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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묻지마라 갑자생”차용수/재경 강진군향우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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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08  11: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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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갑자년에 태어난 사람을 역사상 가장 운이 나쁘고 팔자가 사납다고 하여 생긴말이 ‘묻지마라 갑자생’이다. 일제 강점기 한반도에서 남·녀 불문하고 가장 많이 끌려가 목숨을 잃고 상상을 초월한 고초를 겪었던 세대이다.

1938년 4월 1일 일본이 조선, 대만, 화태(사할린) 포함한 국가 총동원령을 내려 우리 국민을 군인으로(징병), 노동자로(징용), 위안부로 끌고가서 자신들의 전쟁목적에 이용하고 우리의 재산을 강탈하여 전쟁 수행에 썼던 것인데 1924년 1월생인 저희 아버지도 징용을 피할 수 없었다고 한다.

1940년 어느날 우리 강진군에서 31명이 할당(징용)되어 부산 인근에서 6개월간 혹독한 훈련을 마치고 일본 시모노세키, 홍콩을 경유 한달간의 항해 끝에 지금의 호치민(구 사이공)에 상륙하여 캄보디아를 거쳐 인도 침공을 위하여 건설 중인 태면철도(태국에서 미얀마까지 약 450km)의 험난한 현장인 태국의 포로 감시병으로 배치를 받았으며 그 곳은 방콕에서 약 50km 떨어진 포로수용소(방콕과 콰이강의 다리 중간지대)로 주로 영국군. 네델란드군과 일부 미군 포로들을 수용하고 있었으며 종전 후 영화화 한 ‘콰이강의 다리’로 유명 해지기도 한 곳이다.

이곳에서 약 4년간 포로 감시원 생활을 하다가 8.15 해방을 맞이하였을 때 중경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이 중국어, 조선어, 태국어, 일본어(4개국어)로 라디오 방송을 통하여 우리 조선동포들은 일본국에 의하여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이므로 연합국 및 현지인들이 우리 조선동포들을 무사히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는 라디오 방송이 하루에도 수차례 약 15일정도 계속되었으며 연합군의 포로들의 증언과 엄격한 심사를 거쳤다.

우리 강진군 출신은 겨우 두 사람만 살아서 1945년 11월 미군함을 타고 부산 앞 바다에 도착 하였으나 3년이 넘도록 생사를 알지 못한 가족들의 심정을 외면한 채 수인성 전염병인 호열자(호랑이가 살점을 물어 찢어내는 것과 같은 고통 이라는 뜻) 즉 지금의 콜레라가 만연되어 한달가량 하선을 못하고 겨우 인천항 검역소을 거쳐 고향 강진으로 돌아 올수 있었다고 한다.

해방 후 20년이 지난 1965년 6월 22일 한일 협정으로 재산청구권 무상 3억달러, 정부간의 차관 2억달러, 민간 상업차관 3억달러로 사과 한마디 없이 한일 기본조약이 체결 되었다.

일제강점기 1909년부터 1945년까지 36년간 조선에서 가져간 금 249톤, 은 67톤, 체신국 저금, 보험금, 연금, 유가증권을 포함하고 징병, 징용된 한국인의 급료, 수당, 보상금등 법적근거를 가진 청구권의 대가였다.

2005년 공개된 한일협정 전문을 보면 일본은 징병, 징용등 개인 피해자들에게 직접 개별 보상을 하겠다고 제안 했지만 한국정부의 완강한 주장으로 한국정부가 개별 지급 하겠다고 하고 저금, 보험금, 각종 유가증권은 10년 후인 1975년에서 1977년 기간에 처리 하였으며 징병, 징용자의 공탁금은 해방 60년 한일협정 40년 후에 현금으로 지급 하게 되어 얼마동안의 보상인지는 알 수 없으나 2005년 8월에 저희 아버지 미수 급여 일본화 600엔(한화 120만원/ 특별환율 2,000원) 을 받았는데 한일협정 때부터 물가변동을 감안 하면 40년 후의 실질가치는 쌀값으로 계산해도 어림잡아 1.25%(1/80)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일괄 수령하여 포스코등 경제개발 자금으로 사용하였고 항간에는 민주공화당 창당 자금으로도 사용되었단 말도 돌아다니고 어떤 권력 실세는 상업차관시 떡고물도 챙겼다고 한다. 이것이 아버지의 목숨을 건 3년간 대가였다.

