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운/언론인

비핵과 경제난이 온나라 이슈를 송두리째 빨아들여 농촌의 해묵은 고통과 소망은 위정자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버렸다.

불투명한 비핵화 우선주의에 밀린 경제는 하락의 길로 미끄러지고 있는 가운데 기대를 걸었던 농촌의 미래는 여전히 먹구름이다. 악화되고 있는 일자리와 소득 격차는 청년과 근로자들만의 독점적 문제인 것처럼 치부되고 농민은 제외된 개념으로 굳어졌다.
 
그런데도 농업을 6차산업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구호는 요란하다. 대다수 농가의 농업 형태가 1차산업 틀을 벗어나지 못한 농촌 현실을 직시하면 말장난처럼 들린다. 쌀 수매가를 올려주는 것으로 집권 5년의 농정 책무를 마감한 게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깊어진다.

자칭 촛불정권의 농정을 체념이나 한 듯이 농도 전남 지자체에서 농업인 생존을 위한 자구책을 들고 나왔다. 해남군이 올해부터 농업종사자들의 오랜 숙원인 농민수당제를 도입한 것이다. 농민들의 기본소득 보전을 목적으로 하고 명칭을 ‘농민수당’이라 붙인 지원방식은 해남이 전국최초다.

월급도 받지않고 해남르네상스를 부르짖고 있는 명현관 군수가 농민수당제도를 지체 없이 시행에 들어가 주목받는 지자체로 급부상했다. 전국 지자체로의 확산을 촉발시킨 위대한 결단이다. 지방분권화의 조기실현 당위성을 일깨워준 프론티어 리더십이 돋보인다.

전남에서 명칭은 다르지만 농민수당 원조격인 유사한 사례는 이전에도 있어왔다. 진도군과 강진군이 주역이다. 이들의 선진적 농촌 개혁마인드가 초석이 되어 농민수당제가 전국으로 번지는 새역사의 장을 열었다.

진도군은 2016년 ‘어르신 소농 직불금’ 제도를 도입했다. 민선 6기 이동진 군수가 농가 현장에서 고령의 농민들이 소작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보고 추진하게 됐다고한다.

열악한 재정여건에도 불구, 3년째 이어오고 있다. 이와함께 진도군은 농업인 월급제도 지난 2017년부터 시행해오고 있다. 가을에 편중된 벼 재배 농업인들의 소득을 월별로 연중 지급, 소득의 안정적인 배분과 계획적인 영농생활 지원을 위한 것이다.

강진군도 지난해부터 경영안정자금이란 이름으로 농민 기본소득제 성격의 농민지원을 해오고 있다. 논밭 면적을 합해 1,000㎡(303평) 이상을 경작하는 농가에 연 70만원의 자금을 균등하게 지원하는 방식이다.

강진군은 벼농가에만 경영안정자금을 지원해왔으나 타작물재배 농가와 형평성이 어긋난다는 여론을 반영, 관련 조례를 개정했다.

면적을 제한하기는 했지만 논밭가리지 않고 모든 농업인에게 균등 지원했다는 점에서 실질적 농민수당이라 평가할만하다.

진도, 강진, 해남에서 불붙은 농민 기본소득 보장제도는 마침내 전남도로 번졌다. 전남도는 내년부터 광역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농민수당제를 시행하겠다고 선언했다. 내년 1월 1일 실행에 옮기기 위해 대상과 금액을 산정하는 용역 발주와 주민 공청회 및 여론조사, 농민수당 지급조례 제정 등을 준비 중이다.

김영록 전남지사가 지난 2월 18일 순천에서 “농업의 농민수당을 도입하겠다”고 공언했으므로 의심의 여지가 없다.

농민수당제는 국가 농업 정책중 최우선순위로 추진해야할  핵심 과제다. 그런데도 정부는 물론 진보성향의 지자체장들 마저도 이를 외면하거나 주저한다.

대신 일반인이나 기업생산 근로자 위주의 복지정책에만 몰두하고 있다. 농업을 하찮게 여기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것인지, 아니면 농민의 기본소득은 무시해도 득표에 지장이 없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건지, 그들의 계산속을 알 수 없다.

공익성이 강할뿐아니라 식량안보까지 연계된 농업을 붙들고 명맥을 이어가는 짠한 농업종사들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주는건 너무도 당연한 국가의 책무다. 이념, 남북관계, 근로자 중심의 하위계층에 초점이 맞춰진 듯 보인 국정 운영방향이 수정되지않는한 평등, 공정, 정의의 가치 구현을 기대하기 어렵다.

농민수당제는 진도, 강진, 해남이 불을 지피고 전남도가 거들고 나서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국가 농정을 좌우하는 추동(推動)의 힘을 발휘한다. 따라서 농민수당제를 시행하려는 지자체라면 농민중심의 제도 정립과 보완 노력이 뒤따라야한다.

이들의 선도적 방안이 국가 정책 입안의 기본 틀이 될 수 있어 출발시점 밑그림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농민수당제 로드맵을 그려나갈 때 보편성 원칙이 근간을 이루어야한다는 점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농민수당제도가 선택적 방향으로 운영될 경우 농심 깊이 자리 잡은 좌절감과 위화감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불러온다.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이라면 누구에게나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보편적 복지 성격을 갖는 제도여야 평등하고 공정하며 정의로운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전남도가 일정소득이하의 농어민을 대상으로 농민수당 제도 방향을 잡고있는 것으로 알려져 아쉬움이 남는다.

국가 농정백년대계는 농업인의 기본소득을 보장해주는 제도 정립에서 출발해야한다. 그게 4차산업 시대에 발맞춰 융성시켜 나가야 할 스마트농업을 여는 첫 단계라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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