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비 238억원, 역대급 공사가 발주됐다

1998년 강진군에서는 생활하수의 원활한 처리로 청결한 생활 환경조성과 강진만 해양수질오염 방지를 위한 환경기초시설인 강진읍하수종말처리장 설치사업을 추진했다. 사업기본계획은 6억1천300만원을 들여 1998년 6월 20일 완료했다. 이듬해인 1999년 4월 30일 환경부로부터 사업을 인가받고 사업 추진을 시작했다.

하수종말처리장은 강진읍 목리 475번지 일원 토지 69필지 23,800㎡(7,207평)가 사업 대상지역이었다. 이때 토지의 소유주는 총 30명이었다. 하수종말처리장은 하루에 약 8,000톤이 처리 가능한 규모였다. 처리 공법은 SBR 공법(연속회분식 활성슬러지법)으로 결정됐다.

이 공법은 반응조에서 유입, 반응, 침전,배출, 휴지공정을 연속적으로 수행하며, 이를 바탕으로 인과 질소처리 효율을 증가시키기 위해 때에 따라 약품을 주입한다. 이 공법은 일반 공정들과 달리 단일 반응조에서 모든 공정을 수행하여 침전설비, 반송설비 등이 불필요하며 공정 변경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수종말처리장의 주요시설 관리동(현 상하수도사업소 건물)과 유입펌프동, 반응조, 방류펌퍼동, 차집관로 10개 노선 9.9㎞ 등이었다. 관리동은 2,985㎡ 규모로 지하1층, 지상2층의 골조콘크리트 건물로 설계됐다. 사업기간은 1999년 11월부터 2002년 11월 14일까지 4년에 총사업비는 최종적으로 238억3천700만원이었다.
 
1999년 당초예산은 804억5천만원이었지만 그중 29.6%만 최종 반영된 것이다. 축소된 금액만으로도 현재로 환산해보면 약 854억1천300만원으로 시공사는 삼성물산이 맡았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규모의 사업이었던 셈이다.

사업이 진행됐던 1998년 7월 1일 민선2기 윤영수 군수 취임했다. 이때 사회적 분위기는  IMF 구제금융으로 사회 경제적 불안정을 최소화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 구조조정이 가속화되면서 공직사회에도 그 여파가 몰아쳤던 때였다.

당시 15개 실과를 11개 실과로 통폐합하고 행정기구의 감축과 함께 공무원의 총원을 당초 668명에서 576명으로 92명을 감축하는 강진군행정조직의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오랜기간 동안 공직사회뿐 아니라 일반사회에서도 자리잡은 ‘계장’ 제도를 없애고 ‘담당(현 팀장)제’로 전환됐던 시기였다.

윤 군수는 취임과 더불어 구조조정을 위한 조직개편 작업을 마치고 1998년 9월 2일자로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당시 인사를 총괄했던 나종식 내무과장은 2년7개월여 동안 내무과 서무계장을 맡고 있던 나에게 경리담당을 추천했다. 나는 천성이 금전과 관련된 업무는 나의 업무스타일에 맞지 않다며 완강히 거절하였으나 결국 경리담당으로 발령이 났다.

내가 경리담당을 맡고나자 단일사업으로는 강진군 최초로 큰 사업비인 대형 프로젝트 사업의 입찰업무가 당면과제였다. 바로 하수종말처리장이었다.

이때 사업규모가 상당히 컸음 알 수 있는 일이 있다. 관계부서에서 입찰의뢰가 오기도 전에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들이 입찰을 받고자 나름대로 동향을 파악하면서 자신들이 유리하도록 입찰제한 사항을 공고에 포함해 주라는 등 나에게 입찰에 따른 압력을 행사해 왔다. 워낙 사업비 규모가 큰 사업이기 때문에 국내 업체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일반인들의 시선도 과연 강진군이 공정한 입찰을 할 것인지 지켜보는 상황이었다. 부담되는 일이었다.

특히 이 일이 나의 머릿속에 남아있을 만큼 어려웠던 점은 주변의 무성한 소문때문이었다. 대단위 사업의 입찰과정에서 군수를 비롯한 관계공직자들이 시공회사 선정과정에서 많은 액수의 금품을 수수할 것이라는 막연한 억측이 저변에 회자되고 있었다. 최대한 공정하게 일을 진행하는 것이 최대 숙제였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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