이다.<주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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