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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균의 ‘추억의 강진극장’] 17. 한국바둑 역사학자·서지학자(書誌學者) 안영이한국바둑의 역사가 안영이의 손을 통해 정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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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13  17:3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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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 국수와 인연으로 바둑 역사학자 입문

   
2015년 11월 열린 한국현대바둑 70주년 특별전시회에서 안영이(오른쪽에서 세번째) 선생이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오래된 바둑판의 아랫부분을 홍석현 회장등에게 설명하고 있다.
중앙초 1년 선배 손승원(사업가, 서울거주)은 요즈음 강진일보『강진인간극장사』를 읽고 격려와 함께 가끔씩 오류도 정정해 주는 나의 멘토이다.
 
1960년 4. 19무렵 광주서중 재학시절 월산동에서 함께 하숙하면서 미운정 고운정이 다든 친형같은 선배다. 얼마전 카톡으로 “서지학자 안영이 선생에 관해서도 한번 써봐”라는 짧은 메시지를 받았다.

서지학자 안영이(安玲二)는 누구인가? 아! 1960년대 초반에 강진 극장통에서「도서림」이란 책방을 경영하던 중앙초 대선배 안규전(舊名, 安圭琠)이었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안규전은 강진에서 당시 강진도립병원(現, 강진의료원)에도 근무했고, 필경사(筆耕士)로서 가리방(がりばん, 등사판) 글씨를 참잘 썼다고 기억된다.

강진읍교회 장로인 고복남(삼성양복점)과 초등학교 동창으로 알고 있다. 그는 성실하고도 말수가 적고 깊이가 있는 분이었다.

당시는 강진군립도서관(1965년 개관)이 생기기 전이다. 책방의 규모는 아담했지만 상당히 수준높은 세계명작, 한국문학 소설류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었다.

강진에서 책을 좋아하는 청소년들과 장년층이 책을 대여받으러 많이 찾아왔다. 실제로 책방은 안규전의 누이동생 필자의 중앙초 4년 선배 안정아가 운영했다.

   
강진출신인 김인국수와 안영이 선생은 바둑계의 산증인으로 꼽힌다. 두 사람이 나란히 자리를 함께 했다.
그 때 책방에 잘 다녔던 멤버 중에 강진이 낳은 시문학파 김현구(金炫鳩)의 따님이요 중앙초 2년 선배 김명희와 단짝 친구들이 생각난다.

당시 안규전은 북산자락(보은산) 활사장 뒤 강진중앙초가 개교되었던 강진신교육의 발상지 금서당(琴書堂) 옆에 있었다. 초가삼간집이었고, 높은 툇마루가 있었으며 노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었다.

누이동생 안정아는 중앙초 4년 선배로 우리 또래 모두의 정다운 누나였다. 좁은 책방 안에서도 선배 배승수(교사), 김운채(사업가), 친구 박상태(법무사), 김남현(시인) 등이 모여들어 시끌덤벙하게 풋바둑을 열성적으로 뒤었다고 기억한다.

필자가 기억하기로 안규전은 필자의 4년 선배인 강진이 낳은 국수(國手) 김인(金寅)과의 인연때문에 한국기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그 후 통 소식을 몰랐다가 최근에 들어서야 그 강진의 안규전이 안영이(安玲二)란 필명(筆名)으로 활동하는 국내 유수한 바둑 서지학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월간 바둑 편집장등 바둑관련 출판활동
 
안영이의 고향은 강진읍 부춘리이다, 조부께서 이름있는 한학자였다. 안영이는 1934년생으로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출생하여 초등학교 4학년 때 해방을 맞아 귀국했다.

유년기와 초등학교를 일본에서 다녀서 일어에도 상당히 능통한 것으로 알고 있다. 1960년대 초중반에 상경하여『월간 바둑』편집장(1967-1972년), 현현각 대표(1974-1991년)을 역임했다.

이런 바둑관련 출판활동을 통해 이미 한국바둑계의 중심을 꿰뚫게 되었던 것이다. 안영이는 약 반세기 이상 바둑사료를 수집하면서 바둑사와 바둑서지학을 연구했던 것이다. 그의 실제 바둑실력은 어느 정도나 될까? 강 1급정도라는 것이다.

한국바둑 서지학자 안영이가 바둑관련 유물과 사료들을 수집하고 한국바둑사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1965년 (구)『바둑』(경우당)에서 기자로 근무하면서부터다. 안영이는 1967년『기계(棋界』(바둑의 옛이름)를 월간『바둑』으로 제호(題號)를 변경할 때는 제자(題字)를 직접 쓰기도 했다.
 
당시 선생은 잡지의 컷을 직접 그리는 도안사(圖案士), 즉 요즈음 말로 편집 디자이너 역할을 하기도 했다. 자신이 직접 그리고 만든 잡지에 대한 애착은 대단한 것으로 수집가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으며, 나아가 바둑사 연구가의 길을 걷게 됐다.

