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국보급 유물 재현품 생산……식기와 생활용품으로 확대

1979년 도강요 설립으로 강진 개인요 역사 시작
2010년이후 젊은 도공유입, 다양한 공예기법 접목


청자판매장에 개인요 업체들이 제작한 청자 작품들이 전시돼 관람객들이 구경하고 있다. 청자박물관내 판매장에는 박물관에서 제작한 작품과 개인요 업체들이 만든 작품들이 판매되고 있다.
제46회 강진청자축제가 오는 27일 화려한 개막식과 함께 시작된다. 강진의 청자 역사는 1978년 고려청자 재현 성공과 함께 시작됐다. 강진군은 청자 재현사업을 지원하고 활성화를 위해 기구의 필요성을 느껴 1986년 강진군 고려청자사업소가 탄생했다.

이것이 강진 청자 산업의 시작이었다. 2006년에는 강진청자박물관으로 명칭을 바꾸고 1종 전문박물관로 정식등록됐고 2007년에는 강진청자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해 최근까지 사용해왔다.

하지만 지난 2015년 7월 강진이라는 지리적 범위를 벗어나 고려청자 문화의 대표성을 나타내는 의미를 부여하고자 고려청자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강진청자 사업의 중심인 박물관이 탄생하면서 지역내에는 청자를 생산하는 개인요가 생겨나 30여곳의 업체가 운영되고 있다. 여러 개인요 업체들이 청자축제의 주인공으로 떠올라 청자사업을 이끌어가고 있다.

청자사업소가 탄생하던 당시 청자생산은 주로 사업소를 중심으로 한 관요에서 이뤄졌다. 고려청자를 재현하는 데 모든 초첨이 맞춰져 있었던 때였다. 그러던중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윤도현 전 전남도의원이 1985년 도강요를 설립하면서 민간요 업체들이 속속 생겨나기 시작했다.

기존 전통방식의 청자에 금속공예와 유리공예 등 다양한 기법들을 활용해 제작된 작품의 모습이다.
당시 도강요는 조선대 약대를 졸업하고 고향인 칠량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었던 윤 전 도의원이 운영했다. 1979년 고려청자 발굴이 한창이던 현장을 우연히 찾았던 윤 전 의원이 고려청자의 매력에 매료됐고 현재 동흔요를 운영하고 있는 이용희 선생과 만나면서 약사를 접고 도공의 길을 선택했다. 바로 강진에서 최초로 민간요가 설립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후 청자재현의 선구자였던 조기정 선생에게 사사를 받은 김경진씨가 1989년 탐진청자를 설립했고 청자사업소에서 도예를 배웠던 강기성씨도 1992년 다산도자기를 창업하는 등 80~90년대까지 민간요가 줄줄이 창업돼 운영을 시작하게 됐다.

청자사업소를 통해 청자를 만드는 도공의 길로 들어서 퇴직후 대구면에 자리를 잡고 청자를 생산한 작가들도 있었지만 타지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청자의 매력에 빠져 청자의 본고장인 강진에 터를 잡고 민간요를 설립한 이들도 많았다.
 
기존 전통방식의 청자에 금속공예와 유리공예 등 다양한 기법들을 활용해 제작된 작품의 모습이다. 커피분쇄기와 다기세트는 김보미 군의원이 작가로 활동하며 제작한 것들이다.
비교적 초창기에 민간요를 설립했던 금릉도예 이영탄 작가와 청우요 윤윤섭 작가 등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매년 1개에서 2~3개씩 업체가 늘어나면서 현재에는 30여개의 업체가 강진군에 등록돼 자신들만의 청자작품을 만들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들 업체에서는 연간 4만여점을 생산해 35억원 가량의 판매량을 나타내고 있으며 관요에서도 7천여점의 작품을 만들고 있다.

민간요의 시대가 시작된 지 30년이 넘어서면서 그동안 작가들의 작품들도 변화되고 있다. 민간요 초기때만 하더라도 관요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주병과 매병과 같은 재현작품들이 주로 생산됐다.

또 그때만 하더라도 청자를 사람들이 활발하게 구입하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에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의 의미보다는 끊어졌던 고려청자의 맥을 이어간다는 의미가 더 컸다. 개인요 업체들도 이런 추세에 맞춰 대부분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청자작품들을 보고 이를 재현한 작품들이 주를 이뤘고 매장에도 매병과 주병과 같은 재현품들이 주를 이뤘다.

