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씨앗에서 요람까지

우리는 논밭에 씨를 뿌려 가꾸는 곡식이나 채소를 작물이라고 부른다. 작물은 수천년 동안 사람과 함께 사람을 위해 살았다. 그들의 일생이 궁금하다. 고추는 많은 작물 중에 사람의 손을 가장 많이 받고 자란다고 한다.

그만큼 고추를 재배하는 농민들이 고생을 많이 한다는 말이다. 고추의 일생은 사람의 일생이다. 고추가 씨앗에서 싹을 틔워 모종이 되고, 밭으로 나가 자라서 고춧가루가 되어 김장김치가 되기 까지 그 일생을 추적해 본다. /편집자 주.
    

올들어 가장 춥다는 지난 1일 오후 작천면 야흥마을 한 비닐하우스. 밖에는 북풍한설이 몰아치고 있다. 올 겨울들어 가장 추운 날이였다.

월출산을 넘어 온 눈바람이 평리 들녘을 지나 산중턱에 위치한 야흥마을 밭으로 사정없이 불어왔다. 하얀 눈이 바람에 밀려 비닐하우스 한 귀퉁이에 쌓여 있고, 여기저기 널려있는 비닐조각들이 울음소리를 내며 바람에 펄럭였다.

농민 박용영(43)씨의 안내를 받으며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갔다. 두겹으로 덮은 비닐하우스가 바람박이를 해줘 체감온도는 한 풀 꺾였으나 추위는 여전했다. 비닐하우스 안에 또 비닐하우스가 있었다.

그곳으로 따라 들어가자 비닐하우스 안에 또 비닐하우스가 있었다. 다른게 있다면 그곳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이 작은 비닐하우스였다.

박용영 사장이 몸을 낮추어 비닐 한 겹을 걷어내자 그 안에 또 비닐이 있었다. 다시 비닐한겹을 박사장이 천천히 걷어냈다. 마친 어린아이의 이불을 펼치는 듯 했다. 모두 다섯 번째의 비닐이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홑이불처럼 부드러운 비닐이 조심스럽게 걷혀졌다.

그 안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푸르디 푸른 작은 잎들이 생기발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고추 모종이었다. 사람으로 말하면 생후 17일째 되는 날이라고 했다.

두 개의 떡잎이 당당히 하늘을 향하고, 그 떡잎을 연약한 줄기가 떠받치고 있었다. 그런 모종이 푸른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4만여주 정도는 될 거라고 했다.

된장에 콕 찍어 한 입 베어 씹으면 만가지 반찬이 무효인 풋고추. 고춧가루로 빻아져 김치의 가장 중요한 양념이 되는 붉은고추. 농민들의 손길을 가장 많이 받고 수확한다는 고추. 고추는 한 여름 불타는 자태를 뽐내기 위해 찬바람이 몰아 치는 1월에 그의 일생을 시작하고 있었다.

박용영 사장은 1월 초에 씨앗을 준비했다. 씨앗의 싹을 트는 방법은 농민들 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박사장의 준비작업은 좀 특별하다. 씨앗을 구입해 깨끗한 수건을 준비한다.

수건에 일정한 수분을 뿌려서 씨앗을 수건속에 넣고 덮는다. 씨앗의 양은 두손으로 한 움큼정도다. 그 다음에는 안방으로 가지고 가 따뜻한 아랫목에 놓는다. 그때부터 관리가 시작된다. 수건에는 일정한 수분이 항상 유지되어야 한다. 아랫목의 온도는 너무 뜨거워도, 너무 차거워도 안된다.

“종종 고추 씨앗에게 말을 걸어 봅니다. 고추도 생물이니까요. 잘 크고 있느냐. 덥지는 않느냐. 춥지는 않느냐. 아픈데는 없느냐... ”

그렇게 대화를 하다보면 고추씨가 건강하게 싹을 트이는 것을 느낀다고 박사장은 설명했다. 박사장은 종종 음악도 틀어준다. 고추씨앗의 정서순환을 돕기 위해서다. 고추씨가 좋아하는 음악은 트롯트 계통이라고 귀뜸해 주었다.

수건속의 씨앗은 이렇듯 극진한 정성을 받으며 3일 동안 아랫목 대우를 받게 된다. 그동안 박사장은 아이스박스를 수십개 준비하고 상토를 구입한다. 씨앗이 누울 침대같은 곳이다.  

