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심부름꾼으로서 그의 사상을 알리는 게 제가 할일이죠”

진규동 다산정신실천연구소장이 최근 펴낸‘다산의 사람 그릇’이라는 책을 선보이고 있다. 진 박사 뒤로 세워져 있는 다산박물관의 다산 동상이 마치 진 박사를 지켜보는 듯 하다.
다산박물관에서 다산교육전문관으로 근무했던 진규동 다산정신실천연구소장이 최근 국내 최초로 다산학의 실천적 관점을 중심으로 ‘평생학습인 다산 정약용의 다산정신에 관한 탐색’이라는 주제로 다산정신을 도출한 연구 논문을 발표해 화제가 됐다. 논문에 이어 ‘다산의 사람 그릇’이라는 제목으로 다산 정약용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담아냈다.

평생교육학 박사인 진 소장은 1956년 춘향골 남원에서 7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79년 KBS 공채6기로 입사 전주방송국과 본사 기획조정실, 노무, 후생, 조직관리, 심사평가, 홍보. 인재개발원 등등 주요부서에서 근무했으며 KBS 인재개발원 부원장을 마지막으로 2014년 3월 정년퇴직했다.
 
진 박사는 전주대를 졸업하고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사회복지 석사, 숭실대에서 우리나라 평생교육학 박사 1호 학위를 받았다. 퇴직 후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교육훈련매니저로 그리고 숭실대학교와 인천대학교에서 외래교수를 지냈고, 한국액션러닝그룹 평생교육센터장, 한국사회복지시설협회 자문위원, 한국성인교육학회 이사, 한국액션러닝협회와 학회 감사, 평생교육박사회 회장, 다산교육 운영평가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2017년 5월부터 강진 다산박물관 다산교육 전문관으로 근무하면서 자칭 다산심부름꾼으로 다산관련 교육 프로그램 개발 및  평가, 다산 강의, 다산정신의 현대적 계승과 발전을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도 했다. 현재 다산정신실천연구소장으로 다산정신의 실천을 목표로 실천적 연구는 물론 실천 역량 개발을 통한 다산정신 실천운동에 노력하고 있다.

● 관광해설사 설명듣고 다산에 빠져 들어
진 박사는 2016년 회갑 기념으로 친구들과 남도기행중에 강진의 다산초당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때 관광해설사로부터 다산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산 정약용이라는 인물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다산을 공부하던중 우연히 강진군청 홈페이지를 보게 됐고 다산박물관에서 교육담당관 모집 공고를 본 것이 강진과 인연의 시작이었다.

1차에 5명이 응시하여 KBS 입사 못지않은 자세로 열심히 준비 발표까지 하고 면접도 했는데 결과는 적격대상자 없음으로 합격자가 없었다. 확인해보니 적격자가 없어서 재 공모한다는 이야기에 용기를 내서 재 응시하였다. 면접장에 들어서니 또 왔는가라는 심사위원들의 표정이 역력했다.

나이나 전직에 연연하지 않고 다산의 일만을 위해서 열심히 해보겠다는 의지를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발표했다. 기대에 못미치면 그만둘 각오가 되었다고도 하였다. 진심으로 다산의 일을 통해서 남은 열정과 경험과 지혜를 쏟아보겠다고 나의 의지가 반영되어 재 공모에 합격하여 2년간 다산교육전문관으로 일하게 됐다.

그는 근무를 시작하면서 매주 월요일은 아침 일찍 다산초당에 올라가서 다산초당 주위를 청소하고 다산 선생 초상화에 인사를 하고 한주를 시작했다. 진 박사가 처음 맡은 업무는 다산 선생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다산초당 인근에 다산미래원을 건립하는 프로젝트였다.

이를 통하여 다산 학문의 플랜폼으로써의 역할은 물론 강진의 미래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고자 했다. 중앙부처와 국회, 언론사 등등 모든 인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다선정신의 계승발전과 강진의 비전을 가는 곳마다 역설했다. 하지만 넘어야 할 벽은 너무 높았다. 결국 실현하지 못했다.

● 다산 정신 쉽게 전하기 위해 논문 작성
진 박사는 2년 동안 근무하면서 늘 다산정신이 무엇인가를 자문하였지만 딱 부러지게 답변할 수가 없었고 다산정신에 대한 논문을 쓰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들이 보다 쉽게 알고 배워서 실천할 수 있는 다산정신이 절실하다는 것을 현장에서 느꼈다.

강의하는 모습
다산 선생에 대해 논문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2년 동안 현장에서 보고 듣고 배우고 느낀 것과 120여 차례에 걸쳐 다산초당을 오르내리며 나눈 다산 선생님과의 마음속 대화와 다산심부름꾼으로써 사명감이라는 생각에서 용기를 갖게 됐다.

진 박사는 다산박물관과 계약기간 만료로 일을 그만두자마자 논문에 집중했다. 논문 초안을 써놓고 박사로 활동중인 자신의 후배에게 초안을 보내 함께 작성해보자고 권유했다. 후배는 서울에서 강진으로 내려와 진 박사의 원룸에서 일주일을 함께 밤새는 줄 모르며 토론하며 노력한 끝에 논문을 완성했다.

● 다산과의 마음속 대화 엮은 책도 출판
다산 선생은 세계적으로 유네스코에서 인정한 세계적인 인물이지만 강진 사람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민들은 다산 선생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이가 많지 않다고 진 박사는 말한다.

그는 강진에 와서부터 다산 선생이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그 많은 책을 저술할 수 있었을까가 궁금해졌다. 매주 월요일 다산초당을 오르며 200여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 다산의 모습을 상상했고 제자들이나 심부름꾼 같은 심정으로 마음속의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런 대화를 통해 다산정신을 이해하고자 했다. 이때 마음속 대화들을 바탕으로 엮은 책이 바로 ‘다산의 사람 그릇’이라는 책이다.

진규동 박사는 “강진 곳곳에 다산정신이 묻혀있고 이 다산정신을 강진의 미래 발전의 원동력”이라며 “미래의 사회적 가치로 평가받는 다산정신을 꽃 피울 수 있도록 강진에서 하루라도 빨리 씨를 뿌려야 한다”고 말했다.      


“다산 정신의 핵심은 주인정신”

다산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를 비롯한 600여권의 책을 강진에서 저술했다. 다산 선생이 추구했던 사상과 정신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려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다산정신은 쉽게 말하면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진규동 박사는 ‘다산학에 기반한 주인정신과 위국애민정신에서 드러난 소통, 청렴, 공정, 탐구, 창조, 개혁’ 정신이라고 논문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진박사는 다산정신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주인정신’을 꼽고 있다. 진 박사가 말하는 주인정신은 사람들이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경영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나라의 근본이 백성이라는 말이다.

백성들이 주인이라는 사상이 확산되면 나라의 구성원인 백성들은 자연스럽게 나라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위국애민정신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상은 오늘날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사상인 셈이다. 바로 이점이 다산 정신에 주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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