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식/한글 서예가

5일 후면 573돌 한글날이 다가온다. 초가을의 청명함과는 달리 오늘을 맞이하면서 자꾸 마음 한 구석이 우울해진지도 10년이 넘었다. IMF 외환위기를 초래한 YS는 대통령이 되자 느닷없이 세계화를 부르짖었고 전 국민의 영어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공청회 같은 것도 없이 부랴부랴 실시한 것이 초등학교 4학년부터 영어 교육 시키기였다.

정부도 통제하기 어려운 무자격 원어민 교사의 범람 저질교육에 낭비되는 막대한 사교육비 모든 학과를 영어로 강의한다는 것을 자랑으로 내세우는 한심한 대학들 모든 언론 매체가 남발하고 있는 영어 표현. 이런 사태들이 모여져 한글 경시, 한글오염, 한글훼손, 한글 죽이기가 무차별적으로 자행되고 있지나 않은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파란만장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만들고 지켜온 한글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 똑똑히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지금 한글은 사용자들로부터 학대당하고 혹사당하고 멸시당하고 있다. 채팅과 휴대전화 문자에서 으깨지고 뭉개지고 삐뚤어지고 있다. 한글의 문전박대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셈이다. 도대체 국가적 정체성의 기반을 모조리 영어에 헌납한 뒤에 국제화되어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한글은 ‘한(韓) 나라의 글이고, 큰 글이고 세상에서 첫째가는 글’이다. 한글이 있어 지금 우리는 우리의 말과 생각을 글로써 표현한다. 한글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의 컴퓨터 키보드와 휴대전화 자판은 모두 한문을 구현하기 위한 조합이 되어 있을 것이다. 민족의 바탕은 고유의 말과 글이고 그것이 없으면 민족이라고 내세우기가 어렵게 된다. 만주어와 만주족이 사라진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 말은 있으나 우리 글이 없는 세상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말을 그대로 옮길 수 있는 글이 없다면 우리는 여전히 한글 창제 이전처럼 한자를 사용할 것이다.

한글 창제 이전의 양반들은 정치적, 경제적 지배 발판을 한문으로 삼았다. 요컨대 양반만이 한문을 공부하고 과거제도를 통해 관료체제에 편입해 온갖 기득권을 누릴 수 있었다. 양반세상에서 세종이 한글창제를 꿈꾸었다는 것은 혁명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세종이 신하를 시켜서 한글을 창제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로는 세종 자신이 한글 창제를 주도한 언어 학자였다. 그래서 세종실록에서도 훈민정음에 대해서만은 유일하게 친제(親制)라는 표현을 썼다. 비밀리에 진행되지 않고 공개적으로 진행되었다면 양반 기득권 세력의 반대로 훈민정음 창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한글이 없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한글이 창제되지 않아 여전히 한자를 사용하는 한국인, 일제 강점기처럼 일본말과 일본 이름을 사용하는 한국인을 상상해보자. 그러면 내가 물려받은 한글, 내가 쓰는 한글이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완벽한 정신적 유산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한글, 우리 마음에 품고 우리 마음처럼 평생 갈고 닦아야 할 보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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