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후 극에 달했던 세무당국의 백태

아침밥 20인분, 청주 한말, 닭 두 마리, 오리 세 마리 달라
‘체납처분기동대’ 마을 돌며 행패
군의원 폭행하며 세금 받아가기도

6.25 전쟁을 치른 후 주민들은 극도의 피폐함속에서 살아야 했다. 전쟁의 회오리 속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사람들도 몇 년째 흉작이 들어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농사를 짓고 세금을 내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였다. 그러나 세무당국의 행패는 극에 달했다.

동아일보 1954년 12월 27일자에는 강진세무서 직원들이 칠량면의 한 마을에서 행패에 가까운 ‘탈선행위’를 했다는 고발기사를 보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당시에 강진세무서는 ‘체납처분기동대’라는 것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들은 아무리 흉년이 들어도 세금을 수거한다며 각 마을을 돌며 납세를 독촉했다. 수시로 강권을 발동해 체납 주민에 대해서는 세액의 세배 이상의 현물을 차압해 가기도 했다.

12월 어느날 칠량의 한 마을에 아침 일찍 흰 먼지를 날리며 큰 트럭이 한 대 들어왔다. 이 마을은 몇 년째 흉년으로 끼니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트럭에는 20명의 체납처분기동대가 탑승하고 있었다. 이들은 마을에 내려 느닷없이 아침밥을 먹지 않았다며 20인분의 아침밥상을 차려줄 것을 요구했다.


마을사람들이 어렵게 20인분의 밥상을 차리자 이번에는 청주 한말을 가져올 것을 명령했다. 청주를 가져다 주자 이번에는 반찬이 부족하다며 마침 마당에 있던 닭 두 마리와 오리 세 마리를 잡게 했다. 여기에 주민들이 아껴 놓았던 달걀 15개를 후다닥 먹어 치웠다. 이들은 마을주민들에게 담배까지 사오라고 해서 얻은 다음 점심까지 싸달라고 요구했다.

밥을 배불리 먹은 ‘세무서체납처분기동대’는 본격적으로 세금을 추징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책임지고 칠량면사무소에 세금을 납부하겠다고 통 사정을 했다. 그러나 기동대는 “우리는 삼만환 이상을 주고 트럭을 대절해 왔으니 그 비용을 전부 부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은 기본 세금 벼 50가마와 독촉비와 체납처분비등을 합쳐 벼 53가마를 차압해 갔다.

이 소식을 듣고 칠량면의원이 마을로 달려왔다. 면의원의 나이는 60세였다. 면의원이 체납기동대원들에게 며칠내에 책임지고 세금을 면사무소에 완납하겠다고 사정했으나 이들은 오히려 면의원을 집단폭행하기도 했다. 신문은 ‘세무리의 탈선행위가 속출하고 있어 관계당국의 조치가 있기를 갈망하고 있다’고 적었다.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