기존 전통방식의 청자에 금속공예와 유리공예 등 다양한 기법들을 활용해 제작된 작품의 모습이다. 커피분쇄기와 다기세트는 김보미 군의원이 작가로 활동하며 제작한 것들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청자가 각종 드라마나 TV 프로그램에서 자주 다뤄지고 있고 매년 개최되는 강진청자축제를 통해 전국에 강진의 청자가 많이 알려져 있어 관광객들이 고려청자박물관을 찾았다가 청자판매장을 들러 구입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청자들이 주로 생산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반상기와 다기세트 등이다.

소비자들의 트렌드가 변화하면서 청자가 작품이나 재현품 위주에서 밥그릇과 국그릇, 찻잔, 물컵 등 생활자기 중심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의 추세는 개인요들에게 퍼져나가 요즘에는 대부분 생활자기가 판매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생활자기에서부터 휴대폰 악세사리, 머리핀, 목걸이 등 장신구, 건축자재에 이르기까지 소비자들의 다양한 수요에 맞춰 상품들도 점차 다양해져 가고 있다. 특히 지난해 선보인 가우도 청자타워의 경우도 청자로 타일을 제작해 부착했다.

이런 변화는 경기불황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품목이 예술품이었기 때문이었다. 고려청자 재현품의 경우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것이 아닌 예술품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국내 경제상황에 따라 판매량이 크게 차이가 난다.

최근에도 국내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청자 재현품과 같은 예술품의 판매량은 늘어나지 않지만 반상기와 컵과 같은 생활자기들은 꾸준한 판매량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단순한 생활자기에서 더 발전해 기존 전통 청자에 새로운 기법들이 더해져 새로운 모습의 청자작품들이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군의원이기도 한 탐진청자 김보미 작가는 전통 청자 작품에 금속공예, 나전기법과 옻칠을 하는 등 다양한 기법이 더해진 새로운 형태의 청자들을 제작하고 있다.

금속공예를 통해 청자로 커피머신을 만들고 텀블러컵을 만드는 등 최근 신세대들이 선호하는 청자작품들을 선보이며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작가들도 기존 전통방식의 청자외에 다양항 형태의 작품들이 나타나고 있다.

젊은 세대들의 경우 고려청자하면 옛날 것, 고리타분한 것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지만 최근 다양한 공예기법이 접목된 청자들이 나타나면서 젊은 세대들도 청자 작품들에 관심을 갖고 구입하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또 청자에서 건강에 좋은 성분이 나온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건강을 중시하는 사람들도 청자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80년대 민간요가 시작될 당시에 청자 수준과 지금 현재는 기술수준을 비교햇을 때 전체적인 부분에 많은 향상을 이뤘다. 고려청자박물관을 중심으로 기술적인 부분과 홍보, 마케팅, 포장재 등 전반적인 부분에서 적극 지원한 덕분으로 청자의 빛깔, 작품형태, 조각수준 등 전반적으로 대부분의 민간요 업체들이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섰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이와 함께 강진청자축제를 통해 매년 수십만명의 관광객들이 청자촌을 찾아오면서 예전에 비해 판매량도 크게 늘었다. 또 최근에는 40대~50대의 젊은 도공들이 유입되고 있고 도강요, 효광요, 동흔요, 탐진청자 등은 작가들의 2세들도 도공의 길을 함께 걸으면서 강진청자가 세월이 흘러도 꾸준히 유지되고 전승될 수 있는 발판도 마련돼 미래를 밝게 해주고 있다.

하지만 관내 개인요 업체들의 경우 대부분 비슷한 디자인의 반상기와 다기세트 등으로 작품들이 집중되는 경향이 높다. 디자인도 업체들마다 큰 차이를 보이는 경우 없이 비슷한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어 보다 강진청자가 롱런하기 위해서는 각 업체마다 자신만의 특색있는 작품들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유약과 조각 연구를 통해 자기 업체들만의 고유한 빛깔의 유약을 개발하고 독특한 디자인을 개발해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

여기에 기존 전통 청자를 지켜가면서 새로운 기법들도 접목시켜 전통과 현재가 조화된 작품들을 제작해야만 강진청자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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