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곡사 벚꽃길은 군청공무원들의 손으로 직접 심고 가꾸어졌다

군동 금곡사 앞 공터에서 필자(가운데)와 한정남 당시 식수계장(좌측) 등이 벚나무를 심고 기념촬영을 했다.<사진제공=윤순학>
이제는 강진의 관광명소가 된 군동 금곡사 벚꽃길은 1990년초반 군청 공직자들의 손으로 만들고 가꾼 길이다.

강진시범가로 꽃길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으로 1992년부터 1993년까지 군동과 작천면 일대에 벚꽃을 식재했던 사업이었다.

이 사업은 봄철을 맞아 마을단위로 관광을 떠나곤 했는데 주로 진해 군항제와 전주~군산을 이어지는 군산백리길, 영암읍~구림마을 벚꽃길 등 주로 외지로 꽃구경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에 강진군에서는 봄철 관광객 유치와 군민들이 가까운 곳에서 풍광을 즐기고 심신을 회복하는 명소로 만들기 위해 군청 직원들이 직접 나무를 심고 명찰을 부착해 가꾸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 사업은 1992년 4월 6일부터 군동면 호동마을에서 시작해 금곡사에 이르기까지 도로변에 왕벚나무 500본을 심었다. 2차로 1992년 11월 20일부터는 금곡사에서부터 작천면소재지까지 벚나무 약 1,050본을 도로변에 식재했다.

이로써 군동 호동에서부터 작천면에 이르기까지 벚꽃터널이 완성된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1993년에는 식목일 주간을 맞아 작천면소재지에서 풀치재까지 벚나무를 식재했다.

이후 2005년 정성태 작천면장이 상사업비로 면사무소 직원들과 함께 작천면소재지에서부터 박산마을까지 도로변에 벚나무를 식재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이때 공직자들은 단순히 심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나무마다 명찰을 달아 자신의 나무가 죽지 않도록 물을 주고 거름을 주는 등 잘 가꿔와 오늘날 관광명소가 될 수 있었다.

왕벚나무 식재를 할 당시 군청내에서도 일화가 하나 있었다.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정례회의가 열린다. 이 회의에서는 이전 주에 추진했던 실적과 이번 주에 추진해야 할 업무를 군수에게 보고하고 실과간의 업무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나무심기 이전인 1992년 3월 중순경 월요일날 오전 군수가 주재하는 실과소장 간부회의에서 일어난 일로 기억한다. 당시 문화관광계장이었던 나는 군정 50년사 책발간을 위해 군청 간부들에게 협조를 구하기 위해 회의에 참석하게 됐다.

문병일 군수는 직원들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은 다음 앞으로 추진해야 할 사항에 대해 많은 지시를 하면서 마지막 지시로 왕벚나무 꽃길 조성에 관한 사항을 꺼냈다.

군수는 식재 배경을 설명하면서 식목일 행사의 일환으로 금곡사 가는 도로변에 왕벚나무를 식재하도록 산림과장에게 지시를 했다.

이때 산림과장은 임야외의 나무식재는 자신의 소관업무가 아니라고 답변했다. 그러자 문 군수는 도로변 가로수이기 때문에 건설과에서 추진해야 하는지에 대해 묻자 가로수 관리는 소관사항이 아니라는 의견을 건설담당 과장이 제시했다.

이에 왕벚나무 꽃길 조성 사업을 추진할 부서가 애매해지자 문 군수는 해당 사업을 어느 부서에서 추진해야하는지에 대해 토론하자고 제시하고 실과장들에게 의견을 개진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이때 실과장들은 다른 과에 업무를 떠넘기기도 어려웠고 그렇다고 자신의 과에서 맡아서 하겠다고 나서기도 어려운 상황에 누구 하나 말하지 못하고 조용히 앉아만 있었다. 분위기가 점점 이상해졌다.

그 때 기획실장이 말문을 열었다. 간부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왕벚나무 식재 추진부서가 없다면 군정조정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기획실에서 추진하겠다며 선언한 것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발언에 간부들을 바라보고 있던 문 군수는 기획실 소관업무가 아닌데도 왕벚나무 식재를 추진한다는 답변에 무릎을 탁 치며 “역시 기획실장이다”고 치켜세운 뒤 간부회의가 무사히 종료됐다.
 
만약 이때 누구하나 나서지 않았더라면 당연히 분위기는 험악해졌을 것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 당시 기획실장이 희생한 것이었다.

타과 소관 업무를 추진하겠다는 기획실장의 지시에 사돈지간이었던 기획계장은 한마디 대꾸도 하지 못하고 기획계 직원들과 왕벚나무 구입에서부터 식재할 구덩이와 나무 1그루당 활착용 마사토 1포대를 사전에 준비하고 마지막으로 식재된 나무에 부착할 직원들의 명찰을 만드는 등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워 추진했다.

과정이야 어찌됐던 당시 고생했던 공직자들의 수고덕분에 오늘날 강진군민들은 가까운 지역에서 화사한 벚꽃을 구경할 수 있게 됐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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