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영암읍에는 3개의 양조장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운화파, 동운파, 장암파로 불렀다. 운화파는 영암의 유명한 정치인 김준연씨 집안 소유였다.

동아일보 편집국장에 이어 5선 국회의원을 거쳐 법무부장관을 지낸 거물 정치인이었다. 동운파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 기세등등했던 조희채 검사집안에서 운영했는데, 조검은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 뜨린다는 당시 무서운 검사였다.

그해 추운 겨울, 박희권이란 무명의 사업가가 영암읍에 나타났다. 이 사업가는 서열 3위의 장암양조장을 인수하면서 운화파와 동운파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는 강진 작천 사람이었다. 1947년 작천양조장을 만든데 이어 민선 작천면장(1956~1959)을 지내다 장암양조장을 인수한 것이다.

전쟁에 가까운 시장쟁탈전이 벌어졌다. 장암막걸리는 작천 양조장의 노하우를 이용해 맛을 개선하는데 힘쓰고 또 힘썼다. 그렇게 5년이 지나자 변화가 생겼다. 먼저 조희채 검사 집안의 동운파를 잡았고 3~4년 후 김준연 장관집 운화파가 무너졌다.

여세를 몰아 해남으로 진출했다. 양조장 경영 기술을 배운 그의 사촌들이 잇따라 해남으로 넘어왔다. 해남인구가 20만명이 넘을 때다. 양조장은 지역사회에서 대단한 이권사업이었기 때문에 현지 재력가들의 저항이 대단했다. 결국 승리는 강진 막걸리였다.
 
해남의 양조장중 황산, 계곡, 송지, 현산, 산이, 화원 양조장을 작천출신 박씨 성들이 차지했다. 지금도 현산과 산이, 화원 양조장 주인은 강진 박씨들이다.

희권씨의 조카들 중에 강진에 남아 1977년부터 막걸리 제조기술을 배운 사람이 바로 지금 도암주조공사 대표 박병현 선생이다. 그는 작은아버지 쪽에서 운영하던 작천양조장에서 오랫 동안 기술을 연마해 1999년 도암양조장을 인수했다. 

그의 고집은 유별나다. 우선 자신을 알릴줄 모른다. 옆은 보지 않고 그냥 막걸리만 만드는 사람이다. 그의 우직함은 막걸리 맛에 그대로 베어 있다. 유행을 타는 탄산맛 보다는 옛스러운 전통 막걸리 맛이 강하다. 요즘들어 그 우직스러움이 소비자들의 입맛을 잡아가고 있다고 한다. 뽕막걸리가 그의 고집스러운 역작이다.

올해가 그의 막걸리 인생 40년 째라고 한다. 강산이 네 번 변한 세월이다. 작천양조장이 지난해 문을 닫았으니 그가 강진에서 박씨 집안 양조장을 잇는 유일한 사람이 됐다.

영암 운화파와 동운파를 이겨낸 기개와 해남의 황토벌판에서 막걸리 시장을 석권한 집안의 부지런함을 박병현 대표가 잘 이어주길 바란다.     <주희춘>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