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강진군보건소 보건행정팀장

강진읍 동문 마을이 천지개벽을 하고 있다. 이곳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발자취와 학문의 얼이 남아 있는 곳으로 다산의 사상을 널리 알리고 후세의 사람들에게 전수하고자 사의재(四宜齋) 일대의 ‘관광 명소화’를 위해 2018년 말까지 완공을 목표로 연일 공사 중에 있다.

△40억 원의 사업비로 ‘사의재 저잣거리’를 조성하여 저잣거리, 주차장, 동문샘 공원을 만들고 △30억 원의 예산으로 ‘사의재 한옥체험관’, ‘다산찻집’, ‘교육관’을 조성하고 △9억 5천만 원의 사업비로 ‘다산 융복합 전시홍보관’ 건립하고 △112억 원의 사업비로 ‘다산청렴수련원’건립하여 청소년수련관 및 다산청렴교육관을 운영하는 등 총 192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세계적인 관광 명소를 만들고 있다.

2012년, 다산 선생이 태어나신 250주년을 맞이해 유네스코가 다산 선생의 학문적 위업과 실학 정신을 기려 ‘유네스코 역사인물’로 선정했는데 역사적으로 훌륭한 분들도 많지만 세계인들은 다산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바로 실학정신 때문이었다. 실학은 관념적 학문을 탈피하여 이용후생(利用厚生), 실사구시(實事求是), 경세치용(經世致用)의 이념을 취한 실제로 소용되는 학문이다.

다산은 18년간의 강진에서의 유배생활 중 다산초당에 거처를 정하기 전까지 이곳 동문 마을 주막 사의재에서 4년을 보냈다. 이곳 ‘동문(東門) 마을’은 한 마디의 말로 다산 선생을 압도해 버린 주모 할머니와 다산의 운명적 만남의 스토리가 있는 곳이고, 그러한 영향을 받아 강진이 실학의 완성지로 자리를 잡게 해 주었고, 더욱이 강진군이 전라남도 지방공무원교육을 유치할 수 있게 200여 년 전에 礎石(초석)을 다진 곳이다.

강진군 강진읍 사의재길 27 번지에 소재한 四宜齋(사의재)! 매반가(賣飯家/밥 파는 집) 주인 할머니의 배려로 오두막 골방 한 칸을 거처로 삼은 다산이 심신을 새롭게 하고 교육과 학문연구에 헌신하기로 다짐하면서 붙인 이름으로 “생각(思)과 용모(容貌)와 언어(言語)와 행동(行動)의 네 가지를 올바로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옆에 서 있는 주모 할머니 동상은 지금도 이곳을 지나는 수 많은 관광객들을 향해 한마디 던지며 우리를 깨우치게 하는 모습이다.

또한, 사의재는 미래와 창조와 희망의 공간이다. 사려 깊은 주모 할머니의 “어찌 그냥 헛되이 사시려 하는가? 제자라도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말에 자신 스스로 편찬한 「아학편」을 주교재로 교육을 베풀고, 「경세유표」와 「애절양」 등을 이곳에서 집필하였다. 또한 주모 할머니는 다산에게 남존여비의 구습 사상을 일시에 말소해버린 양성평등을 주장했던 선각자였다.
 
다산의 마음을 움직인 주모 할머니가 강진읍 동문 마을의 평범한 할머니였던 것이다. 한마디로 사의재가 없었던들, 지혜로운 멘토, 주모가 없었던들 어디 동양 최고의 대석학 다산이 가능했을까? 그래서 지행합일설의 양명학을 기반으로 國學(국학)을 연구했던 위당 정인보 선생은 500여권의 책을 저술한 다산(茶山)을 동양최대의 석학으로 불렀다.

나라를 부요하게 하고 백성을 넉넉하게 ‘부국유민(富國裕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실학사상은 현대 사회가 추구하고 있는 바와 같이 백성을 잘 살게 하는 학문이다. 백성에게 실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학문이라는 뜻이다. 당시 중농학파는 경자유전 원칙을 내세우거나 농민들의 최저생활을 주장했고, 중상학파는 상공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데 그 역할을 다하는 등 당시 시대상을 초월한 그야말로 혁명적 사상이었다.

민선 7기 출범 후 강진군도 주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자세로 ‘더불어 행복한 지역사회 건설‘을 위해 불철주야 일로매진하고 있다. 800여 공직자들은 다산 선생이 가르쳐준 실학을 배경으로 군민이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게 △일자리 창출 △농림축수산 사업 △상공업 △문화·예술·관광 △복지공동체 △지역 균형발전’ 등 여러 분야에서 공약으로 수립하고 실천하기 위해 높은 산을 평지로 만드는 심정으로 배전의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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