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홍 군수가 첫 사인한 결재서류는 청자촌 사업이었다

청자촌 조성사업을 위해서는 사업부지를 농업진흥지역에서 해제해야만 했다. 해제는 대체 농지를 지정해야만 가능했는데 이를 3개월안에 추진한다는 일도 국토이용계획변경을 추진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이때 강진군내에서 대체할만한 비농업진흥지역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타 시군의 농지를 대체하고 농림부의 승인을 얻어야했다.

이때는 식량안보가 중요한 문제였다. 여기에 3개월후인 1995년 7월 1일부터는 농지전용허가 기준이 강화돼 농업진흥구역은 허가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법이 시행되기 이전에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당시 김병기 농어촌개발계장과 김권호 주무관은 농림부, 전라남도 등 관계기관을 수차례 방문하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 고흥군에서 대체농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농지전용허가는 농림부 장관 소관이었기 때문에 곧바로 계획(안) 공고 등 행정절차를 거쳐 6월 초 전남도에 승인요청과 함께 대체농지 확보를 전제로 농림부장관에게 농지전용허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몇일 후인 1995년 6월 23일 국토이용계획변경안이 최종 승인돼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나는 눈물겹도록 반가운 나머지 김병기 계장과 함께 군수실로 입실해 공문 결재를 올렸다.

결재 서류를 본 전지현 군수는 민선군수가 취임해 곧바로 사업을 착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였다며 그동안 나와 직원들의 노고에 대해 격려해주었다.

1995년 6월 27일 처음으로 실시된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김재홍 군수가 당선되면서 3년간의 임기로 7월 1일날 취임식을 가졌다. 김 군수는 취임 후 청자촌 조성에 따른 국토이용계획변경(안) 승인 공문에 최초 결재한 문서가 됐다.

식량안보측면에서 농지전용 허가기준이 강화돼 자칫 청자촌 조성사업이 진행되지 못할 상황이었지만 가까스로 기준강화의 덫에 걸리지 않았다. 전지현 군수의 지혜로운 판단과 리더십이 없었다면 청자촌 조성사업을 실시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청자촌 단지조성 사업은 대구면 사당리 고려청자박물관 앞 부지에서 진행됐다. 무대 및 광장과 도예공방 등이 들어설 계획이었다. 기반조성을 위해 지방채 5억원과 군비 1억원 등 총 6억원의 사업비가 투자돼 1996년 2월 12일부터 8월 10일까지 진행됐다.

이 사업은 민간 도요업체를 집단화시켜 청자산업을 강진군의 핵심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함이었다. 부지 분양은 1996년 12월 20일부터 진행됐다. 관내 8개 업체에 분양이 됐다.

이때 청자축제 특설무대 바로 앞에 청자촌 공동전시판매장도 1998년 8월 신축됐다. 이 곳은 5억5천340만원의 사업비가 투입돼 154평 규모로 2층 콘크리트 한식기와지붕이었다. 지붕은 병영성을 형상화해서 디자인했다. 

청자사업소가 추진중이었던 청자촌 조성사업이 시간이 지나도 진척이 없자 김재홍 군수는 청자촌 조성에 따른 국토이용변경추진과 청자박물관 건립 등 청자와 관련된 분야에 오랜 경험이 풍부하다는 이유를 들어 나를 ‘서무계장 겸 청자촌조성반장’이라는 보직으로 1996년 2월 6일자로 발령냈다.
 
이때 총괄업무는 오진동 전 고려청자박물관장, 토목에는 현 남양주시 윤경배 도시시설관리과장 등 3명을 임명했다.

조성반은 구성후 부지매입에 착수했다. 영농기 이전에 토지매도 승낙서를 징구해야했기에 조성반은 부지 매입에 어려움이 많았다.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토지 소유자는 문전옥답(門前沃畓)이라며 매도에 완강하게 반대했다. 관외 소유자도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있다며 터무니없는 토지대금을 희망하는 바람에 부지 매입에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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