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규동 박사/다산박물관 다산교육전문관

2018년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 저술 200주년, 그리고 18년의 유배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간 지 200년이 되는 해이다. 이 뜻깊은 해를 맞이하여 강진군은 지난 10월 9일 해배 200주년 기념행사로 고유제, 전야제, 토크콘서트, ‘강진에서 한강까지 다산과 함께 길을 걷다’ 주제로 15일간 도보로 한강까지 걷는 행사 등을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그리고 11월 20일 국회의원 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다산으로 미래를 열다‘라는 주제로 국회 세미나를 개최하게 됐다. 다산정신의 현대적 계승 발전 차원에서 200년이 지난 지금도 다산정신과 사상의 지속적인 가치를 창출을 위한 의미있는 세미나였다. 21세기 산업혁명의 시대 다산사상의 현대적 활용과 문화 콘텐츠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첫 번째 발표자인 이화여대 김선희 교수는 다산학을 하나의 사상과 정신으로 신격화하는 것은 무리라고 하였다. 왜냐면, 이 세상의 어떤 학문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산학의 과거를 되돌아 보며 다산학의 발전적 미래를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두 번째 발표자인 강원대 박원재 교수는 다산정신의 정립과 확산이라는 주제로 우리가 다산에게 무엇을 듣고 싶어 하고 또한 그의 정신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를 사례를 통해서 대중적 확산을 위한 방안에 대해서 발표를 하였다.

마지막으로 고려대 민족문화 연구원 박종천 교수는 다산으로 여는 문화 콘텐츠의 미래라는 주제로 문화 콘텐츠를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의 고민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발표하였다.

이번 국회 세미나를 통해 다산학과 다산정신에 대한 발표는 다산정신의 정립과 확산 차원에서 의미있는 발표였다. 즉, 다산학의 연구 성과로부터 ‘다산정신’을 도출해내는 일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다산의 모든 저술에 관통되어 있는 핵심가치를 도출하여 미래 대한민국의 사회적 가치로 창출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이 제언은 본인이 처음 강진에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주장한 것으로 다산을 통해서 지역 경제 활성화는 물론 강진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고 하는 본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어서 더더욱 의미있는 발표였다.

지방자치단체마다 각각 수많은 축제와 행사를 통해서 지역을 알리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의 특성과 지역만의 콘텐츠차별화와 특성없이 추진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다산콘텐츠는 강진만의 유일한 콘텐츠이다. 하지만 그 현실을 보면 너무나 안타깝다.

흔히들 다산의 4대 성지를 사의재, 보은산방, 이학래 생가, 다산초당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학래 생가는 복원조차 못하고 있으며, 다산과 큰아들 학연의 사연이 들어있는 보은산방은 간판만 있지 콘텐츠가 없다.

그리고 평생을 다산의 가르침에 따라 글을 쓰며 자신만의 생활을 했던 곳으로 추사 김정희, 초의선사, 다산 큰아들 학연 등 많은 유명 인사들이 찾았던 다산 제자였던  황상의 글방인 일속산방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용혈암은 고려시대 백련결사를 주도했던 천인, 천책, 정오 3국사가 머물던 곳으로 다산이 자주 오가던 곳으로 다산이 제자 이청에게 그분들의 공적을 조사하게 했다는 글에서도 소중한 유산임을 알 수가 있지만 지금은 방치돼 있다.

내가 다산(茶山)에 우거한 지 이제 4년이 되는데, 언제든지 꽃피는 때면   산보를 하였다. 산에서 오른쪽으로 고개 하나를 넘고 시내 하나를 건너 석문(石門)에서 바람을 쐬며, 용혈(龍穴)에서 쉬고 청라곡(靑蘿谷)에서 물마시며, 농산(農山)에 있는 농막[墅]에서 묵은 뒤에 말을 타고 다산으로 돌아오는 것이 예이다.
- 다산시문집 조석루기(朝夕樓記) -

다산은 18년 강진 유배생활 속에서 가는 곳마다 역사를 남겼고 글을 남겨서 그의 흔적을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찾아내어 꽃피울 수가 있다.
그래서 강진은 이제 무강진 무다산이 아니라 무다산 무강진이라는 인식으로 다산의 풍부한 콘텐츠를 활용 하여 강진의 지역 경제는 물론이고 강진의 미래를 열어가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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