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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안의 강진100년]1.추억속의 강진극장강진사람들을 울고 웃게 만들었던 추억 가득한 공간
오기안 기자  |  ju@nso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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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3  15: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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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문화공간 필요성 제기

   
강진극장은 1962년 지역 유지들이 힘을 모아 설립돼 영화, 각종 인기가수들의 공연, 문화행사 등이 개최됐던 공간이었다. TV 보급이 가속화되면서 쇠퇴해 80년대후반~90년대초반 폐업했다. <강진일보 자료사진>
오늘날 강진군의 인구는 3만6천여명이지만 강진극장이 있던 시절은 10만명이 넘어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번성했던 시절이었다. 읍에 사는 사람들을 물론이고 면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한번쯤 가보고 싶어했던 그런 곳이었다.

강진극장은 1962년 7월 31일에 문을 열었다. 1960년대는 인구가 가장 많았던 시절이었다. 60년에 11만5천여명, 68년까지 12만명이 넘어설 정도로 인구가 늘어나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사람이 많으니 당연히 강진읍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행사를 할 수 있는 공간과 영화 상영과 같은 문화공간의 필요성이 커졌다. 이에 강진읍사무소에서 주도해 강진극장 건립이 추진됐다. 극장이 설립되기 이전에는 상무관이라고 불렸던 건물을 사용했다. 이 곳은 현재 강진경찰서 정문 맞은편 주차장 부지이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시절인 1930년 경찰관들이 유도와 검도를 수련하는 장소로 지어졌다. 이때 명칭은 무덕관이었다. 광복후에도 체육관으로 활용되다가 1974년 상무관으로 명칭이 변경됐고 80년대초 경찰서에서 건물을 허물고 주차장으로 바꿨다.

인구증가로 상무관만으로는 행사장소가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건물 자체도 노후돼 불편을 느꼈다. 이 때문에 강진읍사무소에서 극장 건립이 추진됐던 것이다.

강진읍사무소에서 사업을 발주해 광주에 있던 남도건설이 건물공사를 맡게 됐다. 하지만 공사업체가 갑자기 부도가 나면서 공사가 중단됐다.

부도가 나면서 공사가 중단된 강진극장 설립을 위해 지역 유지들이 나섰다. 민간인들을 중심으로 ‘극장계’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극장건립 사업이 추진됐던 것이다. 이때 약국을 경영하던 서정환, 천일의원 김성수 원장, 잡화상을 했던 명원채, 김유홍, 손시철, 김학수 등이 동참했다. 서정환씨가 대표를 맡았다.

강진읍의 핵심상권이었던 극장통

   
현재 강진극장이 있던 자리는 볼링장이 들어섰다.
강진극장은 현재 삼양볼링장 자리에 있었다. 극장이 들어섰던 당시 이 골목은 서울의 명동과 같은 곳이었다.

동광당 건너편 부근에 금성여객 터미널이 있었고 현재 조제약국과 유미미용실 부근에는 광주여객 터미널이 있었다. 지역주민들은 터미널에서 내려서 극장통 골목으로 다녔다.

또 골목에는 상가들도 많았다. 고급술집이었던 요정도 있었고 전파사, 여인숙, 술집 등이 밀집돼 잇었다. 이뿐만 아니라 엘가 커피숍 자리에는 강진읍사무소가 있었다. 사람들은 동광당에서 읍사무소까지 극장통 길이 주요 이동통로였던 셈이다.

역사적으로도 이 길은 번성했던 곳이었다. 조선시대때 경찰서 부근에 관청과 객사가 존재했다. 당시 주요 이동통로였던 읍성의 남문이 현재 극장통 골목에 있었다. 이 남문은 일제강점기때 철거됐다.

극장통은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강진읍의 핵심상권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상권이 커져갔고 강진극장이 생기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극장이 성업했던 1970년대에는 100여명 이상의 사람들이 돌아다닐 정도로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이때 강진극장에서는 영화상영 뿐만아니라 크고 작은 행사들도 이뤄졌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새마을운동 발대식과 군청주관 행사, 하춘화, 바니걸스와 같은 인기가수들의 공연도 열렸다.

이곳에서 상영했던 작품은 주로 국산영화가 주를 이뤘으나 외국영화도 종종 상영하곤 했다. 또 학생들이 단체관람을 했던 계몽관련 영화들도 자주 상영되곤 했다. 쇠퇴기에 접어들었던 80년대 이후에는 어린이 영화도 상영됐다.

번성했던 강진극장이 변화의 기점을 맞이한 것은 1970년 중반무렵이었다. 이 시기는 TV가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했던 때였다.

그 단초는 1971년 역사에 남을만한 드라마로 시작됐다. 바로 KBS1에서 1972년 4월 3일부터 12월 29일까지 방영했던 드라마 ‘여로’였다.

여로는 당시 70%의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여로 방영을 기점으로 강진에도 TV 보급이 가속화됐다. 집에서 편하게 재미있는 드라마나 영화, 쇼프로그램 등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연히 강진극장의 손님을 줄어들기 시작했다.

쇠퇴기에 접어들었지만 강진극장은 80년대에도 계속 운영됐다. 80년대 이후에는 어린이 영화들이 많이 상영됐다.  이렇게 유지됐던 강진극장은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에 폐업했고  1992년 볼링장으로 바뀌었다.

그로부터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최근 사라졌던 강진극장은 작은영화관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강진을 찾아왔다. 영화관은 현재 강진읍 동성리 시장주차장 부지에 필로티 구조로 신축될 계획이다.

추억속에만 남아있었던 강진극장이 다시 강진군민들의 곁으로 찾아오면서 사람들은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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