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읍 남도탕 마창수 이발사

20여년간 어르신 찾아 무료 이발 봉사

마창수 이발사가 남도탕 남탕에 마련돼 있는 이발소에서 손님의 머리를 자르고 있다. 이 손님도 세린장에서부터 인연을 맺어온 단골고객이다.
● 20대 초반 먹고살기 위해 이발기술 배워
추석을 2주가량 앞둔 지난 26일 남도탕내 이발소에는 목욕을 하러 온 한 남성이 머리를 다듬고 있었다. 이 곳에서 일하고 있는 마창수(63) 이발사는 경력만 40년의 베테랑 이발사이다.

그는 강진읍에서만 20년이 넘게 이발사로 활동해왔기에 단골고객도 상당히 많다. 그가 일하는 목욕탕을 옮기면 그를 따라서 목욕탕도 바꿀 정도이다.

단골 고객이 많은 베테렝 이발사외에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에게는 ‘가위를 든 천사’라고 불릴 정도로 반가운 존재이다. 이유는 그가 정기적으로 어르신들을 위해 무료 이발봉사를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로 63세인 그가 처음 이발사의 길을 걷게 된 것은 20대 초반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그는 군동 평리에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집안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기술을 배워야 평생 먹고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선택한 것이 바로 이발사였다.

● 인구감소로 이발소를 강진읍으로 이전
마창수 이발사가 강진군노인요양원을 찾아 무료로 이발 봉사를 하고 있다.
그는 군동면소재지내에 있었던 한 이발소에서 20대 초반부터 일을 배운다는 생각으로 돈을 받지 않고 일을 돕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위를 만져볼 수 없었고 머리감기와 면도하는 방법을 어깨너머로 배우기 시작했다. 이렇게 3~4년정도 배우고난 후에야 가위를 잡을 수 있었다.
 
이때부터 간단히 머리를 자르는 커팅부터 배웠고 약 15만원의 월급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군동면의 이발소에서 7~8년정도 일을 하다가 면소재지내에 이발소를 차려 독립을 하게 됐다.

군동면에서 이발소를 해오다가 갈수록 급격히 줄어가는 인구에 손님들도 점점 줄어들었다. 이에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에 1998년 강진읍으로 들어오게 됐다.

마창수 이발사에게 머리를 자르기 위해 어르신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강진읍에서 이발소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 그는 따로 가게를 내서 이발소를 운영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목욕탕에서 이발사로 일하게 됐다.

가장 먼저 제일장에서 2년정도 일했고 이후 세린목욕탕에서 19년정도 일했다. 그리고 올해 2월부터는 남도장으로 자리를 옮겨 지금까지 손님들의 머리를 자르고 있다.

● 인구감소로 이발소를 강진읍으로 이전
이런 그가 봉사의 길을 시작한 것은 강진읍으로 자리를 옮긴 직후였다. 제일탕에서 이발소를 하고 있는 데 어느 날 자주 찾아오던 단골고객중 한명이 자신을 찾아와 한가지 부탁을 했다.

그 단골고객은 대구 남호마을의 노인회장이었는데 나에게 마을에 할머니와 거주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1명이 살고 있는데 눈이 보이지 않아 밖으로 나올수 없다고 하면서 찾아가서 이발좀 해달라는 것이었다.
 
딱한 사정을 전해들은 마 이발사는 시각장애인을 돕고 싶다는 생각에 오토바이를 타고 대구 남호마을을 찾아가 이발을 해주었고 그렇게 인연이 시작돼 1년정도 정기적으로 집을 찾아가 이발을 해주었다. 1년후 그는 할머니가 몸이 좋지 않으면서 요양시설로 들어가게 되면서 인연을 끝이 났다.

김상현 재경군동면향우회장과 기념촬영을 했다.
이 일을 계기로 단골손님들이 자신의 마을에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소개해주면서 이발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다는 것이 마음이 따뜻해지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그는 정기적으로 봉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초창기에는 한달에 2번 쉬는 날을 이용해 자비원과 노인요양원, 성전의 영명학교(현재 덕수학교), 아트홀 복지동의 요양시설 등을 정기적으로 찾아가 이발 봉사를 하기 시작했다.

이발소의 특성상 설과 추석 명절에도 단골손님들을 받느라 쉬지 못하고 한달에 2번 둘째주와 넷째주 화요일만 일을 쉬고 있다.

그마저도 쉬는 날에는 이발봉사를 하러가야하는 강행군을 벌써 20년째 해오고 있는 것이다. 현재에도 강진읍 교촌리 노인전문요양원을 매달 찾아가며 무료이발 봉사를 하고 있다.

● 갈수록 경영 어려움 겪어, 행정기관 관심 필요
마창수 이발사가 요양원에서 할머니 머리를 손질하고 있다.
마창수 이발사는 “일을 하면서 쉬는 날 봉사하는 일이 체력적으로도 쉽지 않지만 매번 찾아갈때마다 반가워하는 어르신들의 얼굴을 보면 그만둘 수가 없다”며 “이발하고 나서 깔끔해져 미소짓는 어르신들을 보면 봉사의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그가 한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갈수록 열악해져가는 이발소 업체를 위해 관공서에서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해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매달 무료 봉사를 하고 있다.
미용실이 늘어나면서 젊은 남성들은 대부분 미용실을 이용하는 바람에 이발소를 이용하는 손님들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마창수 이발사는 “이발소는 50대이상 남자들에게는 추억이 담겨있는 곳으로 인구감소와 미용실과 경쟁에서 밀려나면서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며 “행정기관에서 일정부분 시설개선을 할수 있도록 지원해 남성들의 사랑방인 이발소가 사라지지 않게 도와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발소 상징 3색등의 의미는? 
모든 이발소 문에는 적색, 백색, 청색 등 3가지 색깔이 돌아가는 등이 설치돼 있다. 이 등은 보면 누구나 그곳이 이발소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3가지 색상의 등이 이발소의 상징이 된 이유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요즘 이발소는 남자들이 머리를 자르고 염색을 하거나 면도를 하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중세 유럽에서는 이발소가 부러진 뼈나 탈골, 수술 등 긴급한 환자를 치료하는 일을 겸했다.
 
1540년 프랑스 파리의 메야나킬이라는 이발사 겸 외과의사가 사람들의 눈에 잘 띄도록 3가지 색깔의 오늘날 등을 고안해냈고 처음 설치했다고 알려져 있다.

적색은 동맥, 청색은 정맥, 백색은 붕대를 의미한다. 이때부터 시작된 3색등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