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숙/마량면 수인마을

“할머니, 가지 않으면 안 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남편과 함께 출입국심사장으로 들어가려는데 효준이 하는 말이다. 그의 맑은 눈에는 벌써 눈물이 고여 있다. “그래, 우리 효준이 착하지? 이번엔 가야 한단다. 시간이 나면 할아버지랑 다시 올게” 아이를 한 번 더 힘주어 껴 안아주고 안으로 들어갔다.

체크인을 한 후 몇 걸음 걷다가 뒤 돌아 보니 아이는 그때까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발걸음이 헛딛어졌다. 떠나오기 3일전, 아이가 침대위에서 무언가에 열중해 있다가 “이제 며칠 안 남았네-” 하고 혼잣말을 했다. 그때도 울컥했었다.

아이는 일주일 내내 우리 부부의 한가운데서 잤다. 밤마다 할머니 냄새가 좋다며 코를 가슴에 묻고 잠이 들었다. 그때, 내가 죽는 날도 아이가 이렇게 품에 안겨있다면 하나도 슬프지 않고 오히려 더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우리가 떠나고 난 침대위에서 혼자 자고 있을 아이의 모습을 떠 올리니 또 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져왔다. 탑승시간을 기다리는 공항 게이트에서 아들에게 메시지를 띄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오늘 밤만은 아이 혼자 자게 하지 말고 너희 둘 사이에서 재워라”

벚꽃이 한창인 지난 4월 초. 우리부부는 네덜란드를 갔다. 그곳에서는 아들 내외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 효준이 살고 있었다. 그곳 네덜란드 바세나 마을에서의 8일간은 꿈만 같았다. 11일간의 서유럽 여행이 끝 난 후라서 더욱 그러했는지 모른다.
 
시간에 꽉 메인 패키지여행에 많이 지쳐있었는데 아들집은 고향집을 찾아 들어간 것 같았다. 특히나 4년 만에 만나는 손자 효준이 피로를 모두 잊게 해 주었다. 아이는 속이 깊었다. 그가 2010년에 태어났으니 우리 나이로 열 살인데 너무나 착하고 어른스러웠다.
 
이국땅에서 아이를 그토록 밝고 슬기롭게 키워준 아들 내외가 대견하고 고마웠다. 그곳은 마침 어린이들의 봄 방학 기간이고 또 그 유명한 튤립축제 기간이어서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 머나먼 이국에서의 실로 아름다운 날들이었다.

20일 만에 인천공항을 거쳐 집에 도착했다. 현직에 있을 때 마련한 한옥이다. 남편은, 도 잠(도 연명)처럼 전원에서 풀 뽑으며 살고 싶다며 입버릇처럼 말하더니, 정년과 동시에 곧바로 귀촌을 했다.
 
집 앞의 들 건너에는 마치 활(弓)등처럼 휘어져 내린 장군봉 이 바다에 맞닿아 있고, 서쪽으론 구강포구의 푸른 바다가 크고 작은 섬들을 안고 펼쳐져 있다. 우리 부부의 손때가 묻은 시골집은 그 동안 정성스럽게 키운 정원수들과 함께 포근히 맞아주었다. 곧바로 손자에게 편지를 썼다.

내 사랑하는 손자 효준아! 이 할민 너와 함께 지낸 그곳의 열흘이 너무나 행복했었다. 그 중에서도, 유독 까만 머리인 네가 노랑머리 일색인 외국 아이들 틈에 섞여 유도를 하는 모습. 이슬이 맺혀있는 공원잔디위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축구를 할 때, 그리고 또 봄꽃이 만발한 바세나 마을의 고즈넉한 안길을 너와 함께 걷던 기억들은 언제까지나 잊혀 지지 않을 것 같구나. 또 네가 수영장에서 물고기처럼 매끄럽게 헤엄을 치는 모습은 어제처럼 선하고, 아침마다 치는 피아노곡 중 “엘리제를 위하여”와 “스와니 강”은 지금도 그 여운이 가슴에 남아있다.

어제 저녁도 너의 피아노 치는 소리에 잠을 깼단다. 효준아, 네가 또 슈퍼에서도, 공원에서도 하나 어려움 없이 그곳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땐 이 할미는 얼마나 기특하고 대견했는지 아니? 그렇지만 넌 우쭐해 하거나 뽐내는 일도 없었다. 할미는 그런 너의 태도가 또 너무나 자랑스러웠단다.

그리고 효준아, 지금 이 시간 할미는 조금 후회하는 것이 하나 있구나. 네가 학교에서 18명의 반 학생 중 영어를 비롯한 모든 과목은 1등을 하는데, 수학을 스페인. 잉글랜드 아이에 이어 세 번째 란 말을 했을 때 내가 했었던 말이다. “세계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영리하단다. 네가 수학을 잘 못하는 것은 노력이 부족한 탓일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1등을 해야 하지 않겠니?” 라는-.

나 딴에는 고교시절 라틴어에 좌절하려는 존 F 케네디에게 그 아버지가 했던 말이 생각 나 한 것인데, 이 기회에 다시 말 하마. “꼭 1등을 하려고 아득바득 하지 말아라. 오직 게을리 하지 말고 열심히 해라. 남보다 앞서는 것도 좋지만 사람은 먼저 예의와 겸손을 갖추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하는 것이 더 중요 하다”

효준아! 그날 너와 헤어진 후 할아버지와 난 인천공항을 거쳐 무사히 이곳에 도착했다. 이제부터 우린 너를 생각하며 꽃동산 하나를 만들려고 한단다. 네가 다음에 여기 오면 그곳 튤립공원에서처럼 코를 부비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그날까지 엄마 아빠 말씀 잘 듣고 부디 건강하여라.

나는 남편과 함께 곧바로 마당가 왕벚나무 아래 꽃동산을 만들기 시작했다. 정원연못을 만들었다. 물은 지하수를 이용했다. 튤립공원에서 찍어두었던 사진을 보면서 한 달여를 매달렸다.  마침내 완공을 했다. 맑은 물이 연못을 채웠다. 돌돌돌 흐르는 물소리가 청랑하다. 이제 연못 주위에 튤립을 심을 일만 남았다. 내 사랑하는 손자가 오면 물놀이를 하며 한나절을 보낼 작고 아담한 꽃동산, 이름 하여 ‘바세나 동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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