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강박장애는 사용 여부에 관계없이 어떤 물건이든지 버리지 못하고 저장해 두는 것을 말한다. TV프로그램 ‘세상에 이런일이’에서 집안 가득히 폐기물을 수집해 쌓아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증상의 일종이라고 한다.

원인이 무엇인지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뇌의 전두엽부위가 제 기능을 못해 어떤 물건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인지, 보관해 두어야 할 것인지 버려도 될 것인지에 대한 가치평가를 쉽게 내리지 못하고 일단 저장해 둔다’는 설명이다.

옴천면 황막리 화신마을 야산에 쓰레기가 수십년째 쌓여 있는데 ‘저장 강박장애’를 앓았던 한 주민이 그렇게 한 일이라고 주민들이 전하고 있다.

A씨의 저장 강박장애는 한국전쟁 과정에서 증세가 뚜렷해 졌다고 한다. 6.25전쟁 와중에 A씨가 폭격소리에 놀라 산속으로 숨어들더니 그 이후부터 마을의 쓰레기란 쓰레기들은 죄다 주워 산속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옴천 황막리 일대는 빨치산의 아지트였던 장흥군 유치면과 산봉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곳이다. 6.25때 빨치산과 경찰들에 의해 피해가 많았다. 1950년 9월의 일이다. 강진과 완도, 진도, 해남등지의 경찰들이 인민군과 빨치산에 밀려 유치쪽으 후퇴하면서 화신마을을 거쳐 동막마을로 들어왔다.

동막골 뒷산의 허골(허굴재)은 유치로 넘어가는 길목이다. 외지사람이라고는 1년에 한번 구경하기도 힘든 마을에 총을 든 경찰들이 들어 닥쳤다. 당시 마을에는 30여가구, 20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주민들은 경찰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며 몇일 동안 뒷바라지를 했다.

그러나 몇 일 후 빨치산대원 100여명이 경찰의 뒤를 쫓아 마을로 진입해 왔다. 경찰은 유치쪽으로 이미 후퇴해 버렸기 때문에 별다른 총격전은 없었다. 마을주민들은 빨치산이 뭔지도 몰랐으나 숙식을 제공하느라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빨치산 부대는 20여일 동안 마을에 머물렀다.

마을의 불행은 곧 바로 찾아왔다. 경찰이 본격적으로 반격을 시작하면서 빨치산이 유치쪽으로 후퇴했고, 마을은 다시 경찰의 점령지가 됐다. 경찰은 빨치산 은신처를 없앤다며 30여채에 이르는 초가집을 불태워 버렸다. 이 과정에서 빨치산에게 밥을 해주던 주민은 마을앞에서 경찰에게 총살형을 당했다.

화신마을 A씨는 10여년전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도 불타는 동막골을 지켜 봤을 것이다. 폭격소리에 충격받은 그가 산속에 저장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70여년전 한 주민이 입은 전쟁의 상처가 지금까지 쓰레기로 전해지고 있다.    <주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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