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서울 명동거리에 한때 일본 상품과 여행 거부내용이 담긴 배너기가 내걸렸다. 태극기와 나란히 등장한 배너기에 새겨진 ‘NO JAPAN’ 영자문중 O부분을 빨강색으로 덧칠해 일장기처럼 보이게 했다.

그 아래에 가로로 ‘boycott japan’이라고 영문표기하고 이어 ‘가지않습니다’ ‘사지않습니다’라는 구호를 한글로 표기했다. 이를 본 일본인들이라면 다시는 오고싶지 않고 명동관광 기념 선물 구매심리는 얼어붙었을 것이다. 명동은 유행문화의 선진지이며 상권과 금융 중심지다.
 
민주성역으로서 세계적 명성을 안고 있는 한국가톨릭의 총본산인 명동성당이 자리한 곳이다. 외국인들이 반드시 들르고 싶어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자리잡았다. 그곳에 1천여개의 배너기를 내걸 작정이었다. 일반인의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5시간만에  떼어냈다.

민주당소속 중구청장은 역설했다. “왜 구청은 나서면 안 되냐. 왜 명동이면 안 되냐. 대통령조차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고, 국회에서는 지소미아 파기가 거론되고 있다”고 썼다. 이미  150여개의 지방자치단체가 이 싸움을 함께 하고 있다고 페이스북에 적었다. 

“중구는 서울의 중심이자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오가는 지역으로 전 세계에 일본의 부당함과 함께 이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데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기초단체장에 대한 정당 공천제가 없다면 이같은 보여주기식 정치이벤트는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공감을 확장시킨다.

국가 간 분쟁해결을 위해 대통령과 국회가 전면에 나서는 건  당연한 책무다. 그러한 책무수행의 대원칙은 국민과 지자체에 득이 되어야 하고 아울러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한다는 것이다.
 
중구청의 반일항의 방식은 역할범주를 넘어섰고 국가와 지자체에 결코 도움이 되지않는다. 지극히 선동적이다. 국민의 자발적 순수성을 훼손시키고 일본인들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부정적 이미지가 물씬풍긴다.

일본에서도 아베의 경제보복을 비난하는 여론이 상당한 상황에서 일본인 전체를 문제삼는 표현은 옳지 않다.

중구청장이 주장한 것처럼 그런 배너기를 내걸면 이를 본 외국인들이 일본의 부당함을 알게되고 한국인의 불굴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건가. ‘노재팬’과 ‘노아베’ 개념을 구별하지 못하고 일본인 전체를 타겟으로하는 무모함이 개탄스럽다.
 
반일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대다수 지자체는 중구청처럼 하지 않는다. 일본과의 교류계획을 취소하거나 약식시위선에서 중앙정부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런 한국 지자체에 대해 일본파트너는 충분히 이해한다며 되레 위로한다고 한다. 전국 지자체중 최초로  친일잔재물에 대한 단죄문 건립에 나선 광주광역시는 반일 선동적 구호외침이나 불매운동집회는 갖지 않았다.
 
다른 곳에선 가벼운 퍼포먼스를 벌이거나 소녀상 앞에서 일본규탄 대회를 갖는 정도에 그쳤다. 평소에도 있을법한 것이어서 현사태에 의미있는 영향을 미치지않는 수준인 것이다.

민주당소속 제천시장은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출품된 일본영화 7편에 대해 상영을 강행했다. 시의회가 취소를 요구했으나 굴하지 않았다.

오는 30일 부산 기장군에서 개최되는 세계청소년야구대회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게양된 일장기를 주최 측이 철거했다가 군수의 지시로 다시 내걸렸다.

불매와 관광거부운동으로 일본 기업과 관광지는 적지 않은 피해를 입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아베에게 원망이 돌아가 그의 정치적 타격도 피할 수 없다. 글로벌 권력자라도 국제 분업과 자유무역에 의해 구축된 세계경제질서를 무한정 망가뜨리지 못한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강제징용문제를 풀려면 양국의 기업과 한국이 참여하는 방식을 적용한 것이라 한다. 때문에 공권력이 개입한 반일선동대응은 문제를 더 꼬이게 한다.

정부는 일본상품에 대해서도 일본처럼 수출규제를 가하겠다고 선언했다. 여권에서는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교류협정) 연장불허나, 올림픽불참 검토등 강경일변 기류가 넘쳐난다. 한국의 양보가 전제되는 해법에 배치되는 난기류다. 

이기기 위한 경제전쟁 노정에서 이념편향성과 정략개입 논란이 끼어들어 내부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과 맞물려 친북, 항일, 관제민족주의 확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한층 커졌다. 여권과 열렬지지층의 일본강경대응은 정치적 복선이 깔려있다는 지적도 나돈다.

공로명 전 외무장관은 문재인 정권에 대해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자작극처럼 보인다. 일본이 갑작스럽게 이렇게 나오는 것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감정을 자제하고 실리외교에 초점을 맞춘 열린 자세가 최우선 조건임을 깨닫고 실천에 옮겨야 할 때다.

권력을 지키기 위해 진영논리체계에 갇혀있는 한 문제해결은 더디고 멀어진다. 안보와 경제가 무너져 내린다는 국민의 걱정과 분노의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나 있는지 답답하다. 도드라진 이념편향성과 어리석은 ‘노재팬’ 외침이 밤낮으로 이어지는 광염(狂炎)만큼이나 불쾌지수를 높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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