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가치 살아 있는 곳

강진읍 영파리 차경동에 있는 금강사의 모습이다. 임진왜란때 공이 많은 충무공 이순신과 현무공 김억추의 공덕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되었다.1800년 군동면 풍동리에 지은 것을 1946년에 지역유림들과 청주김씨 후손들이 지금의 자리인 강진읍 영파리에 건물을 복원하였다. 주변 소나무숲의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어 사당의 의미와 함께 문화재적 가치가 빼어난 곳이다.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총 9곳이 됐다고 한다. 유네스코가 서원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하며 “오늘날까지 교육과 사회적 관습형태로 지속되고 있는 한국의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의 증거이자 중국의 성리학이 한국의 여건에 맞게 변화하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인정된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사학의 공간과 선열에 대한 존경의 공간이 어우러진 문화유산은 한국의 서원밖에 없다. 이번에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라고 평가했다.(중앙일보 2019년 7월 8일자 참조) 

강진읍 교촌리에 있는 남강서원 입구에 세워져 있는 건물의 모습이다. 집의문이라는 현판이 특이하다. 의로운 뜻을 모은 곳이라는 의미인듯 하다. 각 서원과 원사에는 이렇듯 그 곳에서 모시는 성현들의 독특한 철학이 담겨 있다.
서원은 한때(1864년,고종 1) 흥선대의원군에 의해 철폐의 길을 걸었던 때도 있었다. 혈연·지연 관계나 학벌·사제 당파의 온상으로 치부됐다. 흥선대원군이 칼을 빼들었다. 당시 전국에 650개나 있었던 서원 중 소수서원·도산서원·도동서원 등 괜찮은 서원 47개만 남았다고 한다.(한민족 백과사전 참조)

그때 전남쪽 서원은 많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이번에 세계유산에 등재된 9곳의 서원 중 경상도쪽 서원이 6곳을 차지하고 있다. 전남은 장성의 필암서원 딱 한 곳이 포함돼 있고, 나머지는 충청도와 전라북도에 한 개씩이 있다. 경북 안동이나 영주에 있는 서원에 가보면 그 규모나 고풍스러움, 잘 가꿔진 정원 등이 마치 통일신라시대나 고려때 지어진 고찰같은 웅장함을 느끼게 한다. 규모도 크지만 그만큼 관리를 잘 해왔고 활용도 제대로 해왔다는 증거다.  

아무튼 우리는 이번에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으로 보면서 조선시대 유적도 세계적인 유산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세계유산이라면 불교유산(지난해 인근 해남의 대흥사, 영주 부석사등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서봉서원이 강진의 최초

우리 강진에도 서원이 있다. 그 역사가 아주 깊다.(김덕진, 손에잡히는 강진역사 참조) 모시는 위패의 인물에 따라 독특한 철학과 전통이 숨쉬는 곳이다. 강진 최초의 서원은 1590년(선조 23년)에 건립된 서봉서원(瑞峯書院)이다. 서봉서원은 강진읍 서산리 월곡마을에 이후백을 배향하기 위해 창건되었다. 아깝게도 대원군의 훼철령으로 철거되고 말았는데 이후 유림들이 이후백의 외가 마을인 작천면 박산으로 옮겨 복설하고서 이름을 박산서원이라고 했다. 유명한 박산서원의 기원이다.

그 다음 서원이 1624년에 건립된 주봉서원(冑峰書院)이라고 한다. 주봉서원은 옴천면 기좌리 주봉 아래에 조팽년을 향사하기 위해 창건되었다. 1686년에는 군동면 벽송리 금천에 금호사(錦湖祠)가 창건되었고 1백여년 후에 군동면 덕천리로 옮기고서 이름을 덕호사라고 했다. 1789년에는 성전면 월남리 월강마을에 월강사(月岡祠)가 창건되었다.

4개에 불과하던 서원은 1800년대 들어 급격하게 늘어났다. 1800년에 군동면 풍동리에 이순신 외에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끄는 데에 큰 공을 세운 강진 출신의 무장 김억추를 배향하는 금강사(錦江祠)가 창건되었다. 훼철 이후 강진읍 영파리로 옮겨 복설되었다. 1803년에는 중국 주자, 충청도 출신 송시열, 광주 출신 박광일이 배향된 남강사(南康祠)가 창건되었다. 지금은 강진읍 교촌리 강진향교 옆에 자리잡고 있다.

1804년에는 강진에 살고 있는 경주 이씨 후손들이 자신들의 선대인 고려말 학자 이제현, 선조대의 명신 이항복을 배향하기 위해 구곡사(龜谷祠)를 창건했다. 1820년에는 성전면 수양리 동령마을에 수암서원(秀巖書院)이 창건되었다. 1820년에는 작천면 군자리 행정에 행정사(杏亭祠)가 창건되었다.

행정사는 원래 행산사란 이름으로 1820년에 설립됐다가 흥선대원군때 훼철되었고 철종(1861)때 행정사로 바뀌었다. 2009년 2월 군자서원(君子書院)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어 김천일을 향사하는 금산원, 최사전을 향사하는 강덕사, 김희조를 향사하는 둔덕사, 마천목을 향사하는 충정사, 박기현을 향사하는 용전사, 조종근을 향사하는 남전사, 김조를 향사하는 관암사, 고영정을 향사하는 장춘사 등이 새로이 창건되었다.
 
