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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윤순학의 향토문화가 자산이다
윤순학의 향토문화가 자산이다 <5>군청 청사 신축1978년 낡은 건물 허물고 최신 건축자재 활용해 청사 신축
오기안 기자  |  ju@nso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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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31  10: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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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군청 건물을 신축하기 이전 사용했던 낡은 군청 청사의 모습. 일제강점기때 지은 건물이다.
내가 본청으로 전입한 이후 의료보호 업무를 담당하게 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겪었다. 업무 자체는 대구면에서도 사회업무를 경험했기 때문에 적응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의료보호 업무를 보다가 기존생활수급자와 같은 사람들외에 돌발영세민이 있었다.

내가 대구면에 근무할 때 내가 살고 있는 마을 근처에 새터민 한분이 있었다. 농토조차 없어 산을 논으로 만들어 농사짓고 살정도로 생활이 어려운 분이었다. 이때 새터민이 살고 있는 마을 이장님이 나를 찾아왔다.

같은 동네에 살았기에 내가 본청에서 의료보호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와 도울 방법이 없나 조언을 구했다. 이때 내가 방법을 찾아 새터민을 돌발영세민 등록하면 된다는 사실을 찾아 윗 상사에게 이같은 내용을 보고했다. 행정적 도움을 받고 새터민은 돌발영세민 등록을 받을 수 있다.

또 이때 이 새터민은 심장이 좋지 못해 수술을 받아야만 했는데 당시 돈으로 500만원 가량이 들어갔다. 이때 내 월급이 10만원정도였으니 지금으로 생각하면 몇천만원에 해당하는 큰 금액이었다.

이때 이 새터민은 돌발영세민으로 등록되면서 수술비 500만원 전액을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당시 전남대학교 병원에서 무사히 수술을 끝마쳤다.

수술후 회복해서 무사히 강진으로 돌아온 모습을 보고 내가 처음으로 공직생활을 하기 잘했구나라는 생각에 보람을 느꼈다. 아직도 당시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 새터민은 나중에 건강을 완전히 회복한 뒤 부부가 나를 찾아와 감사한 마음에 빵을 건네며 감사인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1924년 당시 군청 내부 복도의 모습이다.
사실 이 새터민에 대해서 내가 어렸을 때부터 봤던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에는 이 새터민이 나를 자주 혼냈던 기억만 있어 이분에 대한 좋지 못한 기억만 갖고 있었다. 하지만 심장수술 지원으로 인해 좋지 못한 기억은 모두 사라졌다.

군청 건물에 대한 이야기로 잠시 넘어가보자. 내가 본청으로 전입하기 전인 1977년까지만 하더라도 일제강점기때 지었던 건물이 그대로 군청 건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에 1978년 정채균 군수가 재직시절에 낡은 건물을 허물고 그 자리에 2층 규모로 새로운 군청 건물을 신축했다.
 
당시에 군청 건물은 강진군에서도 최고 건축물이라고 말할 정도로 깨끗한 모습을 자랑했다. 바닥재료는 테라조라고 대리석 느낌이 나는 고급스러운 건축자재였다. 이전에는 군청 건물 바닥은 나무로 돼있었지만 이때 신축하면서 대리석 느낌의 테라조라는 타일로 바꾼 것이다.

군청 건물이 새롭게 바뀌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1970~80년대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군청과 면사무소간 교류가 많지 않았던 때였다. 당연히 공직자들외에 면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군청에 올 일이 거의 없었다.

군청 청사가 신축되고 난 후 어느 날 면에서 올라온 주민 3명이 군청을 방문했다. 군청에 볼일을 보기 위해 찾은 것이었는데 군청 건물 바닥이 깨끗한 대리석 느낌의 테라조 타일로 돼 있는 것을 보고 군청 현관에 자신이 신고온 신발을 벗어놓고 본청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이 모습을 보고 신발을 신고 들어와도 된다고 알려주기 전까지 그 주민들은 영문을 몰랐다. 이러한 재미있는 모습은 군청과 면사무소간에 교류가 없었고 강진읍과 면간의 교류도 많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2층 규모로 신축된 군청 건물은 1990년에 3층을 올렸고 이후 1996년에 4층이 올라가 현재 모습을 하게 된다. 이때 군청의 3층 건물이 올라간 가장 큰 이유는 지방자치가 시작되면서 였다. 지방자치가 시작되면서 군의회 전용 건물이 필요했고 이때 고민을 하다가 군청 건물에 3층을 올려 그곳을 의회동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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