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 한해가 극심한 칠량 장계지구 방문했다
1994년은 아직도 폭염과 가뭄으로 힘든 한해로 기억되고 있다. 가뭄으로 94년에는 강진군이 만들어진 이래 현직 대통령이 처음으로 강진을 방문한 해기도 했다. 그만큼 강진의 가뭄피해가 심각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1994년 7월 16일 오후 3시 대통령이 강진군청에 도착했다. 도착후 대통령은 강진군청 소회의실에 마련된 가뭄극복 상황실에서 가뭄대책 상황보고를 청취했다. 이때 김영삼 대통령과 최인기 농림수산부 장관, 구용상 전남도지사 등이 함께 참석했다. 이때 강진군은 김영록 군수 시절이었다. 김 군수와 함께 정동균 당시 건설과장과 임경용 행정계장이 배석해 상황보고를 도왔다.
이때 보고 내용을 살펴보면 수도작 재배면적 1만746㏊중 수리안전답을 제외하고 1,207㏊에 물이 고갈돼 땅이 갈라지고 염해피해로 인해 모가 고사하는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 다행스럽게도 밭작물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으나 총면적 460㏊(콩 127㏊, 특용작물 305㏊, 서류 등 28㏊)중에서 파종면적의 18% 정도가 생육장애 피해가 나타나기도 했다.
군에서는 대책으로 양수장 19개소 19㏊와 관정 2,106개소 375㏊, 양수기 4,595대 681㏊로 최대한 대책급수를 추진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수답 132㏊ 정도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만을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에 가뭄 해결을 위해 대형관정 3개소, 소형관정 21개소, 하상굴착 125개소, 들샘과 보 개설 304개소 등을 위해 1억1천500만원을 투입했고 간이용수원 시설 및 장비, 전기사용료 150만원을 국비로 지원하는 등 어느 해 보다 과감한 행정지원을 했던 것이다.
특히 민간장비 굴삭기 59대 지원 하상굴착과 송수 호스 210㎞를 지원했고 소방차 28대를 동원해 용수를 공급했다. 농민 6,641명과 공무원, 기관단체 임직원 1,930명, 군인 225명 등이 가뭄극복에 함께 힘을 모아 농민과 아픔을 함께 하는 마음으로 노력했다.
이런 내용을 정리해 김영록 당시 군수가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김 대통령은 이후 현장 방문을 했다. 대통령이 방문한 현장은 칠량면 장계천 100m아래 둑에 설치된 가뭄대책 현장 지휘소였다.
현장에도 대통령과 함께 최인기 농림부 장관과 구용상 전남도지사, 김영록 군수가 함께 했고 현장에서 상황보고는 김기표 당시 칠량면장이 담당했다.
가뭄의 최고 피해 지역이었던 장계지구(장계, 봉황들녘)는 경지면적 267㏊(장계 133, 봉황 134)로 15%인 40㏊가 물이 고갈돼 극심한 피해를 입고 있었다.
이에 칠량면과 군에서는 장계천 700m 구간에 5개소의 하상굴착과 2개소의 들샘을 개발해 대책용수에 최선. 농민 60명과 공무원 25명, 군인20명이 연일 동원. 굴삭기4대와 양수기20대, 송수호스 6㎞를 지원했다.
당시 장계천은 장계교를 중심으로 학동마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하상굴착으로 달 표면의 분화구를 연상하게 할 정도였다.
가뭄이 극심했던 강진은 금강천 지류에 속한 북삼면을 제외하고는 칠량, 대구, 마량 등이 피해가 컸던 지역이었다.
가뭄극복의 선도적인 역할을 다했던 장계지구 주민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을 매스컴을 통해 알고 전국에서 격려를 보내오기도 했다. 고통과 아픔을 나눌 줄 아는 대한민국의 국민성을 보여줬던 좋은 사례로 기억되고 있다.
이런 내용을 전해들은 김영삼 대통령은 김기표 면장과 농민들을 격려한 뒤 농민, 군인들과 함께 양수작업을 실시하고 가뭄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이와 함게 수리시설 설치를 위해 5억원의 사업비를 특별지원해주기도 했다. 당시 5억원이면 오늘날로 환산하면 약 24억원정도로 추정된다. <정리=오기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