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중반 병영의 목천네가 지금의 수인관 자리에서 연탄돼지불고기를 처음 선보였을 때 병영사람들은 냄새에 먼저 반했다. 이글이글한 연탄불이 메케한 가스를 품으며 양념에 숙성된 돼지고기를 지글지글 익혔다.

손님들이 줄을 섰다. 얼마 후 목천네가 며느리 신화자씨를 맞이하면서 기술진이 보강됐다. 목천네라는 택호는 남편 이름이 김목천 선생이었기 때문이다.

수인관 인근에 면단위에서는 드물게 도축장이 있었다. 목천네는 도축장에서 막 잡은 돼지의 가장 좋은 부위만을 불고기 재료로 골랐다. 다음으로 고기에 양념을 해서 며칠동안 숙성시켰다. 그것을 80~90%만 익힌 맛이 절묘했다.
 
60년대 중반 병영면사무소에서 새내기 공무원생활을 했던 김갑현 전 병영면장은 퇴근 후 수인관에서 돼지불고기 안주에 소주 한잔 들이키던 시절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당시 수인관은 인근 학교 선생님들이 하숙을 많이 했다. 수인관은 교사들의 점심을 도시락으로 준비했다. 그 도시락을 학생들이 와서 가져갔다.
 
도시락 반찬으로 연탄 돼지불고기가 단골처럼 들어갔는데, 그때 도시락을 가지러 다녔던 학생들은 보자기에서 술술 풍겨나오던 연탄 돼지불고기 냄새를 또렷히 기억한다.

5년 정도 명성을 떨치던 수인관 연탄돼지불고기가 새로운 전기를 맞은 것은 1970년대 초다. 목천네가 수인관을 팔고 인근 설성주점 자리로 이사를 했다.

당시 설성주점은 면장에서 군의원까지 군수빼고 안해 본 것이 없다는 김진호 선생의 부인 길복순씨가 바깥일에만 신경쓰는 남편을 대신해 집안의 생계를 꾸리던 곳이었다.

목천네 며느리 신화자씨와 설성주점 길 사장이 의기투합했다. 설성주점을 설성식당으로 상호를 바꾸고 본격적인 백반영업을 시작했다. 

이후 자동차가 보급되면서  손님들이 많아졌다. 80년대 초반 관광버스 시대가 열리면서 손님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90년대 말 허경만 도지사는 설성식당 불고기맛에 푹 빠져 인근 지역을 방문 할 때면 반드시 병영에 들러 점심을 먹고 가곤 했다.

도청 간부회의에서도 설성식당 돼지불고기가 등장했다. 신화자-길복순 멤버는 10여년전 은퇴해 지금은 다른 사람이 설성식당의 명맥을 잇고 있다.

병영에 돼지불고기 명품거리가 조성된다고 한다. 목천네 돼지불고기가 다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는 모습이다. 불고기는 뭐니뭐니 해도 원재료가 중요하다.

가장 좋은 돼지고기 부위는 아니더라도 꼭 국산 돼지고기를 사용하는 명품거리가 됐으면 한다. 목천네 돼지불고기의 명맥을 잇는 명품거리가 되고자 한다면 꼭 그래야 한다.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