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곤/취재부장

“신문에 (얼굴)나오는 것이 이제는 조심스럽네...”

지난 5일 읍 남포마을회관에서 이영식(79)어르신과 ‘남포 천제(天祭)’에 관해 인터뷰를 끝내고 사진기를 막 꺼내려던 순간이었다. 어르신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귓등을 때렸다.

신문 지면에 글만 싣고 자신의 사진은 뺐으면 어쩌겠냐는 것이었다. 잔기침을 몇 번이나 하고 조심스레 말문을 열던 어르신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혹감이 앞섰다. 지면의 특성상 ‘얼굴’을 뺀 채로 기사를 실을 수는 없었다. 한 시간을 넘게 진행한 인터뷰가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이유를 여쭤봤다. 뜻밖의 대답이 들려왔다. 사람들이 천제(天祭)의 보존 가치를 한낱 늙은이의 고집으로 받아들이진 않을까하는 걱정 때문이라는 것이다.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가치가 그저 낡은 것이 되어버린 현실에 지난 40년의 명맥을 이어온 이영식 어르신조차 이제는 지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력을 다해 옛 전통을 지켜가는 주민들의 모습 속에는 강한 애향정신과 애족정신이 배어 있다. 수많은 시행 착오와 희생,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위대한 유산. 그러므로 전통은 지켜야 할 질서가 되고 본받아 마땅한 미덕으로 자리 잡는다.

그러나 대부분 고령이여서 앞으로 10여 년이 지나면 그러한 전통들이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남포마을의 ‘천제(天祭)’가 그렇다.

마을의 전통문화를 제대로 전승하기 어려운 현실이 서글프기까지 하다. 그 불씨가 언제 어떻게 꺼질지 모를 일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의 문화가 사라지고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어떻게 해서든 그 명맥을 유지해야 하는 전통이 있는 법이다. 때문에 관습이 억압으로 작용해선 안 되고 어르신들의 경험의 목소리가 고집의 잔소리로 둔갑해서는 안 될 일이다.

‘남포 천제’는 남포마을 주민들의 바다 의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문화이자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강진의 해양문화를 보여주는 대보름 행사다.
 
이런 문화의식은 강진의 자산으로서 후손들에게 대대로 물려줄 만한 일이다. 몇몇 어르신들이 사력을 다해 명맥을 잇고 있으나 젊은 사람들이 없다. 그래서 어르신들은 몇 년이 지나면 누가 이 일을 해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다.  

남포 천제는 강진군이 정책적으로 보존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냥 사라지기에 너무 아까운 강진의 전통이다. 더 이상 말과 글로 할 때가 아니다. 당장이라도 보존위원회를 만들어 나서는 게 문화를 아끼는 강진군민이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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