서원과 원사의 차이는 강학기능


이를 정리해 보면 강진에는 서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 서봉서원과 남강서원, 박산서원, 주봉서원, 수암서원, 명곡서원등 여섯곳이 있었다. 또 제사만 지내는 원사는 없어진 남전사와 월강사등을 포함해 15곳이 있었다.(강진원사총서, 성균관유도회 강진군지부 발행 참조)

여기서 용어를 정리할 필요가 있는데, 조선시대부터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서원(書院)과 원사(院祠)가 있다. 서원은 제사기능(제향)과 학교기능(강학) 두 가지가 있지만, 원사는 제사만 지내는 곳이다. 서원과 원사의 제사기능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제사를 올리는데 흔히 가정집에서 선대 조상의 제사를 모시 형태가 아니다.

도강김씨 사당인 둔덕사에서 전남지역 유림들이 모여 제사를 올리는 제향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도암면 덕서리 436번지에 위치한 둔덕사는 도강김씨의 시조인 김희조(1124~1199)를 비롯해 김 일, 김세보 등 7분의 선조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있는 사당이다. 일반적으로 제향의 격식을 차리기 위해서는 12명의 제관들이 필요하다.<강진일보 자료사진>
서원이나 원사를 지을 때 배향(配享)이라고 해서 학덕이나 공덕이 높은 인물의 위패를 모신다. 흔히 문중의 이름있는 어른을 배향하는데가 많지만, 사회적으로 존경받은 타 문중 인물을 배향하는 곳도 있다. 그래서 유림에서는 ‘부모님을 비롯한 직계 조상의 제사(祭祀)를 모시는 곳은 가정집이고, 원사나 향교는 성현께 제향(祭享)을 올리는 곳이다’라고 표현한다.  

아무튼 서원과 원사들은 훼철된 후 흥선대원군이 권력에서 물려나면서 복원 바람이 불었는데, 그 이후 설립된 것들은 제향기능만 하는 원사가 대부분이었다. 또 서원이름으로 복원된 수암서원과 박산서원도 제사 기능만이 복원됨으로서 이름은 서원이지만 훗날 원사기능만 유지됐다.

군자서원 활발한 활동중

수암서원의 현재 건물들은 모두 1969년에 중건한 것이다. 2009년 사(祠)에서 서원(書院)으로 ‘승격’한 군자서원은 서원의 두 가지 기능인 제향과 강학을 모두 실현한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서원답게 다양한 행사도 펼쳐져 시회, 강회, 상읍례, 음악회, 제향, 서원스테이, 어린이 인성교육, 성균관 유교문화활성화사업단 주관 유교아카데미와 청소년 인성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서원이나 원사들은 대부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서원이나 원사를 관리하는 문중 사람들의 노령화가 깊어지면서 매년 봄이나 가을에 한차례 지내는 제사를 못지내는 곳이 나오고 있고, 건물 관리가 되지 않아 지붕에 잡초가 무성한 원사 건물이 여기저기서 눈에 띠고 있다. 조선후기 서원이 국가에 의해 강제 철폐됐다면 이제는 노령화에 의한 자연 철폐가 눈앞에 다가왔다고 우려할 정도다.

제를 올릴 때 없어서는 안될 제관을 뽑는 일도 보통 어려워진게 아니다. 유림에서 제관을 선정하는 절차는 굉장히 성스럽다. 매년 봄과 가을에 제를 올리는 원사관계자들이 모여 제관출표라는 행사를 한다. 각 원사들이 제향때 필요한 제관을 추천하고, 이를 승인 받아서 제관으로 최종 선출하는 절차다. 이때 선출된 제관들은 그 이름을 적어서 각 원사의 제실에 붙여 놓을 정도로 제관에 대한 예우가 각별하다.

계승 관리에 어려움 겪는 곳 다수

그런데 한번 제를 올릴 때 필요한 제관이 원사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12명에 이른다. 우리가 흔히 듣는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에서부터 집례, 진설, 봉축등 절차를 갖춰야 할  사람들이 많다. 노령화가 깊어지면서 이들 제관을 뽑는 일이 갈수록 어렵다. 예전에는 제관으로 추천되어 선출되는게 큰 명예였고, 은근이 삼헌관에 선출되기 위해 경쟁하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여기에 제를 진행하는 시간이 1시간 30분이 걸린다. 노인들이 일어서고 앉기를 반복하거나 무릎 꿇고 있는 시간이 길다.

이런저런 이유로 서원이나 원사들이 갈수록 힘을 잃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강진의 서원이나 원사도 관리하고 계승하기에 따라 미래에 중요한 역사자원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각 서원이나 원사들은 우선 조선시대 건축물로서 보존가치가 높은 곳이 많다. 중간에 보수하고 다시 지은 건물들이 많지만 훗날 21세기 한옥건물로서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것들이다. 여기에 건물들의 주변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즐비해 있다. 모두 수백년이 넘은 고목들이다. 그 자체로서 보존과 유지 가치가 충분한 것들이다.

또 오늘날 청소년들의 윤리 도덕의식이 땅에 떨어졌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을 보완하는 교육의 장은 향교나 서원, 원사들이 맡으면 효과가 아주 좋을 일이다.

무너져 가는 강진의 서원과 원사 건물들을 체계적으로 보호할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 그곳에서 전해지는 신성한 제향의식도 언젠가는 반드시 세계에 내놓을 강진유산이 될 수 있다. 또한 배향인물을 좀 더 다양화하면 어떨까.  서원과 원사에 반드시 조선시대 성인을 모셔야 한다는 룰을 좀 바꿨으면 한다.
/글·사진=주희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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