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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곤 기자의 만나 보았습니다[화제의 이 사람]남포마을 이영식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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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11  10:2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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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 천제(天祭),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군민의 자산입니다”

   
 
마을의 독특한 문화나 제(祭)는 한 민족의 전통과 얼, 그리고 정신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척도가 되곤 한다. 옛 선조들의 지혜의 집약체이기도 하고 고도의 정신세계와 가치관이 함축된 민족의 정체성을 담고 있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마을의 문화적 ‘전통’이 처한 현실은 풍전등화(風前燈火)와도 같다. 백여 년의 전통과 명맥을 잇고 있는 읍 남포마을의 ‘천제(天祭)’는 그 대표적이다. 고령화로 마을의 전통문화를 전승하기 어려운 현실은 서글프기까지 하다. 그 불씨가 언제 어떻게 꺼질지 모를 일이다. 

남포마을의 독특한 제 의식인 천제는 마을주민 이영식(79)씨에 의해 그 불씨를 겨우 살려가고 있다. 이 씨는 남포마을에서 태어나 자라온 인물이다. 올해로 40여 년째 마을의 중요한 행사인 천제를 도맡고 있다.

하지만 여든의 나이를 바라보는 이 씨에게 천제의 불씨는 여전히 불안하기만 하다. 젊은 사람이 없어 언제 명맥이 끊길지 모를 처지다. 181년의 세월을 간직한 남포천제가 처한 오늘의 현실이다.

이 씨는 남포 천제는 길이길이 간직할 강진의 문화자산이라고 강조한다. 때문에 지금이라도 보존위원회를 만들고 향토문화재로 지정해 보호해야한다는 게 이 씨의 바람이다.    

“천제의 명맥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입니다. 말 그대로 풍전등화죠. 그냥 사라져버리게 놔두기엔 너무 아까운 강진의 전통이고 문화적 자산입니다. 때문에 정책적으로 보존할 방법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난 5일 찾아간 읍 남포마을회관. 이영식 씨가 곱게 묶은 분홍색보자기의 매듭을 풀자 누렇게 빛바랜 커다란 책 한 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크기가 세로 50.5cm, 가로길이는 30cm를 조금 넘었다.
 
이 씨는 책이 도강 18년 음력정월에  제작된 ‘마을계책’이라고 설명했다. 도강 18년은 조선시대 말에 해당하는 1838년이다. 지금으로부터 181년 전에 쓰인 책이란 뜻이었다.

책의 첫장에는 ‘康津 縣內面 西里洞中 大同契 安洛冊(강진 현내면 서리동중 대동계 안락책)’이란 한자가 큼지막하게 세로로 적혀 있었다. 당시에는 강진읍을 현내면으로 불렀고 남포마을의 서쪽을 서리, 동쪽을 동중마을이라 했다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남포마을 지명이 생긴 것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라고 한다.

마을계책에는 천제를 지내는 방법 등이 구체적으로 서술돼 있었다.
“황~천 상계~, 양~의 분기~”

책에 적힌 한자를 한 글자씩 읊는 이 씨의 억양과 발음에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이 씨는 중간 중간 호흡이 버거운 듯 잔기침을 반복했다. 이 또한 세월의 흐름이었다.

   
남포 천제의 특이한 점은 대나무에 위패를 마련하고 후손 없이 죽은 이들의 넋을 위로한다.
이 씨에 따르면 남포마을의 천제는 마을의 환경에서 시작됐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남포마을은 본래 제주와 육지를 연결하는 길목이었다고 한다. 주변의 다른 항구들보다 내륙에 위치해 있어 바람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다. 돛배가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는 곳으로 최적이었다. 그렇게 남포마을은 제주와 내륙을 오가는 관문이 됐다.

남포마을 주민들은 배를 타고 바다로 자주 나갔다. 어패류를 잡아 생계를 꾸려나가는 사람들이 상당수 됐다. 이곳에서 잡힌 해산물이 전국으로 팔려나갔을 정도로 종류는 다양했고 양은 풍족했다. 추자도 등 서남해안에서 잡힌 해산물이 남포마을을 통해 육지로 팔려나갔다.

이 씨는 “한 때 ‘강진읍 시장은 남포주민이 없으면 장이 서지 못했을 정도다’는 말이 있었다”며 “그만큼 남포마을 사람들이 차지하는 상권의 영향력은 대단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해난사고도 많았다. 풍랑을 만나 사람들이 바다에 빠져 죽는 일이 허다했다. 전염병에 걸려 죽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마을이 관문 역할을 하다 보니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을 것이고 그러다보니 전염병에 취약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처럼 의료기술마저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이다 보니 전염병에 걸리면 낫는 이들보다 죽어간 사람들이 더 많았다.

