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현/강진 마을답사 진행자

누가 들으면 콧방귀를 뀌겠지만, 나는 이 세상의 중심은 ‘나’라고 생각한다. 청명한 밤하늘의 별을 보다가 자칫 길을 잃기도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을 때마다 나는 늘 ‘호랭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곤 했다.

밤새 ‘뻘짓’을 하다가 늦잠을 자고 일어나면, 벌써 시골마을 어른들은 들일이 한창이다. 이즘 같은 여름날, 땡볕에 들일을 하는 이는 거의 없다. 사람들은 동이 트자마자 일을 하고는 해가 뜨면 일을 접는다. 한낮에는 몸을 식히고, 실컷 낮잠을 자거나 때로 막걸리를 한 순배 하기도 한다.
 
이런 우리 동네는 자자일촌이라서 친척들이 많이 살고는 있지만, 예전 같진 많다. 타 성받이가 대부분이고 귀농한 사람들도 열 집이 넘는다.

내가 생각하는 공동체의 모델은 마을이다. 나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들은 흔히 대화 중에 ‘우리 동네에서는...’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그만큼 사람들의 마음속에 공동체의 표준으로 마을이라는 개념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근래 ‘행복마을’이라는 시도가 전국적으로 유행했다. 그러나 이 시도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해 보인다. 생각해보자. 전통적인 한 마을이 형성되는 것은 몇 백 년, 몇 천 년을 통해서였다. 바람을 막아주는 산과 농사지을 들, 먹을 물이 있어서 사람이 살 만한 기본조건이 구비되어야 하고, 드나들기 편한 길과 가까운 근동에 큰 시장과 자식들을 올곧게 가르칠 만 한 학교가 있는 대처가 있어야 했다.

이런 마을을 몇 년 만에 뚝딱 형성한다고? 사람이 살 만한 조건이 원만하게 구비되어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중요하다. 한동네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게 좋을 수만은 없어서 때로는 싸우고, 덕석말이를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마을에서 쫓겨나거나 떠나가기도 했다.

마을마다 미친년이나 반팽이 같은 사람들이 꼭 섞여 살기 마련이었는데, 이들은 그런대로 또 어떻게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근근히 부대끼고 살았다.

최근 나는 ‘렛츠 시스템(Let’s system, 품앗이)’라는 다소 생소한 개념의 공동체 활동을 생각하다가, 전통사회에서의 한 마을이라는 공간은 요즘이라면 한 군 쯤 되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아침밥을 먹고 걸어서 품앗이를 하기 위해 멀리는 한 30분쯤을 걸어가기도 했는데, 요즘은 차를 타고 다니니까 군 단위 정도가 한 마을 정도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중심’을 따지는 것은 우스운 세상이 되었다. 로마와 파리, 런던, 뉴욕이었던 세계의 중심축이 베이징으로 이동 중이고, 그들은 예전의 권위를 갖지 못한다. 이제 중심은 지구촌 어디에나 있고, 새롭게 형성되고 없어진다.

예전 100억 년 쯤 동안에 일어난 일이 근래 100만년 만에 일어났고, 그것은 다시 천년 만에, 백년 만에 일어난다고 한다. 전통시대의 한 마을도 마찬가지. 새마을운동이 일어난 이래 시골마을은 상전벽해가 일어났고, 지금 또 그 마을은 할머니 혼자서 옛날식대로 살고 있기도 하지만, 그 할머니들 주머니에 핸드폰이 있고, 여느 집엔 인터넷이 깔려 있어서 서핑을 즐긴다.

‘마을답사’는 이 정보의 바다 속에서 몸을 움직여 하나씩의 은하를 여행하는 것이다. 내 몸이라는 하나씩의 별이 가진 눈과 귀, 코, 혀, 피부로 마을들을 찾아가보자.

거기에 어떤 공생의 힌트가 있지는 않을까? 자연조건도 그렇고, 사람의 마음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마을은 몇 백 년에 걸쳐서 만들어진박물관이나 다름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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