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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균의 ‘추억의 강진극장’] 8. 아! 아! 강진농고 브러스밴드“빰빰 빰빠 붐빠라 붐빠빠, 붐빠빠 붐빠빠 붐빠라 붐빠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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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29  11:2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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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읍내에 활력 불어넣은 강진농고 브라스밴드 

   
1960년대를 전후해 강진농고에서 활약했던 밴드부 학생들의 모습이다. 당시에는 전용 제복이 없었던 듯 일반 교복을 입은 모습이 보인다.  훗날 강진농고 밴드부는 지금의 군악대 못지 않은 제복을 갖추고 강진의 각종 행사에서 스타로 활약했다.
브라스밴드가 강진시가지를 통과할 즈음이면 읍내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웃음을 가득히 머금고 악대의 행렬을 지켜보았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가장 신이 났다.
 
강진농고에서 출발한 밴드는 당시 학생들로서는 소화하기에 어려운 마아치(행진곡)를 연주하면서 지나갔다.

볼거리가 귀하던 시절 브라스밴드는 강진읍민들의 마음을 설레게도 하고, 기쁘게도 했다. 악장(樂長)을 비롯한 대원들은 위아래 하얀 제복을 입었다. 악장을 선두로 해서 3열 종대로 행진했다.

밴드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대원은 악장이다. 악장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에 의해 대열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악장은 대열의 3m 앞에서 지휘봉을 겨드랑에 끼고 행진하다가 곡(曲)을 바꾸려면 호루라기를 분다. 악장은 지휘봉을 공중에다 포물선(抛物線)을 그으면서 떨어지도록 던진다.

   
 
공중에 던져진 지휘봉을 다섯발자국 걸어가서 잡는 것이다. 대단한 연습이 필요한 기술이었다. 지휘봉 손잡이에 무게가 실리기 때문에 악장은 지휘봉을 공중에서 받아 잡는 것이다.

이것을 받아 가슴에 대고 사선(斜線)을 그어 빗겨서 올렸다 내렸다 3회를 반복한 다음, 곡명(曲名), 예컨대 ‘콰이강의 마치’ 또는 ‘스와니강의 추억’을 외친다. 이 때 비로서 모든 악기들이 행진곡을 연주하는 것이다.
 
“빰빰 빰빠 붐빠라 붐빠빠, 붐빠빠 붐빠빠 붐빠라 붐빠빠”, 아이들은 악장이 지휘봉을 공중에 던졌다 받는 모습을 보려고 줄을 지어 따라 다녔다.

당시로는 대단한 구경거리가 아닐 수가 없었다. 같은 곡을 1회 더 연주하려면 왼손을 올려서 검지를 올렸고, 2회 연주는 검지, 중지로 V자 표시를 했다.

   
 
멈출 때는 오른손을 올려서 좌측으로 넘기는 사인을 보내면 모든 악대행렬은 멈추는 것이다(1962년 당시 악장 한성수의 증언). 관악단 연주의 절정은 강진농고 응원가였다.
 
“나가자 씩씩히 강농학도여! 선배얼을 이어서 이 땅 빛내자”를 연주하면서 강진농고 브라스밴드가 시내를 휘젓고 지나갔다. 악대를 앞세우고 학생들은 뒤따라 행진했다.

중앙초등학교 운동장에서는 국경일 행사 뿐 아니라 반공궐기대회가 자주 열렸다. 이 때 연설자는 반드시 효암 차부진(車富鎭)이었다. 당시에는 UN 사무총장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자주 낭독했다.

국경일에는 강진극장에서 브라스밴드가 연주를 맡았다. 단상과 객석이 다 보이는 사이드에 밴드의 자리가 마련되었다.

여기에서 4대 국경일에는 애국가,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노래를 연주했고, 현충일에는 진혼곡(鎭魂曲)도 연주했다. 브라스밴드 연습을 위해서 방학 때는 3주간 잠사(蠶舍)에서 합숙훈련을 했다.

집에서 쌀을 가지고 가면, 학교에서 신풍리 아짐들에게 맡겨서 밥을 해줬고 부식도 학교에서 대주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던 시절에 간식은 빵 종류와 고구마나 개떡 종류였다.

밴드부에 들어간 학생들이 학과공부를 제대로 하기가 어려웠다. 악단 연습에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긴 것이다. 강진농고 씨름, 배구, 육상, 역도, 태권도 선수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아! 그 시절 그러니까 1960년대를 전후해서 강진농고 브라스밴드에 참가했던 인물들은 누구였을까 추억해 본다.

악장은 김재이(잉꼬법랑, 트럼펫), 손광종(연예인), 한성수(구명 和貞, 철강업) 등의 순서로 이어졌다. 대원은 박춘일(광주애향, 트럼펫), 양희장(사업가, 트럼본), 김장숙(교사, 트럼펫), 한성수(코넷), 박상태(법무사, 사이드드럼), 황인기(아시아나 기장, 섹소폰), 김현률(사업가, 엘토), 고형준(사업가, 트럼본), 이철성(공무원, 트럼펫). 김형중(사업가, 헬리콘)이 기억에 남는다. 가끔씩 선배인 김재이와 김길영(트럼펫)이 찾아와서 후배들을 격려하면서 성심껏 가르쳐 주었다. 말하자면 선배의 전수교육(傳受敎育)인 셈이었다. 

당시 강진농고 브라스밴드의 지도교사는 박종갑(서울사대 음악교육과)이었다. 일반음악 교사로서의 소양도 충분했지만, 관악단을 지도한다는 것은 악기에 대해 거의 만능이 아니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전문성을 갖춰야 했다.
 
