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개성 만월대 공동발굴 재개 논의

성사되면 남북 화해 물꼬 다시 틀 듯

개성 만월대의 모습이다. 화려하게 펼쳐져 있는 뒤쪽의 산이 송악산이다.
남북 긴장완화 분위기가 계속되면서 최근 고려시대 궁궐터인 개성 만월대(滿月臺)를 발굴했던 남북 단체가 만나 발굴 재개에 관한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확인돼 청자축제 개막과 맞물려 강진 청자의 역사조명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학계에 따르면 남측 남북역사학자협의회와 북한 민족화해협의회 관계자들이 최근 중국에서 만나 만월대 발굴 사업을 협의했고, 민화협이 긍정적 신호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만월대 발굴을 재개하려면 통일부 승인 등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발굴 재개를 위한 첫걸음을 뗐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28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고려 건국 1천100주년을 기념해 고려 성균관에서 열린 토론회를 소개하고 남북 공동발굴로 출토한 고려 금속활자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만월대는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의 궁궐이 있었던 곳이다. 남북 양측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차례 발굴조사를 통해 만월대에서 고려 궁성의 건물 배치와 명문기와, 원통형 청자 등 다양한 유물을 확인했고 2011년에는 수해 피해 건물지와 석축에 대한 보존조치를 시행했다.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직후 중단됐던 발굴조사 사업이 2014년 7월 재개 됐다. 그러나 2016년 2월 군사적 대립이 심화되면서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로 남북관계가 전면 단절되면서 올 스톱했다.

만월대 발굴은 꽁꽁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이어준 한올의 실타래와 같은 것이었다. 만월대는 지난해 개성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이번에 다시 공동발굴이 모색되면서 다시한번 실타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만월대에서는 강진에서 생산된 청자편이 많이 발굴돼 강진 주민들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다. 남북한 공동발굴에서 발견된 명문기와나 원통형 청자등은 대부분 강진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 때문에 청자의 역사와 관련해서 더 없이 중요한 곳이다.

고려시대 강진에서 생산된 청자가 대부분 이곳으로 실려가 소비됐고 이후 500년 이상 역사속에 묻혀 있던 청자가 바로 이곳 만월대를 중심으로 그 가치가 되살아 났기 때문이다.

만월대는 본래 송악산 남쪽 기슭 고려 궁궐 정전 앞 계단을 의미하지만, 지금은 궁궐터를 통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남북은 2007년부터 7차례에 걸쳐 공동 발굴조사를 했고, 마지막 회차인 2015년에는 6개월간 7천㎡에서 건물지 19동과 유물 3천500여 점을 찾았다.

지금까지 서부 건축군 3만3천㎡ 중 1만9천㎡에 대한 조사가 완료됐고, 이를 통해 건물지 39동과 축대 2곳, 대형 계단 2곳, 유물 1만6천500여 점이 확인됐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발굴 재개가 결정되면 조속히 조사단을 투입할 수 있도록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주희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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