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에서 공식적인 축구대회가 처음 열린 기록은 1946년 8월 15일이다(강진향토지). 8.15 광복절을 기념해 읍면대항 ‘광복기념 축구대회’가 열렸다.

읍면대항 축구대회가 개최되기 위해서는 각 읍면에 축구 기반시설이 상당했고 인적 자원 역시 괜찮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제강점기에 각 학교에 축구장 시설이 많이 들어서면서 주민들 사이에 축구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읍면대항전은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면서 한때 중단되었다가 훗날 ‘청룡회장기 쟁탈 및 청유회장기 쟁탈 읍면대항 친선축구대회’로 이름을 바꾸어 개최됐다. 읍면대항 축구대회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도암면이 해방 이후 열린 읍면대항은 물론 초등학교 대항 축구대회에서도 우승을 휩쓸었다는 것이다. 

1970년대 들어 강진축구는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1970년 도암중학교에 축구부가 창설되었고, 이어 1976년에는 전남 중학교대항 축구대회에서 준우승을 거두는 쾌거를 이루었다. 지금도 도암지역에서는 당시 전설적인 축구 선수들의 이름이 구전되는데 신정고, 강희철, 임성옥이 그들이다.
 
신정고는 축구 명문 부산상고에 진학해 주전선수로 오랫동안 뛰었고 훗날 부산소속의 실업팀에 들어가 이름을 날렸다. 신정고는 특히 신정순, 신정호등 3형제가 모두 축구를 잘해서 도암지역에서 두고두고 이름이 전해온다.
 
강희철은 서울의 숭실고등학교에서 축구를 계속해 1978년 청소년 국가대표로 활약한데 이어 훗날 강진중학교에서 오랫동안 축구감독을 지냈다. 임성옥도 광주 금호고등학교에 진학했다.

80년대들어 읍면대항 축구 열기가 주춤해 졌지만, 추석명절에 각 면단위에서 벌어지는 마을대항 축구대회가 그 열기를 이어받았다. 명절때가 되면 축구잘하는 선수들을 데려오기 위해 각 마을별로 사활을 걸었고, 시합중에 다툼이 벌어지면 마을끼리 큰 싸움으로 번졌던 일은 주민들의 큰 추억으로 남아 있다.

강진축구는 1986년 탐진조기축구회가 창단되면서 조기축구가 활성화되다가 90년대 후반 생활체육을 중심으로 명맥을 이었다. 2000년대 들어 동계훈련 유치와 함께 학교축구가 활성화되면서 한때 중앙초, 강진중, 생명과학고 등이 축구팀을 창단해 활동했으나 지금은 명맥이 끊겼다.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을 준우승으로 이끈 이강인(18·발렌시아)의 외가집이 성전 처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강진사람들의 자부심이 대단해졌다. ‘강진의 아들’ 이강인의 기적이 강진축구를 다시 한번 부활시키는 촉매제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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