이 씨는 “그들 중에서는 후손도 없이 죽어간 사람들이 있었고 이름도 모르게 떠나간 사람도 있었다”며 “마을주민들은 이들의 원혼을 달래는 의미를 담아 천제를 지내기 시작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 씨가 처음 천제를 맡았던 1980년대 남포마을은 250호 정도에 1천명 가까운 주민이 모여 살 정도로 강진읍에서도 그 규모가 제법 컸다. 그만큼 마을의 전통문화는 집단구성원의 공유물이었고 천제가 갖는 의미도 대단했다.

남포마을에서는 천제를 올리는 때인 정월대보름 시기를 맞춰 ‘마당밟기’라는 전통놀이를 함께 했다, 꽹과리를 치며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하고 마을과 강진군의 발전을 염원했다. 

이 씨는 “1974년도와 80년도에 해일이 강진의 해안마을을 덮쳐 가옥 수십 채가 파괴되고 농작물의 피해가 막대했다”면서 “주민들이 지내는 천제는 정성껏 음식을 장만하였으니 마을과 강진군에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해달라는 염원을 함께 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씨가 남포마을의 천제를 문화재로 지정해 계승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비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마을의 전통행사라고는 하지만 그 의미적 성격과 범위는 결코 마을에 국한된 것이 아닌 강진군과 나아가 대한민국을 위한 염원의 목소리고 의식이라는 것이다.

이 씨는 “마을의 전통문화의 핵심은 의미성과 자발성이다. 강제성을 띠는 순간 ‘일’이 돼 버린다”면서 “그나마 주민들의 단합과 협동심을 짜내고 짜내 명맥을 이어가곤 있지만 고령화되는 현실에 이 또한 분명히 한계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마을계책’에 대해서도 결코 방치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책을 잘 보전하고 제대로 번역해서 강진의 후손들이 문화를 이해하고 계승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씨는 “여든의 나이에 힘은 들지만 오랜 역사를 지닌 천제를 그만 둘수도 없는 일”이라며 “남포의 천제는 그냥 사라지기엔 너무 아까운 강진의 문화적 자산이다. 때문에 강진군이 정책적으로 보존할 방안을 찾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He is...

그는 1941년생으로 남포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의 나이 40살 되던 해부터는 마을의 중요한 행사인 천제를 도맡고 있다.

그는 강진 4·4독립만세 운동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영농회를 조직하여 기념비를 건립하고 민족정신 고취에 앞장섰다. 

그는 정월대보름 전통문화인 강진읍 남포마을의 천제를 보전하기 위해 남다른 열정을 다하는 등 지역의 소중한 역사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데 기여한 점을 높게 평가받아 지난 5월 강진군민의 상을 수상했다.
 

남포 주민들은 ‘그들을’ 위해 촛불을 켠다

   
 
매년 정월대보름 전날 밤이 되면 읍 남포마을 서쪽 강변에는 촛불이 켜진다. 북쪽에 제상을 차리고 남쪽으로는 금줄을 치고 100여개의 위패를 세운다.

위패는 아주 작다. 싱싱한 대나무를 쪼개고 그 끝에 창호지에 적은 ‘신위’란 푯말을 끼워 넣는다. 푯말은 그 크기가 일반 명함보다 큰 정도다.

물론 제사의 ‘메인 무대’는 제상에 차려진 ‘천황상제’이지만 사람들의 눈길을 더 많이 끄는 것은 남쪽에 차려진 작은 위패들이다.

위패는 바다에서 이름 없이 죽어간 영령들을 위한 것이다. 후손도 없고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 그저 바다에서 살다 바다에서 생명을 다한 넋을 위로하는 위패다.

다른 어촌마을의 당제나 갯제 등이 한 곳에서 상을 차려놓고 제를 올리는 것과 달리 마을 안과 마을 밖 두 곳에서 마련된다.

마을 안 회관에는 익힌 음식을 차린다. 반면에 마을 바깥길 서쪽에는 작은 제단을 차리고 익히지 않은 음식을 차린다. 생선과 각종 해물이 모두 생것이다.

제단의 신위는 ‘천황상제 지신, 지황상제 지신’이라고 한문으로 쓰고 상에는 돼지머리와 생선, 조, 무, 미나리 등이 생 것으로 올라간다. 음식은 마을주민들의 공동회비로 차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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