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규동 박사/다산박물관 다산교육전문관

무더운 여름을 잘 지내온 덕분에 들녘엔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구월의 마지막 날이다. 어제 올라갔던 월출산에 대한 다산의 글을 보면서 지금의 시각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기에 청광 양광식 선생을 찾았다. 23세부터 72세가 된 오늘날까지 다산에 대한 연구를 해온 현대판 다산의 제자이다.
 
다산의 ‘월출산 정상에 올라서’라는 시를 갖고 그에 대한 해석을 들으면서 역시 선생의  학문의 깊이를 알 수 있었다. 건강관리를 위해 수시로 사모님과 함께 산책을 하곤 했다. 오늘도 읍내를 산책 중에 만나 저녁을 함께 하고 선생의 사무실에서 차를 나누며 2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선생은 놀랍게도 최초 월남파병 군인으로 살아 돌아온 것이 기적이라고 하셨다. 제대후 지금까지 50여년 동안 다산의 연구가 3분의 2가 되고 3분의 1은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고 말씀하셨다. 그동안 출판한 책만해도 50권이나 되고 각종 고서들을 육필로 편역한 원고를 제본한 책과 현재 제본하기 위해서 놓아둔 자료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선생께서는 여기 저기 쌓인 자료를 하나씩 보여주면서 오직 다산과 그의 제자들의 업적을 찾고 해석하면서 어떻게 하면 위대한 업적들이 제대로 평가 받고 유산으로 전해 질수 있을까를 걱정하고 있었다. 청광 선생이  현대판 다산의 제자라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다산 전문가들이 책속에서 배우고 익힌 반면 청광 선생은 다산의 유배지 현장에서 다산의 후예들  밑에서 체험하고 스스로 학문을 깨우치고 터득한 살아있는 학문을 통해서 지금도 끝없는 연구 활동은 물론 다산강좌를 통해서 다산정신을 함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진과 다산과의 관계에 대해서 선생만큼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다산에 대한 것은 선생을 통하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라고 말씀하신 것을 들어보면 얼마나 선생의 다산에 대한 내공이 깊은가를 알 수가 있다.

강진에 온지 18개월째다. 강진에서 청광선생을 만난 것은 내 인생 3막에 큰  기쁨이고 축복이다. 왜냐면 다산에 대한 궁금증이 있으면 언제나 찾아가서 묻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큰 스승이기 때문이다. 청광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작년 경세유표 저술 200주년 기념세미나 장에서 만났다.
 
호리호리한 체구에  눈에선 빛이 나고 특별히 세미나 토론자로 이야기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그래서 육필로 쓴 토론문을 달라고 해서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다산이 이룩한 위대한 업적이 그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빛을 못 보고 있듯이 청강 선생의 지난 50년간의 위대한 업적은 물론 그의 지혜와 경험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또 현대적으로 미화되는 과정 속에서 옛것은 그저 고리타분하게만 생각하는 오늘의 세태 속에서 선생이 육필로 쓴 자료와 저술은 어느 누구도 해낼 수 없는 귀중한 자료들이다.

특히 선생님과 23세 결혼하여 지금까지의 삶의 여정을 말씀하시는 사모님의 이야기는 파란만장한 삶 그 자체였다. 청광 선생은 오직 다산 관련된 연구에 몰두하고 살림살이는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던 시절 온몸으로 집안을 꾸려가며 청광의 뒷바라지를 하신 사모님의 내조가 오늘의 청광을 빛나게 하는 희생이었던 것이다.

청광 선생의 저술과 육필로 보관중인 자료들을 강진군은 물론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 보관해야 할  가치가 있다. 꿈속에서 청광이라는 호를 받았다는 말씀 속에서 선생의 일생을 예견하는 듯했다. 청광 선생의 고귀한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그의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다산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문화답사1번지 강진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 미래 대한민국 정신문화 창출의 샘터로 가꾸어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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