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규동 박사/강진군 다산박물관 다산교육전문관

봄바람 따라 금곡사 입구에 들어서니 시인 방랑객 김삿갓이 일필휘지한 한편의 시가 눈길을 끈다. 과거에 응시하여 급제하였으나, 과거에 응시한 문제의 답이 자신의 조부를 비난한 것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모든 벼슬을 버리고 전국을 유랑하며 즉흥시를 썼던 김삿갓 시 중에 하나다.

양편에 바위 우뚝 솟아 서로 다투는 줄 알았더니(雙岩竝起疑紛爭)
물줄기 한 가닥으로 흐르는 걸 보니 근심 사라지네(一水中流解忿心)
- 시인 김삿갓(금곡사 기념비석)

시인의 표현대로 보은산 자락의 잔잔한 줄기가 갑자기 용솟음친 금곡사의 전경은 보은산에서 보기 드문 풍경이다. 금곡사로 들어가는 오른쪽엔 궁궐 문짝처럼 펼쳐있고, 왼쪽은 마치 달려오는 적병들을 막으려는 듯 날카롭고 매섭게 버티고 있다. 시인 김삿갓도 이런 모습을 보면서 마치 싸우려는 듯한 감정이 솟았던 것이다.

거기에 마치 눈보라가 휘몰아치며 나무들이 휘청거리면 그야말로 전쟁 분위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하지만 반전은 졸졸 흐르는 물줄기가 봄을 재촉하는 소리에 어느새 마음은 포근한 자연 속으로 향한다.

절 앞에 3층 석탑은 보물 829호로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1988년 석탑 해체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한 것으로 그 옛날의 찬란했던 금곡사의 모습은 찾을 수 없지만 그래도 3층 석탑이 그 옛날의 모습을 상상케 한 것은 다행이다.

이곳저곳 둘러보며 다산 선생이 쓴 금곡에서 놀면서라는 시가 생각났다. 다산은 가을 날씨가 너무 좋아 금곡을 갈려고 했다가 함께 갈 사람이 없어 서글픈 마음에 쓴 시가 있고, 또, 결국에 금곡에 와서 놀면서 썼다는 시가 있다.

아 이 금곡 속에, 벌써 세 번째 들어왔더니
(중략)
서쪽 봉우린 험준하고 날카로워, 예리한 모서리가 꽂힐 것만 같은데
예형이 비록 재주는 있었지만, 성질이 강퍅하여 좋아하는 자 적지 않았던가
남쪽 봉우린 모습이 말쑥하고, 표나지 않게 바위가 쌓였는데
앞으로 안 나서고 물러서는 기상으로, 차분한 것이지 겁나서가 아니라네
동쪽 봉우린 대신감으로서, 엄한 모습이 좌우를 꽉 누르고
- 구월 오일 다시 금곡에 가 놀면서 / 다산시문집 제5권 / 시(詩)
 
한 시대를 살았던 방랑시인 김삿갓이나 다산 선생이나 금곡을 둘러보면서 펼쳐지는 전경을 시로 적은 느낌은 서로가 똑 같았다. 금곡 한쪽의 말쑥한 모습과 험준하고 날카롭고 예리한 모습에 대한 느낌은 예나 지금이나 똑 같다.

새삼 인간사를 되돌아 보니 200여년 전 옛 시인들이 남긴 금곡의 모습은 변함이 없건만, 인간사들은 수 없이  많은 변화 속에서 성장과 발전은 했지만, 인간의 과욕으로 넘쳐버린 것들로 입은 깊은 상처는 금곡의 이곳 저곳을 아프게 한다.

이런 저런 풍경을 바라보며 강진만을 바라보니 동쪽은 금곡사가 든든히 지킴이 역할을 하고, 서쪽은 고성사 종소리 울리며 새벽을 캐우며 강진 고을을 지키고, 남쪽엔 금사봉과 맞은편 만덕산 만덕봉의 남녀가 견우직녀처럼 강진만 구강포를 넘나들며 서로의 정을 나누고 있다.

북쪽엔 월출산이 얄궂은 바람과 험한 것들 막아주려   그 큰 바위섬을 이루고 있다. 우이산 형제봉이라 부르는 보은산 우이봉은 다산이 함께 유배오며 헤어져 흑산도로 유배간 형님을 그리워하며 눈물짓던 그리움과 간절함이 배인 소망의 산이다. 봄바람 따라 금곡을 찾은 다산이 형님을 간절히 그리듯 상처받은 인간사의 평안하고 풍성함을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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