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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지금은 사라진 연지토호들의 기세를 꺾기위해 읍 중심에 연지가 설치됐다
오기안 기자  |  ju@nso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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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14  11: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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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경 강진읍에 있던 연지의 모습으로 추정된다. 연지 주변에 주택들이 들어서 있고 연지 중앙의 섬에 수양버들이 심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내가 대구면사무소에서 본청으로 전입하면서 강진읍에서 주로 생활하게 됐다. 강진읍에서 생활하면서 오래전에 강진읍에 있었던 연지라는 커다란 연못이 생각난다. 지금은 사라져버려서 더욱 아쉬움을 주고 있다.

연지에는 오래전부터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1789년 간행된 호구총수의 기록에 의하면 동문리, 고내리, 연지변리와 탑동리, 서문리 등 강진읍은 29개 마을이었다.
 
그중 강진군청은 연지리에 속해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연지리와 탑동리를 합하여 남성리로 되면서 오늘날까지 명칭이 이어지고 있다.

연지리라는 지명은 이때 사라져버린 것이다. 최근에 도로명주소가 생겨나면서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연지길이라는 주소도 거의 100여년만에 다시 본래 이름을 되찾았다.

   
1920년대 전후로 지금의 보은산 방면에서 바라본 강진읍의 모습. 사진 중앙에 커다란 기와집이 김충식의 집이다.
연지는 현재 강진읍 중심가인 도서관과 우체국, 강진읍교회 위치에 존재했다. 규모도 상당히 컸던 것 같다. 당시 연지의 둘레는 1,255척(380m)으로서 축구경기장 보다 더 큰 연못이었다.

연못에는 홍련과 백련을 심어 수중에는 잉어가 놀고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연지의 중심을 관통하는 도로를 신설하면서 반토막으로 축소됐다.
 
이후 우체국 부근은 일본인 소학교를 짓기 위해 매립됐고 남은 연지도 1967년 이후해서 매립, 그 자리에 1984년 도서관 신축공사를 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내가 본청으로 부임하던 시기에 완전히 사라졌다.

풍수설에 의하면 강진읍의 지형이 소가 누워 있는 모습과 같다하여 와우(臥牛)형국이라고 한다. 우두봉(牛頭峰), 와우재(臥牛峙), 시끝(소혀끝), 하이변(下耳邊), 중이변(中耳邊), 시웃재(休牛峙), 논치(勞牛峙), 가우도(駕牛島)지명들이 있다. 

소와 관련된 풍수설 때문인지 조선조 중기 시대의 현감들은 강진의 부임을 꺼려했다. 기록에 의하면 1491년부터 1650년까지 159년 동안 105명의 현감이 부임하여 평균 1년 6개월 동안 재임했다.
 
조선 중기의 현감은 몇 개월에서 1년 미만의 재임기간에 파직되거나 좌천을 당했다. 이는 지방 이속들이 너무나 억세어 현감이 이속을 마음대로 부리지 못하고 오히려 이속들의 수중에 좌우됐다고 한다.

지금부터 370여년 전 신유라는 사람이 자원하여 현감으로 부임했다. 부임 즉시 이곳 지형을 살펴보니 황소가 누어있는 형국으로 지방 사람들이 힘세고 득세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 현감은 역대 현감들이 세력 강한 토호들을 마음대로 부리지 못한 이유를 풍수설 때문이라 믿고 있었다. 황소는 코뚜레를 뚫어야 맥을 못춘다는 생각을 갖고 황소의 인중에 해당하는 강진중심지에 구덩이를 파내 연지를 만들었다. 이후 연지 주변에 민가들이 들어서게 되어 연지변리 라는 마을이 생겼다.

아무튼 신유 현감은 풍수설로 인해 지방관의 임기인 2년을 채우고 다른 곳으로 영전할 수 있었다는 재미있는 얘기가 전해 온다. 기록에 따르면 연지는 신동국여지승람(1481~1530)에 처음 기록된 것으로 보아 1475년 10월 완공한 강진읍성과 함께 연지가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강진읍성은 을묘왜변과 정유재란, 동학혁명 때 크게 피해를 입었다. 임진왜란의 전초전이라 할 수 있는 1555년(명종10년) 을묘왜변으로 5월 26일 강진현읍성과 병영성이 함락됐다. 또 두 번째 피해는 1597년 정유재란 때이다. 강진읍성이 무너지고 객관(현 세무서자리)의 청조루가 불에 타는 등 피해를 입었다.

강진읍성의 복구는 병자호란이 마무리되고 난 후 조선중기 도성중심 방어체제 정비의 일환으로 1651년(효종2년)에 신유 현감에 의해서 개축하게 된다. 동문샘 밖에 있던 동쪽 성벽을 동문샘 안쪽으로 좁혀 쌓아 지금의 강진읍성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강진읍성의 길이는 2,842m, 높이 5.98m이다. 이러한 성벽개축 과정을 거치면서 지역사람들을 동원하여 사역을 시킴으로써 지역민들을 약화시키기 위해 구덩이를 파내어 연지를 만들었다는 설화도 전해오고 있다.

어찌됐든 지금은 남아있지 않은 연지이지만 이제라도 사라졌던 본래의 이름을 되찾게 돼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본다.<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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