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운/언론인

올 한해 내내 지속된 북한 비핵화와 소득주도 경제성장 논란 속에 민생은 파묻히고 낙제수준의 경제성적표에 한숨짓는 날이 많았다. 폭력 앞세운 노조권력, 급진적 탈원전드라이브, 세금에 의존한 일자리 만들기, 전문성 없는 정실인사, 말뿐인 경제규제혁파, 방치된 4대 개혁, 진보 좌파의 득세, 지루한 적폐청산과 적폐쌓기. 존엄의 언행불일치 등등... 수시로 끼어들어 삶을 피곤하게 만든 불편한 진실들의 가지수를헤이리기엔 열손가락은 어림도 없다.

천국의 문을 열 것 같은 대통령 말씀은 언제나 황홀하다. 민주와 공화주의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자들만의 미션이 넘쳐흐른다. 국민이 주인이며 삼권분립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완벽한 정의로운 나라인 것 같은 환상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공정한 기회와 정의로운 결과가 보장되는 나라’ ‘국민 한사람도 차별받지 않는 나라’를 강조했다. 대통령 취임사의 리바이블격인 이 말은 확장적인 예산으로 ‘포용국가’로 나아가겠다는 비전을 제시하면서 또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 집권은 새해 봄쯤이면 3년차에 들어간다.
 
그때의 잔여임기는 2년뿐이다. 정의로운 사회로 가고 있는지, 따져볼 때가 되었다. 현 정권의 정체성 강한 이념과 노선에 따라 기획하고 운영한 독선적 영역에서의 책임은 누구에게도 떠넘길 수 없다. 좌편향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수정을 요구해도 흔들림없이  밀어붙인 결과는 오로지 자신들의 몫이 되어야 옳다. 시간적으로도 과거 정부탓만할때가 아니다. 지금 우리는 균등한 기회 부여와 공정한 절차를 거쳐 정의로운 종착역으로 순조롭게 달려가고 있는가?

목숨을 건듯한 정책의 핵심인 비핵화와 소득양극화 해소에 대한 드라이브 굉음은 진동했다. 하지만 성과체감 온도는 냉랭하다. 비핵화 진전은 제로인 사실이 눈부신 남북관계개선 결과에 가려져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때다.

우리는 비핵화를 위해 관계 개선을 바라는 것이지, 관계개선을 위해 비핵화를 바랬던 건 아니다.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소득주도 정책의 실적은 경제지표가 말해주듯, 지금까지는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소득 격차는 더 심해졌고 4대강 개발보다 배이상 많은 천문학적 세금을 퍼붓고도 일자리는 쪼그라들었다.

새해 경기전망은 암울하다. 호황을 누렸던 미국. 일본, 유렵 등 선진국과 최대 수출상대국인 중국의 경기가 하강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은 이어질 것이고 미·중 관세전쟁 리스크는 상존한다.

국내외 전문가그룹은 한국의 경제성장전망치를 일제히 내려잡았다. 소득주도 경제성장 기조와 노동존중, 기업 무관심 정책은 콘크리트이념 틀속에서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문대통령은 민간부분이 일자리를 만들어낸다는 편견은 버려야한다고 일찌기 경고했다. 경제상식에 반하는 이런 유형의 당위명제들이 일사분란하게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 공개적으로 쓴 소리를 해온 대통령 경제멘토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최근 사의를 표명했다. 그가 남긴 메시지는 불길하다. 외국에서 국위를 선양하고 있는 애국 석학들의 우려와 조언과 경고는 잊고 싶은 미래상이다. 

세계적 진보경제학자인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는 지난 29일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을 비판했다. 장하성 전 정책실장의 사촌동생이기도 한 그는 한국 경제 상황에 대해 “국가비상사태”라고 진단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받아들이는 게 첫 해결 방안”이라는 처방도 네놓았다.

그는 “부를 재분배하면 소비와 생산이 늘어 플러스 효과가 있을 수는 있다”며 “한마디로 영양제 주사 한 번 놔주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장 교수는 “식생활 개선, 운동 등이 없이 영양제 한 번으로 체질이 변하지 않는다”며 “우리 경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소득주도 성장에는 체질개선 얘기는 거의 없다”고 했다.

신기욱 스탠퍼드대 교수의  경고는 실패한 권력의 잔영을 불러들인다. 지난 11월28일 중앙일간지에 실린 ‘포퓰리즘 광풍(狂風)과 한국 민주주의’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는 촛불시위의 역설이 느껴진다. 다음은 마지막 부분 원문이다.

“정체성의 정치가 난무하는 시대에 문재인 정부는 남미의 좌파 포퓰리스트 정부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아니면 민주주의의 보루로 남을 것인가? 그 답은 문 정부 스스로가 갖고 있다.

즉, 포퓰리즘의 유혹을 뿌리치고 분열과 대립의 과거 정치에서 화해와 통합의 미래 정치로 나아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자칫 집권 내내 과거와 싸움만 하다 경제는 파탄나고 무능한 좌파 정권으로 전락하면 그 대가는 대척점에 선 극우 정권의 탄생이 될지도 모른다. 역설적으로 민주주의를 외쳤던 진보세력에 의해 한국 민주주의가 다시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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