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스타 이강인 선수 외할머니 김영례씨 텃밭은 ‘손주 사랑’ 한가득

“이렇게 농사짓는지 알면 또 난리일 것인디...”
지난 17일 성전면 처인마을의 한 텃밭.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누비며 웃음꽃을 피우던 김영례(86)할머니는 카메라를 든 기자의 모습을 반기면서도 이내 걱정스런 속내를 내비쳤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밭을 일구는 모습조차 도리어 자녀들과 손주에게 ‘트집’이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 때문이다. 최근 치러진 20세 이하 월드컵 축구 대표팀에서 맹활약하며 세계적인 선수로 이름을 알린 이강인(18)선수가 바로 김 할머니의 손주다.  

주택가 얕은 담장 너머로 보이는 텃밭에는 여린 모종이 가지런히 심어져 있었다. 모퉁이 자투리땅도 씨앗을 품었는지 싱그러움이 한껏 부풀어 있기는 마찬가지. 200평 남짓한 텃밭은 가지런히 심어진 깨와 고추, 옥수수로 빼곡했다.

김 할머니는 “농사라기 보단 그냥 자녀들하고 손주들 먹이려고 이것저것 키우고 있는 것”이라며 “세월이 흐르고 작물도 하나둘씩 늘다보니 어느 순간 밭을 빼곡히 채우게 됐다”고 말했다.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이룬 밭이었다. 그 세월이 어느덧 30년이 흘렀다. 밭에서 일군 작물을 팔아가며 그렇게 1남4녀를 키웠다. 막내딸 강성미씨가 이강인 선수의 엄마다.

강 씨는 성전면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하고 목포에서 전문대를 졸업했다고 한다. 서울에서 유치원 선생으로 취직 후 남편 이은성씨를 알게 돼 결혼하게 됐고 인천에서 ‘강인이’를 낳았다.

가족들은 이강인 선수가 스페인으로 ‘축구 유학’을 떠나게 되면서 함께 이주했다. 이강인 선수의 나이 10살때였다. 당시 이 선수를 영입한 스페인 축구팀 ‘발렌시아’는 가족들의 생활비를 모두 다 책임지는 조건으로 6년 계약을 했다.

이강인 선수 위로는 누나가 두 명 있는데 큰 누나는 스페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 둘째 누나는 올해 연세대학교에 합격했다.  

김 할머니는 매년 밭에서 수확한 것들을 자녀들과 손주들에게 보낸다고 했다. 고추와 깨, 옥수수는 물론 고춧가루와 들기름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작년에는 밭에서 고추 200근 정도를 수확했다. 깨는 40㎏넘게 거둬들였다.

이강인 선수도 어린 시절 할머니 밭에서 키운 옥수수를 먹고 자랐다고 했다. 이 선수가 스페인으로 떠난 지 3년째 되던 해에는 김 할머니가 직접 스페인으로 건너가 한 달 정도 함께 살았다. 이 선수는 할머니가 해주는 요리를 참 맛있게 잘 먹었다.  

김 할머니는 “우리 강인이는 먹기도 잘 먹고 별로 아픈 적도 없었어. 그리고 애답지 않게 참 강했지. 그 먼나라에서 덩치 큰 외국선수들과 축구 경기를 할 때도 기죽지 않고 강했어. 강인이 아빠랑 엄마도 그랬거든. 그대로 물려받은 거여”

김 할머니는 손주를 바라볼 때면 대견하고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눈시울이 붉어질 때도 많다고 전했다. 힘겹고 어려운 시절을 꿋꿋이 버텨 온 강인이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함께 스쳐가기 때문이다.

이강인 선수 부모는 본래 인천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했다고 한다. 생활이 넉넉지 못해 도장 한켠에 방을 만들어 5식구가 함께 생활했다. 보일러가 없어 겨울에는 난로에 의지해 추위를 견뎠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김 할머니는 솜이불을 자주 보내곤 했다. 눈물도 참 많이 흘렸다. 그래서 오늘의 순간이 더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다.

강인이의 부모는 강진을 자주 찾는 편이라고 했다. 지난 5월에도 처인마을을 찾아 이틀을 머물고 갔다. 김 할머니는 요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성전에서는 꽤나 유명인사가 됐다. 이강인 선수의 외가가 전남 강진이라는 소식이 퍼지면서 성전 처인마을엔 한동안 방송사 차량이 쉴새 없이 오고갔다.

김 할머니는 “우리 강인이를 응원해주고 사랑해주신 대한민국의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며 “앞으로도 강인이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훌륭한 선수로 성장해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부상 없이 건강하게 자라줬으면 좋겠다. 그게 늙은 할머니의 마지막 바람이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조만간 큰딸이 살고 있는 서울에서 가족 모임이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1남4녀와 손주들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가족사진을 찍기로 계획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강인 선수도 함께 한다. 온 가족이 모인 사진촬영은 김 할머니 칠순 때 이후 16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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