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억 대규모 국비 투입돼 고려청자박물관 건립됐다

1965년 이용희 청자장의 자택 발굴을 시작으로 청자촌 일대 발굴이 본격 시작됐다. 이 발굴로 청자기와 파편을 비롯한 수많은 청자편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후 1977년 강진군에서 명맥이 끊어졌던 고려청자 재현을 성공했다. 1986년에는 청자사업소가 설립되고 청자전시관도 건립됐다. 전시관은 현재 박물관 부지에 38평 규모로 건립됐다.
 
전시관에는 출토품인 고려청자 도편(陶片) 비교 전시와 고려청자 재현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공간이 부족해 전시관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사람들이 드나들기에도 불편했다.

특히 1980년대 용운제 축조로 다른 수몰지역에서 발굴하여 임시 보관중이던 용운리 10-4호 청자가마터의 전시공간이 필요했다.

또 1991년부터 1992년까지 사적 제68호 대구면도요지(1939년 국가사적지로 지정) 188기의 구 요지 지표조사를 강진군과 해강도자미술관이 시행하여 요지별로 수집된 3만여점의 청자 도편들을 영구 보관할 수 있는 장소가 없어 공간 확보가 절실해졌다.

이에 군에서는 전시공간 확보를 위해 고려상감청자 발상지로서의 위상에 맞는 국내 유일의 ‘고려청자박물관’ 건립이 절실하다는 취지로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에 국비 지원 요청해 승인을 받았다.

당시 고려청자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2층 규모로 65억원 사업비가 투입되기로 계획됐다. 그중에서 국비가 45억5천, 도비와 군비는 각각 9억7천500만원이었다.
 
이렇게 1991년 12월 30일 공사를 시작해 1997년 6월에 완공됐다. 당시 국비 45억원은 엄청난 금액으로 그만큼 강진의 청자가 전국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평가를 받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업비이다.

공사 기간을 살펴보면 무려 4년 6개월 정도가 소요됐다. 일반적인 공사에 비해 많은 기간이 소요된 것이다. 1991년 대구면도요지 전시관건립 총공사비 33억원을 예정하고 문화재관리국으로부터 1차 공사비로 국비와 도‧군비를 포함해 5억6천만원 확보했다.

하지만 이후 문화재관리국에서는 전시관의 규모와 사업비가 너무 크다고 의견을 바꾸면서 공사가 연말까지 착수를 하지 못하고 난항을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강진군의 의지대로 시행하기로 하고 1991년 마지막날 발주를 하게 된 것이었다. 명칭은 당시 사적68호 강진 대구면도요지의 고려청자 전시를 목적으로 건립한다는 이유를 들어 강진청자자료전시관으로 결정돼 사업을 시행했다. 이때 정부에서는 박물관 명칭을 사용을 할 수 없다는 방침에 전시관으로 명칭이 바뀌어 시행된 것이다.

박물관 공사는 매년 국비에 맞춰 사업을 시행함에 따라 진척이 늦어졌다. 건축공사와 함께 경내 경관사업을 시행하는 대단위 문화재 사업인 탓에 매년 국비 지원액이 적어 6년 여간 사업을 어렵게 시행한 끝에 완공됐다.

박물관 건립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몇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설립과정에서 처음에는 문화재전문가와 사전 협의를 거쳐 박물관 1층 로비 동편에 ‘용운리 10-4호’ 청자가마를 전시하기로 설계를 끝내고 문화재관리국의 승인을 받아 건축을 시작했다.

하지만 최종 전시계획에서 로비는 인공적인 냉‧온방이 가동이 될 경우 가마가 훼손될 우려가 높다며 외부에 복원해야 한다는 문화재 전문위원들의 의견이 있어 강진군과 의견이 상충됐다. 결국 문화재 전문위원들의 의견을 따라 외부에 복원됐다.

건축물은 활용계획에 따라 설계되고, 시공 뒤에도 당초계획대로 공간을 배치해야 한다. 당초부터 가마를 외부에 복원계획을 세우고 설계했더라면 1층 로비공간을 다른 용도로 활용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정리=오기안 기자>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