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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균의 ‘추억의 강진극장’] 13. 강진이 낳은 라이트(Wright) 형제 조경연(1)그가 손을 대면 부릉~ 부릉~ 하늘을 나는 비행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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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09  19:5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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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조경연 선생이 미공군 소속 폐 비행기를 개조해 만든 해취호(海鷲號). 한국 함대에 예속된 최초이자 유일한 항공기였으며,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발된 항공기라는 명예를 안게 된다.
강진에서 상영되었던 영화나 가설극장, 서커스, 악극단, 쇼무대 이야기를《추억의 강진극장 이야기》란 제목으로 쓰다보니 그보다 더《강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드라마틱하고 창조적이요 예술적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난 호《강진에 유곽(遊廓)이 있었다》를 본 출향인들이 필자의 오류에 대한 정정요청과 강진일보에 대한 격려가 있었다. 해방 이후 유곽이 없어진 자리에 강진도립병원이 있었는데 그 당시 치과선생 김주홍 선생의 아우인 서울의 외과병원장 김유성 선생이 “강진농고 출신으로 최초의 의사가 되었다”는 기사를 읽고 강진농고 동창인 황기순 선생을 통해 강진일보 주희춘 대표에게 반가운 격려의 소식을 전해왔다고 했다.

또한 필자가 당시 강진도립병원 원장의 딸 조삼남이 초대대통령 이승만의 양자 이인수의 부인이 되었다고 기록했더니, 조삼남은 동생이고 큰 딸 조혜자가 이인수의 부인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강진초등학교 1년 선배인 손승원(사업가)이 카톡으로 강진일보 기사를 캐나다에 이민가 살고 있는 필자의 초등학교 1년 선배 김현익에게 보냈더니, 김현익이 오기(誤記)를 발견해서 손승원을 통해 정정(訂定)을 요청해 왔다. 필자는 조삼남을 조혜자로 바로 잡는다. 서울과 캐나다에 거주하는 출향선배들에게 안부와 함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초대 해군 항공대장 
 
   
조경연 선생
필자는 지난 8월 즈음 강진의 문화역사 향토사가요 해설사인 안종희(安鍾熙)를 만나서 강진출신으로 해군에 복무하면서 비행선(飛行船)을 제작했다는 고 조경연(趙敬衍, 1918~1991년) 항공대장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아! 아! 이 순간 나의 기억의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60년 전 1959년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였든가 강진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목리에 비행선(飛行船)이 내렸다는 소식이었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내가 목리 나루터에 갔을 때는 이미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과연 비행선이 물 위에 떠 있었다. 아이들은 비행선을 만져보려고 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강진은 기차(汽車)도 없는 곳이다. 당시 장흥, 강진, 영암, 해남사람들이 기차를 보거나 타본 사람은 소수였던 것이다. 신기한 일이었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가 물 위에 내려 앉았다니. 이후에 강진에 비행선이 왔었다는 기억만 갖고 살았다. 왜 왔는지, 해군비행정이니 군사적 목적에서였을까? 혹은 다른 일로 강진에까지 그 보기 드문 비행선이 내렸을까? 더 이상은 생각도 못한 채 60여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다.

필자는 선배인 강진 문화원장 황호용을 면담하러 갔다가, 김순혜(문화원 부원장)를 통해서 성전출신 항공대장 조경연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역사문화 해설사 안종희를 소개받았던 것이다.

대한민국 해군 항공의 선각자로 불리는 해군초대 항공대장의 고향은 전남 강진군 성전면 신안마을이다. 필자는 친구 한성수(韓盛守, 사업가)와 함께 성전면 신안마을 조경연의 생가를 방문했다.

신안마을은 남월출산 산자락에 자리한 아늑하고도 튼실해 보이는 농촌마을이었다. 생가는 농촌가옥치고는 상당히 널찍한 대지 위에 오래 전에 잘 지어진 농가형 한옥이었다. 안방에서 80세에 가까운 인자하게 생긴 여사(女史) 한 분이 나오더니 어디서 오셨는가 물으면서 불편한듯한 몸으로 담담하게 맞아주었다. 강진이 배출한 항공대장 조경연의 내력을 들으러 왔다고 말했더니 시아버지 조경연에 관한 내력을 전해주었다.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들어보니 항공대장 조경연의 자부(子婦)인 오순화(吳順嬅, 79세)는 강진 남성리(당시 전남여객차부 앞)에서 강진석유(康津石油)를 경영하던 오엽원(吳爗元)의 6남매 중 장녀였다. 오순화는 필자의 강진중앙초등학교 6년 선배였다. 그의 동생 오선호(사업가)는 필자의 강진초등학교와 광주서중 1년 선배였다.

