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동안 밤낮 세워가며 국토이용계획변경안 완성했다

대구도요지 국민관광지 조성사업 공사는 2001년 본격 시작됐다. 사업 부지는 대구면 사당리 고려청자박물관 옆으로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지상2층 360평 규모 도예문화원과 중앙광장, 상징탑, 가마주제공원, 민속놀이마당, 주차장 등의 시설이 들어설 계획이었다.

이때 책정된 사업비는 79억원이었는데 김대중 국민의 정부 출범이후 남해안 지역을 국제적 수준의 대표적인 광역거점으로 조성하기 위해 전남, 경남, 부산 등 23개 시군에서 64개 사업을 추진하는 남해안관광벨트사업에 선정돼 사업이 추진된 것이었다.

이때 강진군의 남해안관광벨트사업은 2개사업 123억원이었다. 2개중 하나는 대구도요지 국민관광지 조성사업 79억원이었고 다산수련원 건립 사업 44억이었다.

다산수련원은 8,245㎡ 부지에 연건평 2,985㎡이며 지상 1층에 강의실, 인터넷 지원실이 들어섰고 2층과 3층에는 숙박시설 31실이 들어섰다.

이 시설은 청소년과 공무원, 기업체 임직원 등을 대상으로 교육하기 위한 것이었다. 개관은 2005년 10월 17일이었다. 처음에는 군에서 직영했으나 2007년 광주YMCA에 민간위탁을 맡겨 2013년까지 운영해오다가 현재는 다시 군에서 직영한다.

최근 전라남도공무원교육원 유치에 따른 다산수련원 매각으로 지난해 7월 1일 폐쇄후 철거됐다. 현재 강진읍 보은산 아래에 수련원을 새롭게 신축하고 있다.

강진군에서는 청자재현 사업 이후 개인요 업체들의 집단화를 통해 지역 청자산업 육성을 목표로 대구면 사당리 당전마을 일원에 청자촌을 조성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이때 사업 부지 규모는 29,800㎡(9,023㎡)였다. 강진의 청자산업은 1977년 청자재현사업추진위원회가 발족되면서 시작됐다.

1984년 1월 7일 청자사업소가 내무부(현 행정안전부)로부터 직제 승인을 받아 전국 최초로 관요(官窯)로 재현사업을 시작했다.

이때 개인요업도 대구 미산과 칠량 영동리, 강진읍 등에서 가내 수공업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관요는 개인요와 차별성을 두기 위해 개인요를 배제한 채 관요의 재현작품에 초첨을 두며 전국에 홍보를 집중했다.
 
반면 개인요는 우수한 작품에도 관요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시장 판로개척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1990년대 초 관요와 개인요가 상생 발전해 지역경제의 한 축을 이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때 1995년 1월 1일자로 부임한 전지현 관선군수는 민선군수 시대를 6개월 앞두고 부임했다. 전 군수는 부임이후 청자사업소 부근에 부지를 조성해 관내 개인요 도예가에게 분양하고 청자산업 육성을 도모 한다는 ‘청자촌’ 조성 계획을 3월에 발표했다.

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농업진흥지역이었던 사업부지를 준도시지역으로 변경을 해야만 했다. 전 군수는 도시계장을 맡고 있는 나에게는 국토이용계획 변경을, 김병기 농어촌개발계장에게는 농지전용협의를 3개월정도 남은 민선군수 취임 전까지 완료할 것을 지시했다.
 
이때까지 완료하지 못할 경우 책임을 묻겠다는 엄포도 놓았다. 3개월안에 국토이용계획 변경을 완료하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했다.
 
나는 변경에 따른 청자촌조성계획안 용역을 위해 전남소재 D업체에 1개월 기한으로 5천만원에 과업을 수행할 것을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시간과 비용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이때 나에게 남은 방법은 몸으로 때우는 수 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현재 투자유치팀장인 강춘혁 주무관과 컴퓨터 타이핑을 맡았던 서인순씨과 함께 자체TF팀을 구성했다.

나와 팀원들은 용역계획 수립을 위한 기존의 수많은 용역결과보고서를 수집해 이를 토대로 보름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100쪽에 이르는 방대한 국토이용계획변경(안)을 작성해냈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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