특히 학생들에게 다정다감했고, 학생들이 실수해도 꾸짖는 법이 없었다. 선한 품성을 가졌고, 인정이 많았다. 얼굴의 광대뼈 아래살이 움푹 들어갔다고 해서 짓궃은 아이들은 ‘홍시’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울지마 톤즈’, 남수단 아이들의 브라스밴드 
 
   
고  이태석 신부가 남수단에서 만들었던 브라스밴드. 후진국 학생들에게 큰 희망을 심어주었다. 강진농고 브라스밴드 역시 어려웠던 시절 강진사람들에게 큰 힘이 됐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브라스밴드가 있다면 남수단 톤즈의 브라스밴드가 아닐까 싶다. 영화 “울지마 톤즈”는 아프리카 남수단의 슈바이처라 불리던 신부 이태석(李泰錫)의 휴먼 다큐멘터리를 담고 있다.

신부 이태석은 17여년 전인 2001년 로마 교황청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남부 수단을 자원해 부임했다. 그는 인제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 생활까지 마친 의사였다. 그랬던 그가 왜 사제가 되어 톤즈로 향했는가?
 
세상의 가장 가난한 곳에서 의술을 펼치고 싶다는 어린시절의 꿈을 포기할 수 없어 뒤늦게 1992년 광주가톨릭대학교에 진학했고, 신부가 되자마자 톤즈로 향했다.

‘톤즈’와 ‘신부 이태석’이 만났다. 톤즈(Tonj)는 남수단 북서부에 위치한 톤즈 주의 주도(州都)이며 인구는 17,340명(2010년 기준)인 소도시이다.

내전은 끝났지만 평화는 오지 않고 여전히 군인들이 점령하고 있는 톤즈. 전쟁과 가난에 찌든 아이들의 마음이 음악으로 치유되기를 바랐던 그가 오래도록 꿈꾸던 일을 실행에 옮겼다.

선택은 ‘학교’였다. 아이들이 학교에 돌아오기 시작했다. 신부 이태석은 그들의 삶 한 가운데 있었다. 35인조 ‘톤즈 브라스 밴드’를 만들었다. 그 모든 악기를 자신이 먼저 스스로 배워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남부 수단의 유명인사가 된 아이들은 정부 행사에도 초청을 받으며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총(銃) 대신 악기를 든 아이들, 브라스 밴드가 만들어낸 희망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아이들의 실력은 일취월장(日就月將)이었다.

이태석 신부는 지난 2010년 1월14일 대장암으로 선종(善終)했다. 모든 것이 메마른 땅 톤즈에서 눈물의 배웅을 받으며 이 세상 마지막 길을 떠난 사람 심부 이태석은 톤즈의 아버지이자, 의사였고, 선생님, 지휘자, 건축가였던 쫄리 신부였다.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사랑으로 길러냈던 톤즈 브라스밴드와 남수단인들과 그를 추모하는 이들에게는 영원한 사랑의 표상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강진농고 브라스밴드 창설배경 
 
강진농고는 일제강점기 1937년 3월 조선의 부호 동은 김충식이 땅과 돈을 기부함으로 시작되었다. 1937년 5월 5일 강진공립농업학교 1학급으로 창설되어 입학식을 갖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초등학교만 나와도 면사무소 촉탁(囑託, 임시직)으로 취업되는 경우가 흔히 있었다. 하물며 농고출신이라면 요즈음의 농대출신 이상의 대우를 받았던 것이다.

개교초기에는 인근 장흥, 해남, 영암, 완도에서까지 유학을 와서 공부했던 것이다. 일제시대에 전라남도에 농업계열의 학교로는 광주농고(1909년 광주시립측량학교개교), 순천농고(1935년 순천공립농업학교 개교), 강진농고(1937년 강진공립농업학교 개교)가 있었고, 전라북도에는 이리농림고(1922년 개교)가 알려져 있다.

강진농고는 어떻게 이러한 고가(高價)의 악기들을 구입했을까? 악기는 동은 김충식이 기부했다(독봉 이선웅 증언). 브라스밴드(brass band)란 관악단(管樂團)을 중심으로 한 악단을 말한다.

특히 관악기(금관악기와 목관악기)를 중심으로 한 것을 브라스밴드이다. 관악기란 입으로 불어서 소리를 내는 악기이다. 보통은 여기에 타악기(打樂器)를 포함시킨 것을 브라스밴드라고 부른다. 그래서 브라스밴드와 관악단은 같은 말이다.  

이제 강진농고는 전남생명과학고로 개칭되어 개교 82년이 지나갔다. 개교 80주년 행사에서 교장 문제윤은 축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2011년 전국 최초의 친환경농업분야 마이스터고등학교로 개교를 하여 창의성과 글로벌 마인드를 가진 친환경농업분야의 영마이스터를 양성하는 학교로 발전하였다. 오늘의 시작이 앞으로 90년, 100년의 역사를 준비하는 의미있는 학교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아직도 전남생명과학고의 브라스밴드는 선배의 얼을 이어서 존속되고 있다. 지도교사 김경태(金景泰)는 브라스밴드가 있는 학교에서만 음악교사롤 근무한 관악단 전문가였다.
 
학교에 부임하니 관악단에 관한 역사는 찾을 길이 없었다. 목포상고에 재직시에는 1937년 구라시다 선생이 악단을 창립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술회(述懷)했다. 현재 15명 정도의 밴드대원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음악도 좋아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꿈나무로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출향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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