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바닥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농민들이 울부짖었다

수리시설 설치를 위해 5억원의 사업비 특별지원을 지시한 김영삼 대통령은 약 1시간가량 칠량 장계에서 머무른 뒤 오후 4시경 헬기를 타고 다시 서울로 돌아갔다. 이때 김영삼 대통령의 방문은 강진군 역사상 국가 원수가 최초로 칠량 장계지구를 방문한 일로 기록됐다.

대통령의 강진군 방문으로 인해 작은 일화가 하나 있었다. 대통령이 군청 청사를 방문하게 됨에 따라 VIP 경호에 따른 사전 점검을 하게 됐다. 대통령 방문 하루 전에 3층 건물을 대상으로 점검을 했다. 사전 점검팀은 강진군청 전 사무실 집기와 천정내부까지 점검을 하고 비표를 부착했다.

또 대통령이 현장 방문을 위해 군청을 체류하는 시간동안 필요한 인원을 제외하고 모든 공직자들의 사무실 입출입을 전면 금지했다. 이 때문에 공직자들은 밖에서 업무를 손에서 놓고 밖에서 대기해야만 했다. 당연히 일부 직원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이 일도 작은 추억 한조각이 됐다.

대통령까지 강진을 찾아 민생 현장을 찾았던 것은 그만큼 가뭄이 심각했다는 반증이었다. 강진군은 보통 온화한 남해안형 기후에 속하며 월평균 기온 0℃이상, 연 강수량은 약 1,400mm 정도이다. 일조량은 연평균 2천시간. 연중 연안을 흐르는 난류의 영향으로 기온의 연교차는 25℃이하로 농사짓기에 최적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는 고장이다.

하지만 1994년에는 기상관측을 시작한 1945년 이래 최초로 연간 강수량이 평년의 절반 수준인 758.0mm를 기록해 최악의 상황이었다. 1993년에 1,300㎜정도 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94년 강수량은 절반정도 수준인 셈이었다.

94은 1월부터 5월 25일까지 강수량 282㎜로 1모작 논에 겨우 이앙을 마칠 수 상태였다. 그 후 6월 8일 5㎜의 강우량을 제외하고는 6월 17일까지 23일 동안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비가 내리지 않자 모내기를 한 논은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버렸다. 이앙했던 벼 잎은 밸밸 꼬여 빨갛게 타 들어가는 지경에 놓여 농민들의 마음도 함께 타들어갔다.

다행히 북상하는 기압골의 영향으로 6월 18일 오후 6시30분 폭풍주의보 발령과 동시에 하늘에 먹구름이 끼면서 농민들의 근심을 풀어주 듯 저녁무렵 단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이 비로 인해 이앙하지 못했던 2모작 논에도 이앙을 끝낼 수 있었다.

이후 6월 26일부터 27일까지 이틀동안 6㎜의 비가 내렸다. 6월 27일 이후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면서 한낮의 온도가 32℃를 오르내리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이후 7월 24일까지 약 한 달여 동안 비 한 방울도 볼 수 없는 최악의 사태가 연속돼 가뭄과의 전쟁을 벌여야만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듯이 7월25일 오후 7시쯤 북쪽 하늘에서 먹구름이 서서히 다가왔다. 월출산 아래 성전, 작천, 병영, 옴천면, 강진읍 등 5개 읍·면은 8~20㎜의 비로 밭작물은 다소 해갈됐지만 정작 남부지역 면에는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아 실망을 금치 못했다.

질긴 가뭄에 이어 8월 3일 오전 4시까지 평균 64.6㎜의 비가 내렸고 농민들의 근심을 완전히 불식시키려는 듯 8월 10일 태풍 13호 ‘더그’ 북상해 8월 12일까지 158.0㎜가 내림으로써 완전히 해갈됐다. 이때문에 당시 더그 태풍을 효자 태풍으로 명명하기도 했다.

극심한 가뭄피해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속에 민‧관‧군이 혼연일체가 되어 유비무환의 일관된 자세로 가뭄 극복을 했던 한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속담에서 보듯 1994년 가을 들녘은 그야말로 피와 땀의 결정체가 돼 가뭄이 언제 있었냐는 듯 오곡백과가 풍성한 가을을 맞이할 수 있었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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