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남송의 수도 남경(난징)은 옛 지명이 금릉이였다. 남경은 청자가 발전한 월주요와 같은 저장성에 있다. 강진의 별호가 지어질 때가 강진에서 청자가 발전하기 시작할 때다. 청자와 금릉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금릉은 강진을 청자의 성지로 만들겠다는
고려왕실의 의지를 담았을까

남송의 수도 금릉, 월주요와 인접지역
고려시대, 남송과 교류활발... 금릉은 중국청자의 성지
강진을 고려의 청자성지로 만들겠다는 의지있었을 것 

금릉의미 여러 가지로 해석가능
강진에 금(金)자가 들어간 지명이 많은 것도 특이한 현상


고려시대 왕조가 전국 50여개 지역에 별호를 지으면서 강진(도강)을 금릉이라고 칭한 것은 틀림없이 어떤 의미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설명했듯이 고려 성종임금은 별호를 지으면서 그 지역의 특성을 반영했다. 금릉은 중국 남경의 옛 이름으로 중국의 오랜 수도였다. 그럼 강진은 중국의 수도에 못지 않은 어떤 의미를 가졌던 것일까.

시기적으로 몇 가지를 탐색해 보자. 고려성종이 별호를 지었던 991년은 시기적으로 강진에서 본격적으로 청자가 만들어질 때와 일치한다.

이 시기는 아직 상감청자란 최고급 청자는 나올때가 아니지만 통일신라시대 말 중국의 저장성(浙江省.절강성) 월주요쪽에서 들어와 이제 자리를 잡고 본격적인 대량생산체제에 나설때이다. 고려청자는 이때부터 고려왕실과 깊은 관련을 맺고 발전했다.

최근 발간된 강진군지에 실린 김영원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의 ‘강진청자와 역사의 발달’이란 글에 따르면 강진에서 청자가 양산되기 시작한 시기는 10세기 중후반인 광종 연간(949~997)~성종(981~998) 연간으로 추정하고 있다.

강진청자의 활성화는 왕권이 강화되는 광종에서 성종 연간의 강력한 국가 체제 정비와 맞물려 있었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성종임금은 강진에 금릉이라는 별호를 내렸다.  

중국(남송)의 수도 금릉(지금의 남경)은 청자의 주산지 월주와 인접해 있다. 같은 저장성안에 금릉과 월주가 있다. 월주요 생산 청자의 주 소비처가 바로 수도 금릉이였다.

당시 고려와 남송은 해상을 통해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었다. 고려는 예성강 하류의 벽란도에 국제무역항을 운영했다. 송나라 상인들은 배를 타고 올라와 비단, 차, 약재, 책, 옥, 악기, 물소뿔, 상아 비취, 공작새, 앵무새 등을 가져와 팔았다.
 
고려상인들은 삼베, 모시, 인삼, 한지 등을 수출했다. 또 지금의 해남군 화산면 관동리에 남송과 무역을 했던 국제항이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아마도 고려사람들에게 중국의 수도 금릉은 청자가 많이 생산되는 지역으로 통용됐을 것이다. 중국의 자기는 많은 양은 아니지만 고려의 여러 유적에서 자주 발견되는 유물이다.

지난 2월 성전 월남사지 시굴조사에서 중국 송나라때 흑자완이 발견됐다. 월남사는 고려의 최씨 무신정권이 중창했다는게 정설이다. 1196년 최씨 무신정권의 최고 권력자 최충헌이 권력을 잡았다.

최충헌은 장흥 출신 공예태후의 아들 신종을 왕위에 올리며 실권을 장악한 인물이다. 이어 최충헌의 아들인 최우가 정권을 잡아 최고 전성기를 누렸다. 최우의 아들인 최득전이 출가해서 월남사에 머물렀다는 기록도 있다. 이 시기는 청자의 최대 전성기인 12, 13세기와 맞물린다.

고려 성종이 991년 강진(도강)의 별호를 금릉이라고 정한 것은 아마도 이같은 청자 생산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고려 왕실은 강진을 금릉이라는 별호를 정함으로서 남송의 수도 금릉에 못지 않은 청자생산지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는지 모를 일이다.

실제로 훗날 12세기 들어 강진에서 최고의 기술로 만들어진 상감청자는 남송으로 수출을 하게 된다. 남경(금릉)의 남송시대 황궁터에서는 고려의 상감청자 편이 수도없이 발견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에서 기술을 가지고 온 반도체 기술이 지금은 세계 최대 생산국이 되어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일이다.

과연 강진의 별호 금릉은 고려왕실이 강진을 남송의 수도 금릉처럼 청자의 본거지로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을까. 금릉의 의미는 이밖에도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강진의 지명중에 금(金)이 들어간 지명이 유난히 많은것도 특이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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