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기와 올려진 무념정에 서면 번뇌와 망상 사라지네”

고려청자박물관내
비취빛 계룡정, 무념정 ‘눈길’
고려 궁궐에 있던 양이정 복원 의미 담겨

배양수 당시 박물관
상형실장 기와 제작 맡아
정자 1곳당 약 3천여개
기와 소요, 수개월간 작업


고려청자박물관에는 2개의 정자가 있다. 일반적인 정자와 달리 이 정자는 비취빛 청자 기와가 올려져 있다. 이들 정자는 각각 이름을 갖고 있다. 계룡정(鷄龍亭)과 무념정(無念亭)이다. 정문에 있는 육각형 모양의 정자가 계룡정, 연못가의 정자는 무념정이다.

경복궁 향원정 본딴 계룡정(鷄龍亭)

계룡정의 모습이다. 육각형 모양으로 매년 다도체험이 진행된다.
고려청자박물관내에 청자기와 정자들은 고려시대 궁궐터인 만월대 있었다고 전해지는 ‘양이정’에서 비롯됐다. 고려사 의종왕 11년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임금(의종)이 왕업을 번영케 하고자 궁궐옆에 있던 민가 50채를 헐고 수덕궁이란 새 궁중건물을 지을제, 정원에다가 양이정을 세웠는데 청자기와를 올렸다’라는 기록이다.

양이정은 궁궐내에 있던 것으로 고려청자로 만들어진 기와가 올려진 정자였다. 청자기와는 기록에는 있지만 파편이 전국 어느 곳에서도 나오지 않아 실존 여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1964년 청자 기와 파편이 강진에서 발견됐다. 이는 강진의 도공들이 청자 생산에 있어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증거였다.

지금은 분홍나루라는 카페가 들어서 있는 고바우공원은 이전에는 해변가에 위치한 쉼터로 2층 콘크리트 구조물로 된 정자가 있었다. 바로 이 정자의 이름이 고려 양이정의 이름을 본따서 ‘양이정’이었다. 하지만 이 정자는 토지소유자와의 임대 기간이 끝나면서 철거됐다. 철거후 고려시대 최고 청자 제작 기술을 갖고 있다는 사실의 상징이었던 양이정을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이를 청자사업소(고려청자박물관 전신)에서 추진하게 됐다.

정자형태가 문제였다. 양이정의 모습이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경복궁내 향원정을 모델로 참고했다. 향원정은 2층이지만 1층 높이로만 제작하기로 결정하고 지붕을 청자기와 형태로 올리는 것으로 최종 결정됐다.

청자기와를 구웠던 배양수 전 상형실장의 모습이다.
문제는 청자기와를 만드는 것이었다. 청자 기와의 모양이 전해지지 않아 한옥에 사용되는 전통기와 모양을 본따서 제작했다. 제작은 당시 청자사업소 상형실장을 맡고 있었던 배양수(현 고봉도예)씨가 맡았다. 청자토의 경우 고열에 흐트러지는 경우가 많아 제작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배 전 실장은 전통기와 모양이 담겨진 책자를 보고 연구하며 석고틀을 먼저 제작했다. 기와 부품별로 틀로 따로 제작해 조립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하루에 약 50여장씩 만들었다. 정자에 소요된 기와만 3천여개 이상이었다.

정자의 이름은 ‘계룡정(鷄龍亭)’인데 이름도 주변 지형과 의미를 불어넣어 선정했다. 선정이유는 고려청자박물관 뒷산이 여계산(女鷄山,암탉형국)이고 인근 계치마을 뒷산 이름은 대계산(大鷄山 수탉산)이라는 점이 감안됐다. 지역주민들의 의견도 청취해 닭이 알을 낳듯 청자 재현 사업도 알 낳듯 잘 되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천원지방 사상 담겨 있는 무념정(無念亭)

박물관내에 있는 무념정이다. 연못과 어우러져 멋진 풍광이 눈길을 끈다.
청자축제때 잉어에게 먹이주기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됐던 작은 연못 하나가 있고 옆에는 정자가 하나 있다. 이 정자가 무념정無念亭)이다.

무념정은 비교적 최근에 설치됐다. 2007년부터 2017년까지 11년에 걸쳐 대구면 수동리와 사당리 등 15만2천377㎡에 대해 437억원을 투자하여 공방42필지 등을 조성하는 고려청자문화특구 사업이 지식경제부장관 지정으로 추진됐다.

이때 특구사업 일환으로 연지 조성사업을 진행하게 됐는데 연못과 함께 정자를 설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연지 조성은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는 사상이 반영됐다. 천원지방이라는 것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우주관으로 하늘과 땅의 도(道)나 덕(德)을 의미하는 사상이다. 주로 조선시대때 정자를 지을때 우리 선조들이 반영했던 사상이었다.

무념정은 창덕궁 후원에 있는 애련정(愛蓮亭)이라는 정자를 모델로 삼았다. 서쪽 전면의 두 기둥은 연못속에 놓고 긴기둥형태의 초석 위에 정자를 세웠다.

이 정자의 이름은 말 그대로 ‘연못을 바라보노라면 수초와 더불어 잉어가 노니는 모습을 보면서 번뇌와 망상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뜻으로 무념정(無念亭)이라 이름지었다. 계룡정과 무념정의 현판 글씨는 다산 선생의 문집에서 글자를 차용했다. 다산 선생과 고려청자의 만남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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