그래도 살아 돌아 왔으니 다행이다 라고 할 수 있을런지 모르나 일제 강점기에도, 대한민국 건국 후에도, 경제가 발전된 후에도 피해자는 역시 일반국민 약자였다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만고불변의 진리인 것일까?

2005년 필자는 아버지의 급료와 전쟁수당 통지를 받고 서울시 중구 다동에 소재한 대일청구권민관공동위원회 사무실을 찾아가서 내용을 확인한 바, 일본국이 공탁한 600엔이 전부이니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근거를 찾아 소송하라는 것이었다.
 
해방된 지 60년이나 흘렀고 저희 아버지 돌아 가신지 16년이 지나 징용당시를 증언 해 주실 사람과 증거(물증)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울며 겨자 먹기로 배상도 아닌 보상은 시늉만 내고 말았다.

그나마 당시 노무현 정부에서 이해찬위원장(국무총리), 문재인 민정수석(위원)으로 참여 피해자 72,631명에 6,184억원을 지급하고 마무리한 것으로 발표하였다.

또 지구상에 5,000만명 이상 인구에 3만달러 소득을 가진 나라는 10개국 정도 밖에 없을 정도인 대한민국이 2015년도 졸속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의견수렴 없이 덜컥 돈 100억원에 사과 한마디 못 듣고 합의하여 뒷감당을 못하고 있는 작금의 실태는 부전여전인가 협정 당시 조금 더 일찍 세심한 징병, 징용, 위안부의 피해에 대하여 배려하고 한번 쯤 더 신중한 결정 이었으면 오늘의 한일관계(가해자와 피해자 역전)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현재 한·일 관계를 전후 최악의 상태로 몰고 온 강제징용(위안부포함)배상문제는 한국이 경제발전에 자금이 필요한다는 계산과 조급함 과거사를 헐값으로 청산하고 싶은 일본 정부의 전략이 맞아떨어져 오늘날 이런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물론 Hind-side Effect (과거의 일을 지금 시점의 관점에서 판단 하는 것)를 감안했다 하더라도 배상범위, 지급방법, 지급시기 등은 어떠한 말로도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은 틀림이 없다.

세계 역사상 전쟁을 하면서 위안부를 동행한 유일무이한 일본군의 만행을, 증언, 사진(동영상) 등 무수히 많음에도 인정치 않고 부인하는 일본 지도자들은 양심도 없는 철면피들인가? 이러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맺힌 절규는 7,500만 우리 민족이 짊어진 숙명인가? 언제쯤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함께 위안부 할머니들이 한을 늦게라도 풀 수 있을까? 그러면 2006년 제90대 2012년부터 제96,97,98대 총리에 취임한 강경보수파 아베는 누구인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을 때 일본군 8,000명을 이끌고 경복궁을 점령한 오시마 요시사마가 외고조부이고 패전 이후에도 "비록 전쟁에서 패전했지만 조선이 승리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으며 1944년 7월 24일 조선 제9대 마지막 총독으로 부임한 아베 노부유키는 그의 할아버지이며 만주국 괴뢰정부를 만드는데 일등공신이고 A급 전범이며 아베가 가장 존경 한다는 전 내각 총리대신 기시 노부스케가 외할아버지이다. 핏줄은 속일 수 없는 것 일까?

고조부 부터 전범이며 한국 침략 역사의 주인공 가문 아베의 입장을 대변하며 깐죽거리는 정치인들은 내년에는 우리 사회에서 영원히 추방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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