오순화는 광주여고를 졸업하던 해에 결혼을 했다. 부군인 조석재(趙錫宰)는 항공대를 졸업하고 무선통신사로 해군에 복무하고 있던 인재였다. 이들이 진해에서 신혼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무슨 일인지 기억은 못하나 시아버지가 제작한 비행선이 강진에 간다고 하니 차제에 친정에 다녀오고 싶었던 것이다. 당시 남편 조석재는 1급 무선통신사 시험을 보러갔다고 했다.

   
성전면 신안마을에 있는 조경연 선생의 생가이다.
강진에 왔던 비행선은 조경연이 제작한 8대의 비행선 중에서 어느 배를 타고 온 것인지는 잘 알 수 없다. 나의 기억에는 물에 떠있는 비행선과 수많은 아이들이 비행선을 한번이라도 만져볼려고 물속으로 들어왔던 생각 뿐이다. 함께 간 친구 한성수가 어려서 보았던 기억을 되살려 보더니 비행선 랜딩기어(육상비행기로 말하자면)가 두 개란 것이 생각난다고 했다. 또한 조종석과 탑승석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었던 것 같다고도 말했다.

친구 사길진(史吉振, 아남전자)도 같이 보았는데 당시 조종사가 독일군이 쓰는 것같은 가죽헬멧을 썼다고 기억했다. 당시에 명대위라는 해군장교가 조종석에 앉아 있었고, 뒷좌석에 항공대장 조경연, 맨 뒤에 며느리인 오순화가 탑승했다는 것이다. 오순화는 당시의 장면을 이렇게 회상했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수도 셀 수도 없이 비행선을 구경하러 왔어요”
당시 우리나라 기술력이란 것은 아주 수준이 낮았다. 필자가 서울에서 1963년경 시발택시를 보았는데 그것은 폐기된 미군 지프(Jeep)의 엔진을 수리하고, 차체는 미군 도라무깡(드럼통)을 망치로 두들겨 펴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당시 육군이 사용했던 육상비행기는 자체제작이 아니라 미군비행기를 그대로 사용했는데, 해군에서는 항공대장 조경연의 기술력과 창의력으로 해군 공작창에서는 당시 8대의 비행선(飛行船)을 자체 기술로 제작했던 것이다.

라이트(Wright) 형제의 비행성공
     
 새처럼 하늘을 나르고 싶은 욕망은 인류역사에 있어서 어느 민족, 누구에게나 있음직한 희망사항이었을 것이다. 이 위대한 인류의 이상을 실현한 최초의 인물이 바로 미국출신 형 윌버 라이트(Wilbur Wright, 1867년~1912년)와 동생 오빌 라이트(Orville Wright, 1871년~1948년)였다고 본다.

이들은  1903년 12월 17일 조종이 가능하고 공기보다 무거운 동력 비행기를 제작하고 최초로 비행에 성공시킨 미국인 형제이다. 그로부터 2년 후 형제는 첫 고정익 항공기를 제작하였다. 고정익 항공기란 동체에 날개가 고정되어 있는 항공기를 가리킨다.

1902년에 라이트 형제는 날개 비틀기가 날개 끝에서 서로 다른 양의 항력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아냈다.
개선된 날개 설계는 더욱 더 긴 활공을 가능케 했다. 라이트 형제는 활공시험 비행을 통해  선회 비행 후, 혹은 바람으로 인한 방해 후에 수평비행으로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라이트 형제의 각고의 노력 끝에 인류는 새처럼 하늘을 나는 꿈을 이루게 된 것이다.

선친은 성전면장 지낸 조남택
 
우리나라 해군 항공의 선각자로 불리는 고 조경연(趙敬衍, 1918~1991년) 해군초대 항공대장의 고향은 전남 강진군 성전면 신안마을이다. 월출산을 배경으로 한 성전 신안마을에는 아직도 그를 기억하는 가족들과 지인들이 생존해 있다.
 
오래된 생가에는 조 중령의 며느리가 살고 있으며 조카 중의 한 명은 면 소재지에서 오토바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풍양 조씨 일가가 대부분인 신안마을은 쌍효각(雙孝閣) 한천(寒泉) 등 유적이 남아 있으며 인근 월각산 아래로는 청자골 달마지마을이라 불리는 대월마을이 있다.

 조경연 중령의 항공기 제작 역사는 그가 뛰어놀던 성전면 신안마을 학창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치하 면단위에서는 비교적 명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선친은 해방 전 성전면장을 지낸 조남택이었다. 조경연은 끊임없는 창의력과 도전정신으로 여러 과학 경진대회에서 수상을 하며 손재주가 좋아 10대 중반에 이미 소형 비행기를 손수 제작해 시험비행을 했다고 한다.

조경연 항공대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수상항공기 해취호(海鷲號)를 제작했고 이어 서해호(誓海號), 제해호(制海號) 등 모두 8대의 수상 및 육상항공기를 제작해 그 중 7대를 성공시킨 해군항공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이다.<다음호에 계속>   /출향인·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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