서지학자 안영이가 한국바둑사에서 이뤄낸 괄목한 만한 일들을 열거하자면 이러하다.
* 1922년 4월 김옥균(金玉均) - 고균 김옥균과 본인방 슈에이(秀榮)의 국내최초 근대식기보(1886년)
* 1995년 10월 목화자단기국의 출처가 한국임을 발표 - 17개의 꽃무늬 화점이 선명한 일본 정창원(正   倉院) 소장 목화자단기국(木畵紫檀碁局)이 백제 의자왕(?∼660년)이 일본에 보낸 바둑판임을 밝혔다.
* 1996년 9월 국내 최고 순장 바둑기조 공개 -『혈의 누』의 신소설작가 이인직(1862∼1916)과 하라(原   槍七郞) 二단의 6점바둑기보(1909년 『기계신보(碁界新報)』4월호 게재)
* 1997년 1월 한국순장바둑 인도기원설 주장 - 시킴 왕국의 17줄 시킴바둑판의 화점 근거 제시. 바둑의 어원을 산스크리트어인 바-드라고 주장
* 1998년 3월 조남철 첫 공식 대국 기보 발굴발견 - 1941년 한국 최초의 프로기사가 된 조남철 初단이 42년 일본 신진쟁패전에서 여류기사 오히라 쓰나코(大代津奈子) 初단과 둔 대국 기보를 발견했다.
* 2000년 10월 국내 최고의 돌바둑판인 월남사지 바둑판 발굴 -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사지 출토. 돌바둑판 한복판 태극점(천원)에 그려진 연화문(蓮花紋) 등을 근거로 고려시대 바둑판이라고 추정.
* 2000년 10월 신안바둑판이 21줄 바둑판이라고 주장 - 1976년 전남 신안군 지도읍 방축리 도덕도 앞 해저에서 송(宋), 원(元) 대의 유물과 함께 바둑판이 그려진 나무 조각 발견. 신안유물 관련 도록에는 15줄 바둑판이라고 발표됐으나 컴퓨터 그래픽으로 복원해 본 결과 21줄이라는 결론.(다시 쓰는 한국바둑사, 인터넷 자료)

2천년 바둑사를 새롭게 쓰다 
 
바둑문화재 수집가요 바둑서지학자인 안영이(安玲二)는 2005년『다시 쓰는 한국바둑사-한국바둑 2천년의 비밀』(재단법인 한국기원)을 출간했다.

바둑문화재 수집가 안영이는 국내 최초로 ‘바둑문화유산 전시회’에 40년간 수집한 순장바둑판, 바둑 고서 등 200여 점의 귀중한 바둑유물을 출품해 많은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었다.

그는 또 다시 바둑서지학자로 한평생 연구해온 한국바둑역사를 재구성해서 출간했다.『다시 쓰는 한국바둑사』는 안영이가 40년간 각종 사료와 바둑자료를 연구하고 추적해 새로운 해석을 낸 결정판이다. 제목 그대로 2천년 한국바둑사를 새롭게 쓴 필생의 역작인 것이다.

바둑역사가 안영이가 바둑관련 유물과 사료들을 수집하고 한국바둑사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65년 (구)『바둑』(경우당)에서 기자로 근무하면서부터다. 지금까지 꼭 40년이다.

안영이는 67년『기계(棋界)』(바둑의 옛이름) 창간멤버로 편집장을 지냈다. 이후 1974년부터 1991년까지 현현각 대표로 바둑서적을 출간하며 바둑문화재 수집가로, 나아가 바둑사 연구가의 길을 걸어왔다.

바둑서지 및 바둑사 연구에 몰두한 안영이 씨는 특히 한국의 순장바둑에 매료됐다. 이를 위해 자비로 일본, 중국 심지어 인도까지 방문해 자료를 수집하고 사료를 발굴하고 바둑사 연구에 매진했다. 이로써 지금까지 베일에 가려있던 한국바둑사를 새롭게 밝혀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강진바둑의 큰 봉우리 김인(金寅)과 안영이(安玲二)

ㅈ한국 바둑을 일으켜 세운 대국수(大國手) 조남철(부안), 영원한 국수 김인(강진), 바둑황제 조훈현(목포), 신산(神算)이라 불렸던 이창호(전주), 비금도가 낳은 천재 기사 이세돌. 그간 국내 바둑의 적통은 전라도 출신 기사들이 이어왔다.

강진이 낳은 영원한 국수 김인 9단은 실력과 인품을 겸비한 바둑계의 소문난 신사로 알려져 있다. 김인은 1943년 강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매일 같이 지나다니던 읍사무소 앞에서 어른들이 바둑을 두는 모습을 보고 어깨너머로 바둑을 익혔다고 한다.

서울에 올라온 지 채 2년이 지나지 않은 1958년 10월, 소년 김인은 15세의 나이로 입단에 성공했다. 김인은 조남철 9단의 편지를 들고 기타니 도장을 찾아갔고, 그곳에서 기타니 선생의 제자인 하루야마 2단과 10번기를 펼치게 되는데, 대결에서 김인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청년 김인은 짧지만 강렬했던 1년 8개월의 일본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1965년 이후, 김인 9단은 스승 조남철을 이기고 마침내 20년 조남철 9단의 시대를 종식시켰다.

이후 김인 9단은 국 수전 6연패를 이뤄 영원한 국수라는 명예를 얻었다. 영원한 정상은 없다. 산에 오르면 내려갈 때가 있는 법이다.
 
김인은 훌륭한 인품으로 선후배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왔고, 무엇보다 고향 강진의 바둑 발전에 기여한 바는 너무나 큰 것이었다.

강진 바둑계에 큰 두 봉우리가 있다면 영원한 국수 김인과 서지학자 안영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 분들은 그 실력과 공로를 넘어 겸손한 인품과 덕망으로 후학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바둑이야말로 여가선용이나 건전한 게임을 넘어, 인생로정에 있어서 심오한 가르침을 주는 철학적, 도덕적, 정치적 품격 높은 도(道)라고 보는 것이다.(출향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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