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운/언론인

여름 휴가철이면 하루 1백만명이 넘는 피서객이 찾아든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이 한산했다면  선뜻 수긍할 수 있을까. 그러나 믿기지 않는 실상이 보도돼 국민들이 놀랐다.  폭염이 절정에 달한 지난2일 낮, 해운대해변에 미리 준비된 파라솔 몇 곳에만 피서객이 누워있을 뿐, 대부분 비워있었다.

바닷가를 뒤덮던 원색 튜브도 볼 수 없고 파도만 일렁이다 하얀 포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러나 저녁 7시가 되면  어느새 피서객이 백사장을 가득 매운다. 이를 보면서  폭염 포비아(혐오증)에 지배된 사람들을 향해 우리 동네 잔치에 오라한들 몇이나 모여들지, 의문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남도내에서 열린 여름 축제는 꾀 많았다. 

순천시 한여름 밤의 물빛축제. 강진청자축제, 무안연꽃축제. 고흥우주항공축제, 정남진장흥물축제, 영광천일염갯벌축제. 화순복숭아축제 등 다채로웠다. 기간은 폭염 절정기인 7월말부터 8월 중순까지였다. 개최측은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즐길 수 있는 행사임을 강조했다. 관광객 유입효과를 극대화할 것이라는 홍보까지 곁들였다.

여름철 축제에 애착이 강한 지자체들과 달리 기상·기후학자들의 폭염 예측은 여름축제에 대한 경계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은 폭염이 앞으로 더 자주, 더 심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수십 년에 한 번 나타났던 극심한 폭염이 2016년과 올해처럼 한해 걸러 출현했다. 뉴노멀(New normal), 즉 일상화됐다는 얘기다. 권원태 한국기후변화학회 명예회장은 한반도에 ‘폭염 폭탄’이 매년 투하될 환경 변화를 우려했다. 단순히 폭염 횟수가 늘어나는 것을 넘어 최고 기온 40도 이상의 초강력 폭염이 자주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기상청 빅데이터와 전문가 예측을 보면 여름축제 예찬이 얼마나  무모한지를 알게 된다. 서울의 여름 길이는 1910년대(1911∼1920년) 평균 94일에서 2010년대(2011∼2017년) 평균 131일로 37일이나 길어졌다. 지난해는 여름 길이가 무려 140일로 늘었다. 1년 중 3분의 1이상(38.3%)이 여름이다.

여름은 일평균 기온이 20도 이상을 유지한 기간을 의미한다. 폭염 일수가 연평균 10일 정도에 그쳤지만 점차 증가해 2050년경에는 최대 50일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따른 폭염 사망자 수도 연간 250명을 넘을 것으로 예측됐다. 

이런 예상을 뒤받침하듯 올해의 온열질환 건강피해가 역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11일 기준, 온열질환자는 3,831명, 사망자는 47명에 달했다.

7월 22일부터 이달 4일까지 2주 사이에 집중됐다. 2011년 온열질환 감시체계가 가동된 이후 신기록이다. 전문가들은 상시적 고온지대인 대만이나 동남아 지역에 비견할만한 수준으로 본다. 그러므로 이들 나라처럼 무더위와 폭염 일상화에 맞춰, 모든 사회·경제적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국가 대응과 별도로 지자체별 전담팀 강화, 폭염응급 대응시스템 구축, 항구적 온열 저감대책과 농어업 피해방지방안등 상시적 폭염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올해 들이닥친 폭염폭탄의 재앙을 심각하게 인식한 정부도 폭염을 자연 재난으로 다루겠다고 선언했다. 이미 고온 현상이 반복돼왔고 폭염이 풍수 등 다른 자연재난보다 피해가 2.7배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위기대응 감각이 무디다.

법치국가인 한국에서 폭염이 자연재난으로 법제화될 경우  여름 축제는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재난 대처 매뉴얼을 무시할 수 없기때문이다. 폭염이 발생할 때면 외출을 자제하고 물을 자주 마시는 게 핵심 매뉴얼이다. 관객외출을 전제로 한 여름축제는 야외 노출을 피할수 없어 온열질환 건강 수칙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상시적 재난을 불러온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과 함께 선제적 대응을 위한 인식의 대전환이 화급하다. 폭염은 목숨을 빼앗는 자연재난이다. 이는 사실을 넘어선 진실 명제다. 강한 지진이 발생한다면 축제를 강행할 자자체는 없을 것이다.

피해가 미미했던 폭우때문에 지자체장 취임식이 생략된 마당에 상상도 할 수 없는 가정이다. 폭염이 지진 못지않은 희생자를 낸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폭염 상시화도 확실하다. 여름축제는 마땅히 재고되어야한다.

폭염은 생명을 앗아감으로 만에 하나의 희생 확률에  대비한 유비무한의 안전원칙이 준수되어야한다. 여름축제는 으뜸가는 경계대상이다. 시기를 조정하고 개최때의 계절 특성을 살리는 프로그램을 보완하면 대체효과를 거둘 수도 있지 않는가. 설혹 효과가 전만 못하더라도 사람 목숨을 걸고 도박하듯 밀어붙일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온열사망자에게 1천만원의 자연재해 보상금이 지급된다해도 회생의 길은 열리지 않는다. 유족의 한과 행사를 강행한 지자체를 향한 원망만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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