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생 시절 강진경찰서장과 만남

박재승 경찰개혁위원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1966년 여름, 그러니까 박재승 회장이 대학을 졸업하고 한창 사법고시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고향인 성전 오산마을집에서 잠깐 머물 때의 일이다.

어느날 마을에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검은 짚차 한 대가 들어왔다. 짚차에서는 당시 송무관 강진경찰서장(1964. 4~1966. 6월 재임)이 타고 있었다.
계급은 경감. 짚차는 골목길로 들어오더니 박재승 회장의 집 앞에서 멈추었다. 짚차에서 내린 송서장은 집으로 걸어 들어가 청년 박재승에게 깍듯이 거수경례를 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송서장은 당시 경찰에 복무하면서 나름대로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박 회장이 고향집에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런저런 정보를 얻기 위해 오산마을을 직접 찾았던 것이다. 그날 후로도 송 서장은 박 회장을 종종 찾아와 사법시험의 경향이나 좋은 교재가 무엇이 있는지 등을 물어보며 꼼꼼히 메모해 가곤 했다.

경찰서장이 짚차를 타고 마을까지 직접 찾아와 청년 박재승을 만나는 것은 주민들에게 큰 화제거리였다. 당시 경찰서장은 지역내에서 요즘과는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높은 지위였다.
집안 어르신들은 “경찰서장이 찾아오는 것으로 봐서 우리 재승이가 틀림없이 판검사가 될랑갑다”며 마음 뿌듯해 했다.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청년 박재승은 몇 년 후 군법무관을 거쳐 30여 명을 뽑는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아쉽게도 송무관서장은 사법시험은 합격하지 못하고 정년을 맞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위원장은 “그런 인연이 있기 때문인지 경찰개혁위원장을 맡고서도 경찰일을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었다”며 “송무관서장을 만난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50년이 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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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승 경찰개혁위원장

성전 오산마을 출신으로 성전 수양초등, 성전중, 광주고, 연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71년 제13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제주지법, 서울형사지법과 민사지법, 수원지법과 서울남부지원 판사를 지냈다. 1981년 공직에서 나온 이후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민주당공천개혁위원장, 사법개혁추진위원회 민간위원 등을 지냈다. 2000년부터는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희망제작소 이사장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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