씨앗은 탱탱히 물이 오른다. 수건을 열면 금방이라도 싹이 터저 나올 기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씨앗을 미리 준비한 아이스박스에 뿌리게 된다. 고추씨가 촉이 터서 처음 세상으로 나서는 순간이다.    

지금 있는 곳이 바로 상토가 꽉찬 아이스박스에 씨앗을 뿌려 키우는 곳이다. 다섯겹의 비닐로 보온을 하고 땅속에는 전기열선이 깔려 있다. 이곳은 바깥이 아무리 추워도 25도 정도를 유지해야 한다.

고추묘는 아이스박스에서 20여일을 보내고 포트로 한포기씩 이식을 하게 된다. 박사장은 조만간 포트옮기는 작업을 하기 위해 인부들을 예약해 두었다. 4만여개의 새싹을 4만여개의 포트에 옮겨심는 작업도 보통이 아니다.

포트에 옮겨심은 고추묘는 비닐하우스에서 3개월 정도 자란 후 4월 말에서 5월초가 되면 밭에 정식된다. 
박용영 사장은 지난 2003년 귀농한 농민이다. 서울이 고향인데 처가동네인 야흥리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내려와 정착했다. 지금은 10㏊ 정도의 논농사를 짓고 있고 4천평의 밭을 일구고 있다.

박사장은 4만여개의 모종을 재배해서 1만3천주 정도는 직집 재배하고 나머지3만여주는 이미 예약한 농민들에게 판매할 계획이다.  

박사장은 “고추모종을 하면 영농철에 500만원 정도의 목돈을 만질 수 있기 때문에 힘들지만 모종을 재배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 돈이면 몇 년전만 해도 어미 소 한 마리를 살수 있었으나 지금은 소값이 떨어져 몇 마리를 살 수 있는 돈이 됐다. 박 사장은 “소값이 그렇게 많이 떨어졌다”고 한숨지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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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베테랑들이 전하는 ‘이 시기에 중요한 일’

“파종 후 온도 관리가 가장 중요... 수시로 온도 체크해야”

■김강민 청자골한우리영농조합 대표(군동)
□고추모종 재배경력 5년, 고추농사 경력 15년
□재배규모: 20만주

모종단계에서는 역시 온도관리에 신경을 가장 많이 쓴다. 냉해를 입으면 죽지만 어렵게 살려내도 품질이 크게 떨어진다. 최초 착과에 심각한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영농법인 회원들과 하루에 세 차례 이상 비닐하우스에 들러 수시로 온도를 체크한다. 바깥온도가 올라가면 한 두겹의 비닐은 걷어줘야 하고, 바깥기온이 떨어지면 곧바로 비닐을 씌워주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고추는 키우는 것도 문제지만 판매가 문제다. 고추 자급율이 50%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중국산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동력이 없어 국산재배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줄어든 국내 생산량을 중국산이 차지하게 될 것이다. 모두의 관심이 필요하다.  


 

■최광수 사장(53. 영파리 장동마을)
□고추모종 재배경력
□15년 올 재배량: 15만주

이 시기에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 해도 온도 관리다. 고추모종은 온도관리가 중요하다. 냉해를 입으면 끝이다. 온도를 15~17도를 유지해 준다. 모종을 주문한 주민들에게 한 번 신용을 잃으면 회복이 어렵다.
 
5년은 해야 신용을 다시 찾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래서 유류대금이 많이 들더라도 온풍기를 돌리고 있다. 온풍이 한 곳에 집중되어서 안되기 때문에 긴 비닐호스를 이용해 안쪽에도 따뜻한 바람이 닿게 하고 있다.

 

 고추의 역사

고추는 남아메리카 원산으로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오래전부터 재배하였다. 열대에서 온대에 걸쳐 널리 재배하는데, 열대지방에서는 여러해살이풀이다. 한국에는 담배와 거의 같은 시기에 들어온 것으로 보이며 한국인의 식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한국에 들어온 내력에는 임진왜란 때 왜군이 조선 사람을 독한 고추로 독살하려고 가져왔으나 이로 인하여 오히려 한민족이 고추를 즐기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일본의 여러 문헌에는 고추가 임진왜란 때 한국에서 일본으로 전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 이재위(李裁威)는 ‘몽유(蒙纜)(1850년대)’에 북호(北胡)에서 들어왔다고 기록하였다.

민간에서는 장을 담근 뒤 독 속에 붉은 고추를 집어넣거나 아들을 낳으면 왼새끼 줄에 붉은 고추와 숯을 걸어 악귀를 쫓았다.<자료= naver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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