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초당 건물들이 습기, 곰팡이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장면은 간단한 해결법을 제시하고 있다. 주변의 나무를 베어주면 된다. 지리적으로 습기가 워낙 많은 곳에 큰 나무를 너무 오랫동안 키웠다.

한때 나무를 키운게 미덕인 때가 있었지만 곳에 따라, 상황에 따라 아주 큰 장애물이 되는 곳이 많다. 그곳이 바로 다산초당이다. 큰 사람덕은 봐도, 큰 나무 덕은 보지 못한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이 지금 다산초당 만큼 어울리는 곳이 없다.

1950년대 후반 다산초당을 막 짓고 난후 찍은 사진을 보면 주변은 산뜻하다. 물론 당시에는 땔감을 한 시대였기 때문에 민둥산이 많았지만, 주변에 나무가 없는 것은 이곳의 지리적 조건을 잘 반영한 건축이었다.

주변에 습기가 많은 땅이었지만 직사광선으로 쬐이는 햇볓과 수시로 불어오는 강진만 바람이 이 단점을 보완해 주었다.

특이하게도 다산초당 일대는 산 중턱에 연못이 있다. 왠만한 기술로는 그 경사진 곳에 물을 고이게 하기가 어려운 지대지만, 연못은 그렇게 물을 안고 있다.

다산선생이 머물던 옛 초당도를 봐도 연못이 두 개나 있다. 말 그대로 물이 넘치는 곳이다. 아마도 다산선생이 이곳에 오기전, 해남윤씨들의 산정으로 사용했던 때도 연못은 있었을 것이다.

물이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주변에 버들나무류가 몇그루 보일 정도다. 초당과 연못을 꾸밀 정도의 극소수 나무가 있는게 전부였다. 

다산초당도 역시 멀리서도 초당의 모습이 훤히 보이는 구도를 잡고 있다. 실제 모습을 그린 실경 산수화다. 주변에 나무가 건물을 가리지 않는다. 그곳은 물이 많은 대신 그렇게 시원하게 터 주워서 바람이 소통하게 해야하고, 그래야 건물이 온전히 버틸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지금 다산초당은 온갖 고목에 묻혀 있다. 목조건물에는 치명적이다. 예전 초당같으면 더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초가지붕이야 말로 햇볕을 많이 받아야 한다. 그나마 오늘까지 다산초당이 속으로만 썩으며 겉은 멀쩡이 버티고 있는 것은 한옥형태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다산초당 주변 나무들은 무슨 금과옥조 처럼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보존할 필요도 없다. 과감이 제거해 주어 멀리서도 초당건물이 보이게 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하늘에서도 햇볕이 많이 들어오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지붕을 씻을 것이다.

그러면 곰팡이도 자연스럽게 없어지고, 건물의 수명도 길어질 것이다. 무엇보다 관광객들에게 칙칙하고 습한 다산초당 마당을 더 이상 보여줄 이유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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