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갑수/군동면 화방마을 이장

우리 마을은 군동면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 2.5㎞ 지점에 위치해 있다. 돗고개, 재륵을 넘어서면 산천이 수려하고 마을의 배산인 화방산이 마치 꽃이 피어나는 모양의 화수병풍을 둘러쳐 놓은 듯한 형국을 하고 있다.

이 곳에 600여년 전에 이미 마을이 이루어져 지금까지 선조님들의 귀적을 기르며 이어온 마을이다. 우리 마을은 선조님의 애환으로 마을이 이루어진 직후 지금으로부터 500여년 전부터 그때 당시 ‘배움’의 터전이었던 서당이 있었다.

이때는 지금의 화방산 중턱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호란으로 인하여 200m산하로 자리를 옮겼다. 이때 필봉산 등성 풍경이 좋은 곳에 서당을 짓고 당호를 ‘만취’라 칭하고 유지해오다가 문물이 발달되고 학도수가 증가함에 따라 외지고 협소해 불편함이 많아 마을 중심지로 이전하게 됐다.

현재 서재가 위치하고 있는 마을의 중심지 화산리 666번지에 5칸 규모로 건물을 짓고 제호를 ‘화오’라하고 칭하고 서당을 운영했다.

이후 당시 금천면 용소리, 풍동리, 금강리, 라천리 등 거주지를 제약받지 않고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몰려와 주경야독했다.

낮에는 들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밤에는 화방마을의 서당을 찾아와 공부했다. 날로 증가하는 학도의 수를 감당키 어려워 서기 1872년 정월 결의에 따라 미‧조‧전 삼색을 출현 또는 부의받아 ‘서재’를 작계하였다.
 
20년후 1892년 3월 20일 현재 제호 ‘화산재’란 목조토아 가사간 팔짝 지붕으로 신축하게 되었으며 1965년경까지 윤치장 훈장께서 청소년, 장년층들의 배움의 학당으로써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1965년 이후부터 현대 학문에 밀려 서당은 그 기능을 상실하고 독서회로 사용해 오고 있으며 지금은 설 명절에 합동 세배 정도만을 유지하고 있다.

서재 벽면과 기둥에 호남의 명필인 송선주 선생의 친필이 본관 각인된 화산재 당호와 화산 팔경이 있어 보존의 가치가 더할 듯 싶다.

마을주민들은 현 건물을 영구토록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 강진군에서 문화재로 지정해주길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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