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로 다수 공직자들이 퇴직하는 등 구조조정 아픔 겪었다

1991년 4월 강진군의회 개원식 후 현판식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으로 민화식 군수와 윤옥윤 의장이 현판을 걸고 있다.<사진제공=윤순학>
1987년 12월 16일 대통령직선제가 실시됐고 이 선거로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됐다. 그 이듬해인 1988년 2월 25일 노태우 정부가 출범했다. 이때는 조직 외연 확대가 가장 큰 특징이었다.

이때 강진군청은 1실 9개과, 사업소 4개(농촌지도소, 보건소, 군립도서관, 청자사업소), 10개 읍면으로 행정조직이 구성돼 있었다.

노태우 정부의 조직 확대 방침에 따라 강진군청은 2실 13개과, 의회1과 1전문위원, 사업소 5개(농촌지도소, 보건소, 강진만간척사업소, 군립도서관, 청자사업소), 11개 읍면으로 크게 확대됐다.

이때 증설된 실과를 살펴보면 1실, 4개과, 1사업소, 의회 1과와 전문위원 1명, 1개면 등이었다. 과가 늘어난 만큼 고위 공직자들의 승진인사에도 숨통이 트였다. 노태우 정부 출범 직후였던 1988년 5월 16일에 기획실도 신설됐고 이름은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 다음해인 1989년 12월 30일 농촌지도소에 기술담당관을 폐지하고 지도과, 사회개발과, 기술보급과가 신설됐고 1989년 11월 20일에는 강진만간척사업소가 새롭게 만들어졌다.

그해 4월 1일에는 대구면에 속해있었던 마량이 면으로 승격됐다. 이뿐만 아니라 1990년 8월 1일에는 해남군 옥천면 봉황리 732.6㏊가 강진군 도암면으로 편입됐으며 그해 9월 7일에는 재무과 지적계가 별도의 과인 지적과로 승격됐다. 현재로 보면 민원봉사과에 해당된다.

또 1991년 4월에는 사회과 가정복지계가 가정복지과로 승격됐고 1991년에는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의회가 출범했고 의회사무과와 의회전문위원이 신설됐다.

1991년 7월에는 사회과 환경보호계가 환경보호과로 승격, 8월에는 도시과가 신설되는 등 군청 조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때 예년에 비해 군청 조직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공직자들의 수도 늘었고 신설과가 늘어난만큼 계장과 과장 자리도 늘어나 대폭 승진인사가 이뤄졌던 시기였다. 이렇게 커졌던 군청 조직은 1997년 IMF가 터지면서 대폭 축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당시 IMF 구제금융으로 사회 경제적 불안정을 최소화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 구조조정이 이뤄졌고 이는 공직사회에도 피할 수 없는 영향을 주었다.

이 시기에 1~3년의 정년을 앞둔 공무원들에게 명예퇴직을 권고하는 등 감원을 해야만 했고 이로 인해 92명의 강진군청 공무원들이 고스란히 그 멍에를 지고 퇴직을 해야만 하는 아픔을 겪었다.

당시 명예퇴직을 해야했던 선배 공무원들은 열악한 행정환경속에서도 국가 사회 발전을 위해 음지에서 묵묵히 일해왔던 세대로 IMF라는 정신적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내가 그 업무를 담당했는데 아직도 당시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구조조정이 이뤄진 직후 1998년 9월 2일 시행한 강진군 행정조직을 살펴보면 당초 15개 실과를 11개 실과로 통폐합하고 행정기구의 감축과 함께 공무원의 총수를 당초 668명에서 576명으로 92명을 감축했다.

본청 직원의 정원을 241명에서 225명으로 의회사무과는 11명에서 10명으로 농촌지도소, 보건지소 등 직속기관은 111명에서 88명으로 사업소는 49명에서 41명, 읍면은 256명에서 212명으로 조정됐다.

특히 이 시기에 지방행정조직의 중간관리 계급으로 오랫동안 공직사회뿐만 아니라 일반사회에서도 자리잡았던 ‘계장’ 제도를 없애고 ‘담당제(현 팀장제)’로 전환됐다.

이후 강진군의 조직은 이름만 조금씩 바뀌었을 뿐 오늘날까지 그 틀이 유지되고 있다. 현재 강진군 조직은 2실 11과 2 직속기관(농업기술센터, 보건소), 5사업소, 11개 읍면에서 598명의 공직자들이 근무하고 있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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